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
- 2013.02.19
서울 속 ‘작은 러시아’

▲플로브(맨 위)는 고기와 야채로 만든 우즈베키스탄식 볶음밥이다. 광희동은 간판들이 대부분 러시아어로 되어있어 이곳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길을 잃어버리기가 쉽다.
동대문의 고층 빌딩들 사이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조그만 동네가 있다. 좁은 골목이라 처음엔 언뜻 들어가 보고 싶지 않은 길이지만 뜻 밖의 맛 집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곳, 바로 ‘광희동’이다.
동대문시장과 을지로 서쪽에 위치한 ‘서울 속 작은 러시아’라고 알려져 있는 이곳은 특히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몽골 등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이 주로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동네이다.
90년대 초부터 그들은 이곳에서 공동체를 형성해 살아오고 있다. 광희동은 주로 동대문시장 근처에 자리 잡고 싶어하는 외국인 의류 판매업자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었다. 또한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많은 고려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1997년 아시아 재정위기가 닥치자, 몽골과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많은 이민 노동자들이 환율의 이익을 보기 위해 한국으로 넘어왔고 이중 많은 이들이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구 소련 붕괴 후 광희동에 정착한 이민자 수가 7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3번 출구 부근부터 5번 출구까지 이르는 길이 ‘작은 러시아’ 골목이다.
광희동에서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울란바토르와 사마르칸트 등 생소한 도시명이 들어간 간판들이 늘어선 광희동 거리에 들어서면 입 안에 군침 돌게 만드는 이국적 음식 냄새로 가득하다. 한국어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알 수 없는 언어로 된 간판들을 보면 자칫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곳에는 이민자들을 위한 환전소, 국제전화카드 판매소, 화물 운송업, 여행사를 비롯해 술집, 노래방, 주점과 같은 유흥업소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이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러시안 식당, 러시안 스타일 빵집, 카페, 그리고 식료품점들은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3번 출구에서 출발하면 ‘작은 러시아’ 골목이 나오는데 그 길로 약 50미터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10층 건물 2, 3층에 위치한 유명한 몽골 식당이 두 곳 있다. 또한 사탕에서부터 보드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들을 살 수 있는 가게들도 발견할 수 있다.
골목을 따라 서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세 갈래로 나뉘어 지는 교차골목에 유명한 사마르칸트 식당을 포함해 우즈베키스탄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서쪽으로 더 가다가 골목 끝자락에는 고려인이 직접 운영하는 ‘마이프렌드(My Friend)’라는 유명한 러시아 식당이 있다.
마이프렌드 식당을 지나면 더 많은 식당들이 모여 있는 ‘마른내’ 길이 나온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라타 베이커리(Rata Bakery)’라는 키르기스스탄 빵집이 보인다. 이곳은 사탕, 쵸콜릿, 다양한 종류의 보드카를 비롯해 소고기와 양고기가 들어 있는 *삼사(Samosa)와 **하차푸리(khachapuri)와 같은 다양한 빵을 파는 곳으로 유명하다. ‘라타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주인도 매우 친절하며 앉을 수 있는 자리도 마련돼 많은 손님들이 찾고 있다.

▲‘라타 베이커리(Rata Bakery)’는 양고기가 속에 채워진 페이스트리를 판매한다.
이 길을 따라 서쪽으로 더 내려가다 보면 동대문역사문화공원 7번 출구 부근에도 맛집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7번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쭉 가다 보면 ‘레스토랑 카자흐스탄(Restaurant Kazakhstan)’이라는 식당이 있다. 말고기를 포함해 다양한 카자흐스탄 전통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유명한 카자흐스탄 맛집으로 소문이 나있다. 이 곳에서 바로 왼쪽 방향으로 가면 원조 러시아 전통음식만 판다는 ‘고스티니 드보(Gostiny Dvor)’라는 러시아 식당이 나온다.
광희동에서 맛집을 찾아내는 것도 쉽진 않지만 주문하는 방법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이곳 식당들 대부분이 러시아어로 된 메뉴판만 있고 한국어와 영어 메뉴판을 제공하는 식당은 드물어서 음식을 주문하는데 애를 먹을 수 있다. 러시아어를 못하는 방문객들의 일반적인 음식주문 방법은 다른 사람들이 뭘 먹는지 보고 맛있어 보이거나 냄새가 좋은 것을 가리켜 주문하는 것이다.

▲‘사마칸드(Samarkand)’에서는 갓 구운 빵이 제공된다(왼쪽). 사마칸드 내부 분위기는 언제나 밝다.
몽골,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표방하는 대부분 식당들의 메뉴가 비슷하지만 식당들마다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모든 식당이 갓 구운 빵을 내놓는데 음식 소스와 함께 곁들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한국의 고기만두와 비슷한 ‘만티’도 매우 인기 있다. 만두와 비슷하게 생겨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데 한국식 만두와는 색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가장 유명한 음식으로는 보르시치라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즐겨먹는 비트(beetroot)로 만든 수프이다. 우크라이나 전통 음식이지만 구 소련 국가에서도 많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이 비트수프는 고기가 들어있지 않아 채식주의자들이 먹기에 알맞다. 종종 크림과 함께 나오기도 한다.
고기를 좋아한다면 샤슬릭도 먹어볼 만 하다. 터키의 시시케밥과 비슷한 샤슬릭은 돼지고기, 닭고리, 소고기, 그리고 양고기 등 다양한 고기를 식초 양념에 절여 허브와 특유의 향신료로 맛을 낸 꼬치 요리이다.
양배추 안에 소고기나 양고기를 채워 돌돌 말아서 나오는 양배추롤 ‘골럽시’는 러시아 음식의 이색적인 맛을 느껴볼 수 있는 음식이다. 양배추 대신 고추에 고기를 채워서 나오기도 하고 두 종류가 함께 나오기도 한다.

▲골럽시는 양배추와 고추 속에 고기를 채워 넣어 만든 롤 음식으로 맛있는 소스와 곁들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대부분 식당들은 고기요리와 함께 보드카, 맥주 등 다양한 주류를 제공한다. 가장 유명한 러시아 맥주인 ‘발티카’는 대부분 식당에서 맛 볼 수 있다. 발티카 맥주는 번호로 그 종류가 구분된다. 새겨져 있다. 발티카 3은 알코올 도수 4.8%의 페일라거이고 발티카 9는 8% 라거맥주를 의미한다.
구 소련의 전통 보드카를 다양하게 맛 볼 수 있다. 하지만 보드카의 알코올도수는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소주보다 2배 높은 40%에 이르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마시는 것이 현명하다.
‘작은 러시아’ 음식은 속을 따뜻하게 해주고 포만감을 주면서 가격까지도 저렴하다. 서울 속 ‘작은 러시아’ 맛 집 탐방을 해보는 건 어떨까. 절대 후회하지 않을 여행이 될 것이다.
존 던버
korea.net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