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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넷뉴스

게시일
2016.01.27

추운 날씨를 사랑할 줄 알게 되다

나는 여름에 태어났다. 영국의 여름은 해도 길며 날씨도 대체로 따뜻하고 맑다. 영국의 학교 제도에서는 여름 방학이 6주 정도로 1년 중 가장 길다. 이 때는 거의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도 오래 전부터 고대해온 자유와 햇빛을 맞이한다.

영국은 위도(緯度)상 북쪽에 있기 때문에 여름에는 해가 길지만 겨울에는 금방 컴컴해진다. 해가 가장 짧은 날에는 아침 8시에 해가 뜨고 오후 4시가 못되어서 진다. 다행히도 가장 컴컴한 겨울에 영국의 가장 긴 연휴인 성탄절이 있어 크리스마스 몇 주 전부터 온갖 장식과 등불이 집과 길거리를 밝고 따뜻하게 만든다. 그러나 겨울을 좋아하기에는 크리스마스의 축제 분위기가 영 부족했었다.

소피 바우먼

▲ 소피 바우먼

나는 영국에서의 여름의 긴 해, 따뜻한 날씨와 넓고 맑은 하늘을 사랑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겨울은 해마다 겪어야 하는 인내력 시험처럼 같았고 나는 겨울의 시작을 두려워해왔다. 나는 겨울은 마치 단군신화의 곰처럼 어두운 동굴 속에서 마늘과 쑥을 먹는 시간 같이 생각하고 견뎌왔다. 그러나 4년 전부터 한국에 살기 시작하면서 계절에 대한 내 취향은 큰 혼란을 겪었다. 한국의 여름은 정말 별로 였다! 너무 덥고 너무 습해서 영국에서는 저녁이 밝고 날씨가 좋아서 제일 가장 좋을 때가 한국에서는 한 달 동안 장마철이라니 이상한 아이러니 같았다. 서울의 늦봄(5월 중순부터 6월까지)은 영국의 여름만큼이나 아름다운 날씨로 가득해서 곧바로 내가 제일 가장 좋아하는 기간이 됐다. 3월에 개나리와 진달래 필 때부터 벚꽃, 철쭉과 아카시아 필 때까지 봄은 내가 한국에 와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봄에 찾아오는 황사 때문에 내가 소중히 여기는 계절은 황사주의보와 함께 온다. 어떤 봄날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지만 하늘이 희고 흐릿한 날들도 있다.

다행히 한국의 가을은 봄처럼 아름다운 계절이다. 여름의 끈적거리는 습기가 수그러들면 누가 플라스틱 뚜껑을 벗겨준 것처럼 하늘이 확 열려 한층 높고 넓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게 된다. 영국에서는 가을에 날이 짧아지고 추워져서 나뭇잎이 떨어지면 항상 슬펐다. 나에게 가을이란 그냥 싫어하는 겨울의 시작이었다. 한국의 가을은 영국과 달리 심장을 뛰게 하는 단풍의 계절이자 배와 감이 나오는 맛있는 계절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바람 없고 건조한 가을의 공기에 서울의 대기오염이 악화되어서 어떤 날에는 숨을 쉬지 못하고 ‘베이징에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그런 걸 어떻게 견디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작년부터 겨울을 ‘좋은 날씨’의 계절로 다시 보게 됐다.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지만 추운 날씨를 이제서야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물론 맑고 푸른 하늘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하늘이 맑은 날이면 추위는 더 심하다. 감사하게도 영국 겨울의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와 달리 한국 겨울은 건조한 계절이다. 그래서 옷을 잘 껴입고 내복을 챙겨 입으면 견딜 만 하다. 운전하거나 자전거 타는 것만 아니면 도시에서 눈이 내리면 예쁘고 기분이 좋지만 하루 정도 지나면 미끄러운 얼음과 도로 앞에 더러운 눈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그럴 때 시골이나 산으로 가면 완전히 달라진다! 사실 나는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을 정말 두려워해서 절대로 춥고 눈 쌓인 산에 등산을 할거라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아이젠에 장갑과 모자 그리고 다운 자켓을 입고 산에 가보니 겨울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는 곳인지 알게 됐다. 발 밑에 눈이 밟히는 소리와 산을 올라가면서 더워지는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찬 공기, 그리고 추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서 마시는 핫초코 한 잔이나 따끈따끈한 라면 한 그릇으로 몸을 녹일 때에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이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나는 한국에서 겨울과 추위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이 글을 쓴 소피 바우먼은 이화여대 대학원 국문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한국문학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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