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
- 2024.11.04
‘K-팝?, Q-팝!’···레닌 타마요, 케추아어로 K팝 새로운 가능성 그리다
영상 = ARIRANG K-POP 유튜브 채널
10월 3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중구 주한페루대사관 지하 공연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화려한 옷차림의 청년이 무대에 오르자 힘 있는 비트와 현란한 군무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영락없는 K-팝이다. 그러나 청년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가사는 익숙한 한국어도, 널리 쓰이는 영어도 아니었다. 안데스 원주민이 사용하는 케추아어다.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조합. 낯설지만 신선한 충격을 던진 Q-팝이 서울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페루 출신 자작가수 타마요가 24시간을 넘게 날아 한국에 도착했다. 그는 케추아어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자라며 안데스 음악가인 어머니에게 안데스 전통음악을 배웠다. K-팝 세계와 마주한 뒤 케추아어를 음악에 접목해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었다. 케추아팝, 일명 Q-팝이다.
그의 혁신적인 음악은 단숨에 전 세계 팬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숏폼 프랫폼에서 수백만 뷰를 기록하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한국의 재외공관과 한국문화원이 주최하는 다양한 문화행사에도 초대 받아 공연했다.
그의 음악적인 성취는 무대 위 화려한 순간들로만 그치지 않는다. 올해 초 미국의 대중문화 잡지 롤링스톤스' 는 그를 비전있는 라틴계 아티스트로 선정했다. 타임지는 '올해의 차세대 리더' 로 지목하며 그의 독창성을 극찬했다.
이번 한국 공연은 서울 종로구에서 첫 공연을 시작으로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과 서울광장 무대에 이르기까지 경계없는 음악의 힘을 느끼게 했다.

▲ K-팝에 케추아어를 가미해 Q-팝을 탄생시킨 페루의 싱어송라이터 레닌 타마요가 10월 초 방한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타마요. 레닌 타마요 인스타그램 갈무리
코리아넷이 한국에서 첫 공연을 마친 타마요를 만났다. 관객에게 어쿠스틱 버전으로 케추아어 가사를 알려준 뒤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먼저 건냈다. 그는 “페루에서도 어쿠스틱 공연과 퍼포먼스를 결합해 관객과 교감해 왔다” 며 “언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지 않아도 몇 마디의 단어로 깊이 통할 수 있는 게 음악의 힘”이라고 했다.
첫 한국 공연을 마친 소감을 물었다. 타마요는 “한국 문화는 놀라운 에너지를 지녔다”는 말로 무대에서 느낀 감동을 전했다.
K-팝에 매료된 계기가 궁금했다. 그러자 지방 도시로 이사한 뒤 중학생 때 다시 예전에 살았던 수도 리마로 돌아오면서 느꼈던 외로움을 털어놨다. 새로운 환경에서 고립감을 느꼈던 그에게 K- 팝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손을 내밀며 K-팝의 세계로 이끌었단다. 이 낯선 음악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그러면서 “ K-팝을 더 잘 알게 된 후엔 음악으로 어머니의 예술활동을 돕고 싶다는 열망도 커졌다”고 덧붙였다.
화제는 K-팝이 Q-팝에 미친 영향으로 옮아갔다. 타마요는 “K-팝은 한 무대에서 춤, 음악, 퍼포먼스가 결합된 방식이 매력적이다.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점이 큰 영감을 준다”고 평가했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안데스 문화의 영향이 자신의 음악에 오롯이 담겨 있다고도 밝혔다.

▲ 지난 10월 4일 경북 안동에서 열린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참가한 레닌 타마요가 무대를 선보이기 전 페루의 전통 탈과 의상을 입은 댄서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한페루대사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타마요는 한국과 페루를 아우르는 음악 작업을 하며 느낀 감정으로 열림과 자유로움을 꼽았다. “두 문화의 전통 음악에서 모두 이러한 개방성과 정직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방한 중 만난 댄서들과 연습하며 그들의 열정과 완벽을 향한 몰입에 감명 받았다"며 한국 아티스트들과 협업 가능성의 기대감도 내비쳤다.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된 것은 없지만 함께 일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들이 많다”고 전했다.
음악적 신념을 묻자 그는 두 단어로 대답했다. “사랑과 자유.” 타마요는 이 두 단어로 자신을 소개한곤 한단다. 실제로 기자를 처음 만나 자신을 소개를 할 때 스페인어로 사랑과 자유를 뜻하는 단어인 "Amor y libertad" 를 덧붙였다. 두 관념이 결합되면 평온과 희망이 온다고 믿어서다. 그의 이 이러한 믿음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케추아어 단어 “Phaway”와도 연결된다. ‘날다’와 ‘빨리 달리다’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빠르게 달리면서 날아가는 기분”을 표현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타마요는 “두려움 없이 날아오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무엇이든 도전하고 경험하라. 실패도 삶의 한 부분이며 중요한 것은 끝까지 나아가는 힘”이라며 포기하지 말고 자기만의 길을 걸어갈 것을 강조했다. 케추아어와 K-팝의 만남을 통해 Q-팝을 만들어낸 타마요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말이었다.
타마요가 문화의 경계를 넘어 자신만의 목소리로 세계 무대에 우뚝 설 날이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