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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넷뉴스

게시일
2014.03.20

프란치스코 교황방문과 시복

“야소(耶蘇)라는 말은 번역하면 세상을 구제하는 왕이라는 뜻이니, 두사(陡斯 천주(天主)가 강생(降生)한 뒤의 이름이다. 두사는 아무런 형체가 없을 때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였다. 사람의 시조인 아당(亞當)이 아말(阿襪)의 말을 따라서 두사를 받들지 않음으로 해서, 두사가 세상에 내려와 모든 사람의 죄를 구하고자 하여 의 동정녀(童貞女)인 마리아(瑪利亞)의 몸에서 태어났다. 한(漢) 나라 애제(哀帝) 원수(元壽) 2년 경신 신라 시조 57년. 백제 시조 18년. 고구려 유리왕 19년에 여덕아국(如德亞國) 이마두의 말에 의하면, 옛날의 대진국(大秦國)이라 한다. 야소로 불려진 33년 동안에 사방을 돌아다니며 정도(正道)를 알렸는데, 악당 반작비랄다(般雀比剌多)라는 사람이 무고(誣告)하여 국법에 따라 재판한 결과 극형(極刑)을 받고 죽었다. 죽은 후 3일 만에 부활하여 40일 간을 더 살아 있으면서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마쳤다. 살아난 지 3일 만에 몸을 돌려 하늘로 올라갔다고도 한다. 죽은 것은 사람임을 밝힌 것이고, 다시 살아나 하늘로 올라간 것은 하늘의 뜻임을 밝힌 것이다.”

위의 기술은 조선시대 18세기 실학자 이덕무가 천주교에 대해 남긴 글이다. ‘야소’는 예수그리스도의 한자어 표기다. ‘두사’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라틴어 데우스(Deus)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아당’은 성서에서 말하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며 ‘여덕아국’은 이탈리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똑같이 마리아로 표기했다. 악당 ‘반작 비랄다’는 예수를 처형한 유대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를 말한다. 예수가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고 40일간 더 살았다는 기술 또한 성서와 동일하다. 천주교가 조선에 전래됐던 초기에 작성된 기록으로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천주교의 실체를 제대로 전하고 있다.

나아가서 이덕무는 천주교에 대해 상세한 설명까지 아끼지 않았다.

“의달리아(意達里亞)의 라마성(羅瑪城) 둘레가 1백 50리이다. 야소(耶蘇)가 죽은 뒤에 그의 제자 백다록(伯多祿)이라는 자가 이 성에서 교(敎)를 폈다. 그 뒤를 이어서 교왕(敎王)이 항상 그곳에 사는데, 모든 나라가 다 경의를 표한다. 그 풍속이 전적으로 천주를 신봉하여 서울에서 시골의 거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천주당이 있다. 이곳에는 교무(敎務)를 맡아보는 사람이 있어서 전적으로 교회의 일을 주관하는데, 이를 일컬어 신부(神父)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주한 교황청대사관)

▲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주한 교황청대사관)

오는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다. 교황은 8월 15일 대전에서 봉헌미사 집전을 비롯해 시복식 집전, 충남 서산 해미성지 등을 방문할 전망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복식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을 말한다.

가장 중요하며 핵심적인 행사로 여겨지는 시복(諡福)은 천주교에서 인정하는 사람을 복자(福者)의 반열에 올려놓는 성스런 의식이다. 복자는 성인(聖人) 이전 단계다. 윤지충과 동료 123위는 조선왕조 시기인 18세기~20세기 유교의 질서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순교했다.

순교자 윤지충이 천주교 교리를 익혔던 공간은 오늘날 명동성당으로 거듭났다.

 

순교자 윤지충이 천주교 교리를 익혔던 공간은 오늘날 명동성당으로 거듭났다.

 

순교자 윤지충이 천주교 교리를 익혔던 공간은 오늘날 명동성당으로 거듭났다.

▲ 순교자 윤지충이 천주교 교리를 익혔던 공간은 오늘날 명동성당으로 거듭났다.

윤지충은 어떤 인물이기에 시복식의 앞머리에 등장하는 것일까? 윤지충(尹持忠 1759~ 1791)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순교한 천주교 신자다. 세례명은 바오로. 명문 가문인 전남 해남(海南) 윤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선 최고의 시인 윤선도(尹善道)가 6대조이며 걸출한 화가 윤두서(尹斗緖)가 증조부다. 그의 부모는 군왕에게 충성을 지키라는 의미에서 ‘지충’이란 이름을 붙였다. 유교의 가치관에 철저했던 그는 24세 관료에 이르는 첫 관문인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중국에서 활동했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리치(Matteo Ricci, 중국명 利瑪竇; 1552~1610)의 저작 ‘천주실의(天主實義, The True Meaning of the Lord of Heaven)’를 읽으면서 천주교 교리를 배운 후 입교했다. 1791년 모친상을 당한 후 전통적인 유교방식의 제사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친척과 유림으로부터 불효자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고, 유교의 윤리를 해쳤다는 죄목으로 고발되었다. 신앙을 버리라는 주위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켜 결국 사형에 처해졌다.

교황방문에 앞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오는 24일~28일 정기총회를 가진다. 이 자리에서 교황 방한 준비와 함께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이 주요안건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2일 청와대에서 페르난도 필로니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을 접견, 악수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2일 청와대에서 페르난도 필로니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을 접견, 악수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이번 교황 방한은 한국 정부와 교황청간 지속적인 대화속에서 이뤄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0월2일 청와대에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Congregation for the Evangelization of Peoples) 장관(prefect) 페르난도 필로니 (Fernando Filoni) 추기경(cardinal)을 접견한 자리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그의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에 대해 언급하고 교황의 방문을 요청했다. 박대통령은 이들에 대한 시복 결정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결정이 빨리 이뤄져 우리 순교자들의 정신이 소중한 유산으로 기려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국 천주교인들의 숙원이었던 순교자들의 명예회복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위택환, 백현 코리아넷 기자
whan23@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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