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코리아넷뉴스

게시일
2016.01.08

이광수, 한국 그리고 ‘흙’

이광수가 ‘흙’을 출판했던 1932년과 1933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아시아의 혼을 위한 격렬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근대화를 향한 가장 좋은 길은 무엇인가? 사회는 어떻게 세계화된 도시와 보수적인 심장부와의 조화를 잘 이룰 수 있을까? 어째서 민족주의가 식민주의에 대한 대응인가? 작가 이광수(1892-1950, 李光洙)는 소설 ‘흙’에서 두 여자 사이에서의 갈등, 두 지역 사이에서의 갈등, 두 세계 사이에서의 갈등, 그리고 1930년대 한국에서 겪는 삶을 위한 투쟁을 하는 주인공 허승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모든 것을 다룬다.

이광수의 장편소설 '흙'은 한국 현대문학의 걸작이다. 1932년부터 1933년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됐으며 2013년 영문으로 번역됐다.

▲ 이광수의 장편소설 '흙'은 한국 현대문학의 걸작이다. 1932년부터 1933년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됐으며 2013년 영문으로 번역됐다.

허숭은 부패한 세상에 내던져진 정직한 인물이다. 한국의 젊은 지식인들은 일본 식민주의 체제에 흡수되어 도쿄에서 교육을 받고 야마토 민족의 이름으로 제국을 통치하고 관리하고자 서울로 되돌아온다. 이들은 한국 전통에 먹칠을 하고 여자들을 성희롱하며 과음을 하고 아내나 애인에게 폭행을 가하면서도 대체로 사회적인 성공을 거둔다.

허숭의 후원자인 윤참판의 장남이 죽자 그의 딸 정선과 아들같이 믿고 의지한 허승의 혼담이 거론된다. 그러나 그는 잊지 못하는 첫사랑이 있는 시골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시골로 돌아가는 꿈을 포기하고 참판의 딸과 결혼한다. 젊은 변호사인 그는 이제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다. 허숭은 궁극적인 출세를 한 것이다.

본래 가난한 시골 출신이지만, 도시에서 부유한 후원자를 만난 허승은 결국 서울생활에, 상류층 아내에, 그리고 무정하고 무지한 사회에 굴복하고 만다.

심지어 후원자인 참판 댁에도 그를 괴롭히는 적들이 있다. 참판 댁의 일을 돌보고 있는 허승의 적수, 김갑진은 한국문화를 무시하고 (한국문학의 대가 이광수가 만들어낸 인물의 행동이라고 보기 놀랍다), 서울에서 시골까지 허숭이 보내는 모든 정직하고 민족주의적인 일상에서 그를 괴롭힌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허숭의 또 다른 적수로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의사 이건영이 있다. 그는 가장 힘든 대공황 시절, 최악의 식민지 착취로 인해 빚더미에 시달리고 있는 무지한 농민들을 돕고자 하는 허숭을 가로막는다.

허숭의 정직함은 지식인 협력자들이 있는 서울에서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는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에 가까운 이상주의에 사로잡혀 있으며, 소설 후반부에 보다 나은 삶과, 그리고 첫사랑을 되찾기 위해 ‘흙’으로 돌아간다. 그는 옛 한국, 즉 근대화와 혼란이 닿지 않은 옛 한국을 갈망한다.

허숭은 시골로 돌아가지만 그를 맞이하는 것은 그의 순수한 목적에 대해 무지한 농민들의 의심뿐이다. 이곳에도 부패와 강간, 그리고 방종이 난무한다. 허승은 의심 많고, 고집불통의 농민들과 그의 도시적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첫사랑이 있는 시골에서도 뜻을 이루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결국 이 소설은 결국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e, 고대 그리스극에서 자주 사용하던 극작술로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이를 결말로 이끌어가는 수법)의 획기적인 결말로 막이 내린다. ‘안나 카레니나’를 떠오르게 한다.

문학을 통한 해방

동시대 작가였던 헤밍웨이와 마찬가지로 이광수의 문체는 꾸밈이 없는 단문형식이다. 그의 인물들은 일차원적으로 단순하며, 모두 전반부에 등장한다.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이 분석하는 신화처럼, 주요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검은 옷을 입은 나쁜 사람과 하얀 옷을 입은 착한 사람이 있고, 고약한 여자와 고결한 여자가 있듯이 명백하게 드러나있다. 이런 갈등 속에 순진무구한 주인공인 허숭은 그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고 지상낙원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500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의 장편소설 ‘흙’은 1932년 4월 12일부터 1933년 7월 10일까지 일간지 동아일보에 272회로 나뉘어 연재되었다. 영문 번역서로는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소설과 단편소설을 모은 ‘한국문학 라이브러리’ (Library of Korean Literature)의 일환으로 발행한 것이 유일하다. 호러스 J. 호지스와 황선애 부부가 공동 번역을 했다.

동아일보는 각각 2~3장으로 4부로 나뉘어 총 272편으로 이 작품을 연재했다. 이런 식으로 잡지나 일간지에 작품이 연재된 도스토옙스키, 디킨스, 뒤마와 같은 대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한국소설과 단편소설을 영문 번역한 '한국문학 라이브러리' 시리즈.

▲ 한국문학번역원이 한국소설과 단편소설을 영문 번역한 '한국문학 라이브러리' 시리즈.

연재 당시, 이 작품은 많은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도시의 삶과 성공을 뒤로 하고 농민들을 돕기 위해 ‘흙’으로 돌아간 주인공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 소설 ‘흙’은 ‘농촌계몽운동’에 대한 인식을 높였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깊게 새겨져 있다.

구세주 이광수, 민중에게 문학을 전하다

이광수의 삶은 실로 파란만장했으며 그가 현대에 남긴 업적은 괄목할 만하다. 후세에 전해지고 있는 일기를 통해 그의 내면적 사고를 이해할 수 있다. 이광수는 1892년 3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흙’이 출판되기 20여년 전인 1909년 가을, 17세인 그는 도쿄의 기독교 재단 메이지학원에 재학 중이었다. 그의 일기에서는 미국과 일본 교수들에 대한 반감을 엿볼 수 있다. 메이지학원 학생 가운데 특히 한국 학생들은 그 시절의 인종차별주의와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뼈저리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일본 학생들은 대놓고 한국 학생들을 무시했다. 사실 일본에서나 만주의 벌판에서나 심지어 고향인 한반도에서조차 한국 혈통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시절 누구나 다 겪는 인종차별이었다.

물론 인종차별은 민족주의의 이면에 불과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일본제국 시민들은 ‘민족주의’가 강했다. 최상위에는 ‘일본인’이었고 그 밑으로 ‘한국인’과 ‘만주인/청인(淸人)’이 있었다. 제일 밑에는 ‘한인(漢人, 한족 중국인)’이 있었다. ‘민족’이 명시된 국민증은 반드시 몸에 지니고 다녀야 했다. 이광수는 학생시절, 아니 평생 동안 이런 인종차별주의와 차별대우를 직접 피부로 느끼며 살았다.

이광수의 평론 ‘독서를 권함’ (1915)에서는 “오인(吾人)이 원시적 빈궁하고 누추한 야만의 상태를 벗어버리고 풍부 고상·화려한 문명의 생활을 현출하여 조화옹(造化翁)의 놀라운 대교정(大校正)을 준 것은 실로 이 창고에 쌓아놓은 보물의 힘이로다”라고 말한다. 문학은 구원이다. 문학은 근대화다. 문학은 독립이다.

이광수도 이에 동참했다. 1919년 2월, 27세였던 그는 2.8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했다. 같은 해 4월에는 3.1 운동 이후 경찰의 박해를 피해 상해로 망명했고, 다른 독립투사들과 함께 한국 임시정부를 세우는데 일조했다. 29세였던 1921년에는 식민지 통치 하에 있던 서울로 돌아온다.

이광수는 1930년대에 ‘흙’이 출판되기 직전에 불교로 개종했다. 1937년 제국주의 경찰에 구속되어 옥고를 치른 후 1939년 친일 행위로 돌아섰다. 1940년대 이후 발표된 그의 작품 대부분이 친일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나 현대적인 시각에서 보면 ‘친세계화’ 혹은 ‘친근대화’란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1950년, 북한군이 서울에서 철수하는 과정에서 그는 다른 작가들과 함께 납북되었으며 그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레고리 이브츠 코리아넷 기자
번역 손지애 코리아넷 기자
사진 한국문학번역원

· 코리아넷 뉴스의 저작권 정책은 코리아넷(02-2125-3501)으로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