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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넷뉴스

게시일
2013.07.29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자유와 민주주의가 최상의 가치”

“자유와 민주주의가 최상의 가치입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을 뒤돌아보고 아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전에는 한계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발전이 정체돼 혼돈에 빠지게 되는 때에 대비하기 위해서 성찰의 자세가 요망됩니다.”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방한한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역설하며 한국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이웃과 글로벌한 시각과 비전을 갖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진: 전한 기자).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방한한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역설하며 한국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이웃과 글로벌한 시각과 비전을 갖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진: 전한 기자).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방한한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힘주어 말하며 전후 폐허의 상태에서 한국 국민이 거둔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미래를 향한 두 나라의 협력을 희망했다.

포탄 연기와 총탄이 빗발치던 한국의 전장을 누볐던 20대 청년은 나이 90을 바라보는 노병이 돼 돌아왔다. 한국전쟁의 포성이 멈춘지 60년이 됐다. 27개 유엔회원국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난 대한민국은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하여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됐다. 오늘날이 있기까지 도움과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세계의 이웃들에 대한 감사는 대한민국의 화두가 됐다.

한국전쟁 참전 필리핀군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모습(맨 오른쪽, 라모스평화재단 제공)

)▲한국전쟁 참전 필리핀군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모습(맨 오른쪽, 라모스평화재단 제공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한국전쟁 참전국가를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50년 미육군사관학교를 마친지 얼마 안 돼 라모스 중위는 한국전쟁에 자원해서 참전했다. 그는 1952년 5월 21일 서부전선의 이름모를 고지에서 격전을 치렀다. 훗날 ‘에리고지 전투(Battle of Hill Eerie)’로 불리는 그의 전투기록은 처절함 그 자체였다.

1952년 5월21일 아침 7시10분쯤. 임진강 지류인 연천 연곡천 지류에 이어진 야트막한 고지군(群). 해발 183m의 에리 고지는 주요 거점이었다. 필리핀군 20대대 수색중대 제2소대가 특명을 받는다. 제2소대장은 피델 V 라모스 중위였다. 그에게 ‘중공군이 고지 정상에 설치한 8곳의 벙커를 폭파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한국 국방부에서 펴낸 ‘한국전쟁사’ 유엔군 참전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장교 3명과 사병 41명으로 이뤄진 라모스돌격대는 1명의 손실도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주저항선으로 복귀하였다. 이는 순간을 다투는 기민하고도 신속한 동작, 계획한대로 시차없이 진행된 접적이동, 훌륭한 사격과 기동의 연계, 그리고 기선을 제압하는 용기로써 결정적인 대결에서 적을 압도한 감투정신에 기인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전과 또한 대단한 것으로 적 5~6명이 활동할 수 있는 벙커 7개를 완파하였고 확인된 적 사살이 11명, 부상이 10명, 그리고 호안에서 죽었을 것으로 추산되는 수십명의 적병을 추가하면 총 70명의 적을 살상한 것이다.”

25일 정부대표다국어 포털 코리아넷(www.korea.net)은 대구-경북 지역을 방문한 라모스 전 대통령을 대구에서 만나 대담을 나누었다.

문 : 20대의 청년이 90을 바라보는 노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감회는?

답 : 기쁨과 슬픔의 두가지 감정이 교차된다.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이 나라를 방문한다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었지만 필리핀에서 한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해오고 있는 모습이 기뻤다. 치열하게 경쟁하며 발전해온 한국의 역동성은 필리핀의 롤모델로 삼아야 된다고 느껴졌다. 한국을 방문한 것은 60년전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목적도 있으나 더 중요한 것은 세계평화의 가치를 젊은 세대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평화의 메시지가 한국과 필리핀의 젊은이들은 물론 나아가 아시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 : 몇 년전 풀타임으로 농구경기를 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타고난 건강이라고 봅니다. 사실 대통령께선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졸업 직후인 1950년 6월 결핵으로 한쪽 신장을 절제했습니다. 회복시기도 기다리지 않고 한국전쟁에 참전을 자원한 동기는?

답: 수술을 했는지 확인했느냐?(웃음) 수술후 몸을 단련해서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했다. (뚜렷한 한국어 발음으로) 부산, 대구, 대전, 서울, 연천으로 북상하여 임진강 철의 삼각지대(김화, 철원, 평강)까지 올라왔다. 전선에 오는 중 수백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모든 것이 파괴됐고 엉망이었다. 그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전해주고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동료 군인들도 위기에 빠진 한국 국민을 돕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차게 됐다.

문 : 1952년 5월 21일 새벽 4시에 시작된 강원도 철원의 '에리(Eerie) 고지' 전투는 처절함 자체였습니다. 23세의 청년 라모스 중위에게 두려움은 없었습니까? 근접전에서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하였으며 병사들의 용감성은 어디에 기인했다고 보시는지요?

답: 한국에 오기전 필리핀에서 공산주의자들과 투쟁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앞서 나설수 있었기에 두렵지 않았다. 부하병사들보다 좀 더 경험이 많았으며, 좀 더 나이가 많았기에 자신있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이끌 수 있었으며 부하들도 기쁜 마음으로 따랐으며 역할을 충실히 해줬다.

문 ; 필리핀은 식민지, 독립운동, 민주화, 산업화 등 한국과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미래의 번영을 위해 두 나라의 경험을 공유하는 건 어떻다고 보시는지요.

답 : 필리핀은 스페인에게 230년간 지배를 당했다. 미국의 지배도 받았다. 필리핀은 더 이상 갈등이 아닌 평화를 원하고 있다. 두나라가 힘을 합한다면 1+1=2가 아니라 11이 될 수 있다. 여러분야에서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문: 정전상태의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답 : 지속가능한 평화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선 전사회 지도층에게 책임이 가장 요구된다. 한국이 화해의 과정을 거쳐 통일이 되길 기대한다. 한국국민은 충분히 통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가능하다면 필리핀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일조를 하고 싶다. 남북이 통일되면 경제 발전과 외교관계가 훨씬 나아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문 : 두 나라의 국민의 정서에는 정이란 공통점이 있어 보입니다. 필리핀 국민이 40년전이 지난 지금에도 한국의 농구스타 신동파를 기억하며 해마다 초청하여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그렇습니다. 또한 한국에선 필리핀의 팝스타 프레디 아귤라(Freddie Aguila)가 부른 ‘Anak(사랑하는 나의 아들)’이 여전히 애송되고 있습니다. 두 나라의 관계가 보다 진일보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답 : 북한은 미국의 흑인 농구스타(데니스 로드맨)을 초청했지만 필리핀은 신동파(분명한 발음으로)에 대해 무한애정을 보내고 있다. 두 나라는 지금도 충분히 동맹자, 친구로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공유하고 인적교류뿐아니라 기술교류를 늘려나간다면 두 나라 모두에 이익이 배가될 것이라고 믿는다.

문 : 마지막으로 한국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말씀하여 주십시오.

답 : 먼저 주어진 과제에 성실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음으론 한국 국내의 범위를 넓혀 주위를 돌아보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아시아, 아시아태평양, 나아가 글로벌하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위택환·이승아 코리아넷 기자

자국의 화폐에 한국전쟁을 기록한 필리핀의 500페소 지폐 화면. 화면의 인물은 필리핀 민주화의 상징인물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1932~83)이다. 그는 ‘마닐라 타임스’의 종군기자로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군복 차림에 펜과 카메라를 든 젊은 아키노와 그가 송고한 기사가 보인다.(아래)

▲자국의 화폐에 한국전쟁을 기록한 필리핀의 500페소 지폐 화면. 화면의 인물은 필리핀 민주화의 상징인물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1932~83)이다. 그는 ‘마닐라 타임스’의 종군기자로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군복 차림에 펜과 카메라를 든 젊은 아키노와 그가 송고한 기사가 보인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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