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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넷뉴스

게시일
2013.02.28

한국 인디락에 심취한 스티븐 앱스타인 교수

스티븐 앱스타인 교수는 25년 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와 지금의 한국을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를 느끼고 있다. ‘완전한 민주국가’인 한국은 1988년 하계 올림픽을 비롯해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고 첨단기술의 강국으로 성장하였으며,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리더국가로 급부상하였다. 그러나 앱스타인 교수가 주목한 변화는 한국의 음악계에 있다.

락밴드 포스터

뉴질랜드 빅토리아대학 동양학부 교수인 그는 지난 30년 간 한국의 음악계가 성장하고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는 과정을 목도했다. 그는 학자적 재능을 살려 한국의 인디음악 발전과정에 대해 강의를 하고 수 많은 글을 써왔으며 ‘Our Nation: A Korean Punk Rock Community in 2001’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공동 제작하기도 했다.

앱스타인 교수는 “1980년대 후반에 한국에 와서 지낸 시간은 정말 굉장했다”고 회상한다. 그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연세대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하며 1989년부터 1990년까지 9개월간은 (연세대에서) 한국학 수업을 들었다. 그는 “한국에서 보낸 일 년은 정말 굉장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당시) 한국의 음악이 너무 잔잔하고 밋밋했다”며 ”1980년대에도 K팝이 있긴 했지만 너무 단조로웠고 지금의 K팝과 비교해보면 한국의 음악이 엄청나게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그는 1977년 런던에서 여행을 하던 중 처음으로 펑크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1980년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이하 UC 버클리) 대학원 재학 시절에는 두 밴드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앱스타인 교수는 ”만약 그 당시 한국에도 인디밴드가 존재했고 함께 연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아마 그때 한국을 떠나진 않았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후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보통 짧게 머물다가 가곤 했다. 한 번은 서울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2주간 한국에 머문 적이 있다. 그는 또 “안식일일 때는 3개월씩 한국에 머물다 가곤 했다”며 “내 여권에 찍힌 한국 입출국 도장만 세어 봐도 많게는 70~75개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 1998년에 뉴질랜드 시민권을 취득했고 2000년에 한국인 여성과 결혼을 했다.

1998년에 한국을 찾아서는 음악분야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젊은이들의 클럽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유명한 홍대까지 가서 한국의 전설적인 라이브음악 클럽인 ’드러그 (Drug)’를 찾았다.

그는 “드러그 클럽까지 가는데 한 시간 45분 정도나 걸렸지만 처음 갔던 그 날밤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며 “그곳에서 인디밴드 ‘껌(Gum),’ ‘18크럭(18Cruk),’ 그리고 ‘크라잉넛(Crying Nut)’을 만났고 클럽에 들어서자마자 ‘아, 드디어 한국에서 나의 안식처를 찾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매우 친절했고 나를 따뜻이 반겨주었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스티픈 앱스타인은 14년이 흐른 2012년에 김인수 크라잉넛 멤버와 재회했다.

▲스티픈 앱스타인은 14년이 흐른 2012년에 김인수 크라잉넛 멤버와 재회했다.

그곳에서 만난 인디밴드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조선의 펑크’라고 불렀다. 외국의 음악장르들을 아우르면서 동시에 한국만의 고유한 특성을 보여주는 음악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클럽에서 보낸 시간들은 정말 굉장했다. 8년 전만 해도 한국에 이런 펑크락이 생길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었다”며 “지금까지 다른 곳에서도 락 음악이 발전하는 것을 많이 지켜봤지만 이곳 한국에서는 락 음악이 정말 번개처럼 찾아왔다. 평생을 팝음악만 듣다가 그것도 일 년 만에 너바나(Nirvana), 섹스 피스톨즈(the Sex Pistols), 그린 데이(Green Day),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같은 인디락 밴드의 음악을 듣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정말 대단하더라”라며 한국 인디락의 발전속도에 놀라움을 표했다.

인디밴드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앱스타인 교수는 한국 인디락 음악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UC 버클리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팀 탱거리니 교수와 절친한 친구 한 명, 그리고 같은 대학원에 다녔던 전 밴드멤버들과 뭉쳐서 한국 인디락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함께 제작했다.

그들은 1999년 6월부터 다큐멘터리 크랭크인을 시작으로 총 17시간 분량의 인터뷰 및 밴드공연 영상을 촬영하였다. 스티븐은 크라잉넛, 18크럭, 그리고 한국 최초 여성 펑크락밴드인 슈퍼마켓(Supermarket) 등 그 당시 최고의 ‘조선 펑크 밴드’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또한 ‘아저씨’라는 닉네임을 가진 드러그 클럽의 이석문 사장과 인디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메인기타리스트로도 명성이 높고 현재 MTV의 VJ로 활동하고 있는 성기완과의 인터뷰도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지난 2000년 말에 1차 편집이 완료되고 2001년에 제작이 완성되어 2002년 공식적으로 공개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한국 음악계는 이미 많은 변화가 일어났던 때라 ‘급속도로 변화하는 한국의 인디락’을 새롭게 조명하는 그의 다큐멘터리는 관객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전 세계 10여 개 영화제에서 상영된 그의 다큐멘터리는 아쉽게도 한국 관객들의 관심을 얻지 못했다. 그는 “2001년과 2002년에는 조금 음악을 안다는 사람들이 나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사람들 이미 한물간 음악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2년, 2003년이 되면서 나도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자신이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게 바로 한국의 모습이야’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1999년 6월 그날의 한국음악이 이런 모습이었다’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면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디락의 발전 과정을 통해 한국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위대하고 역사적인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스티븐 앱스타인(중간 왼쪽)은 밤섬해적단의 장성건 기타리스트(왼쪽), 김소영 한국영화학 교수(중간 오른쪽), 그리고 감독이자 영화배우이면서 이주노동자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붑 알엄 펄럽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다.

▲스티븐 앱스타인(중간 왼쪽)은 밤섬해적단의 장성건 기타리스트(왼쪽), 김소영 한국영화학 교수(중간 오른쪽), 그리고 감독이자 영화배우이면서 이주노동자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붑 알엄 펄럽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다.

2011년에는 탱거리니와 다시 뭉쳐 다큐멘터리 2편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는 “2편에서는 더욱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고 있는 한국을 담고 싶었다”면서 “1편에서 1990년대 말에 한국이 ‘조선 펑크’와 같은 새로운 음악장르를 일찍이 발견하고 그것을 한국의 고유문화로 정착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다뤘다면 2편에서는 다양성을 갖춘 국제적인 한국음악의 면을 강조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크라잉넛과의 두 번째 인터뷰를 포함 다섯 인디밴드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가 크라잉넛과 재회했을 때 멤버들 모두 나이를 먹은 중년이 되어 있었다. 현재 세 명은 결혼을 했고 드러머는 10살 된 딸을 가진 부모가 되어 있다.

그는 3호선 버터플라이의 성기완을 포함해 하드코어 밴드인 긱스(the Geeks)와 “김치빌리” 밴드로 알려진 락타이거즈(the Rocktigers), 그리고 미국인 기타리스트 제프 모스가 리더로 나서고 “트레쉬”라는 닉네임을 가진 그의 한국인 아내가 베이스를 맡고 있는 왓에버댓민즈(Whatever That Means)와의 인터뷰도 2편에 담았다.

다큐멘터리 2편 제작을 위해 스티븐 앱스타인이 인터뷰한 다섯 밴드의 사진.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왓에버댓민즈, 긱스, 크라잉넛, 3호선 버터플라이, 그리고 락타이거즈 (사진제공: 3호선 버터플라이, 락타이거즈)

▲다큐멘터리 2편 제작을 위해 스티븐 앱스타인이 인터뷰한 다섯 밴드의 사진.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왓에버댓민즈, 긱스, 크라잉넛, 3호선 버터플라이, 그리고 락타이거즈 (사진제공: 3호선 버터플라이, 락타이거즈)

그는 “다섯 팀 모두 전 세계 투어를 가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2011년에 그가 인터뷰를 했던 다섯 밴드 모두 전 세계 투어를 했으며 앞으로 또 투어를 가질 계획이다. 크라잉넛과 3호선 버터플라이는 작년 북아메리카에서 서울소닉 투어를 가졌으며, 락타이거즈는 일본과 남아메리카에서 순회공연을 했고 왓에버댓민즈는 메인 기타리스트인 제프 씨가 펜실베니아에서 1년 간 사회학 석사학위를 따기 전, 미국 서부 해안지역에서 순회공연을 펼쳤다. 긱스는 필리핀 순회공연을 마치고 현재 다음달 텍사스에서 열리는 SXSW 공연을 위해 한창 연습 중이다.

이렇게 전세계로 진출해 나가는 한국의 인디밴드들은 한국의 음악이 1990년대 이후로 얼마나 많이 변화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한국의 인디음악이 크게 발전했다”며 “한국의 인디 음악을 최근 10년간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K팝과 함께 발전하고 있는 하나의 음악장르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의 인디 음악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한국의 인디음악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고 덧붙였다.

“대다수 기획사들이 아이돌 그룹에만 많은 투자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싸이라는 예상치도 못한 인물이 나타나 국제무대에서 큰 히트를 치고 글로벌 스타가 됐으며 이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싸이의 뮤직비디오는 현재 13억 조회수를 돌파했다. 정부도 현재 장기하, 페이시스(the Faces), 버스커버스커 같이 엄청난 성공을 가져올 수 있는 숨은 가수들에게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아직 제목 미정인 그의 다큐멘터리 후속편은 올 해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그는 뉴질랜드로 돌아가 VUW대학에서 다시 강의를 시작했으며, 그의 아내와 6살 된 딸도 3월에 뉴질랜드로 건너갈 예정이다. 하지만 그는 머지않아 한국에 다시 돌아와 한국음악을 연구하는 일에 다시 전념할 계획이다.

존 던바
코리아넷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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