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
- 2024.07.17
[기고칼럼] K팝, 세계음악시장 제작 시스템에 새로운 방향성 제시하다(황준민 동국대학교 교수)

황준민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 교수(전공: 글로벌음악산업)
최근 K팝 산업의 멀티 레이블 체제가 화두에 올랐다. 멀티 레이블이란 뮤직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소속된 아티스트들을 각기 전담하는 회사(레이블)를 만들어 한 아티스트 혹은 팀(지식재산권)에 역량을 집중하며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소니 뮤직, 유니버셜 뮤직 등 미국의 대형 음반사에서는 흔한 형태다. 국내에서는 JYP엔터테인먼트, 하이브, SM엔터테인먼트 등이 멀티 레이블 체제를 확립했다.
전세계 음악산업을 선도하는 미국의 음반사들은 각 아티스트의 특성 과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의 장르에 맞춰 다양한 레이블사들을 산하에 두고 있다.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의 구조도 국내와는 많이 다르다. 우선 계약의 주체가 회사가 아닌 아티스트다. 아티스트가 매니저와 계약을 맺고, 매니저가 아티스트를 관리 및 대변하며 라디오 홍보, 음반제작, 방송출연, 공연, 언론홍보, 각종행사, 마케팅, 유통, 퍼블리싱 업체들과 아티스트를 연결하며 협업한다.
그동안 K팝 기획사들은 미국의 음반사들과는 정반대의 시스템으로 아티스트를 관리해왔다. 이른바 '인하우스 육성 및 제작'시스템이다. 아티스트 혹은 계약된 매니저가 외부 파트너들과 협업하는 것이 아닌, 아티스트가 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기획사는 내부에 보유한 신인 개발팀, 트레이닝팀, 음악프로듀싱팀, 매니지먼트팀, 홍보팀, 마케팅팀, 사업팀들을 구성하고 각기 맡은 바 업무를 분업화된 시스템 하에 진행한다. 이들은 모두 한 회사의 직원으로서 공동의 목표 및 비전을 가지고 아티스트를 관리하고 있기에 기획단계부터 각 팀의 담당자들이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아티스트가 주최가 돼 모든 업무를 외부 파트너사들과 진행하는 미국의 시스템에 비해 아티스트의 관리 및 관련 콘텐츠 제작 측면에서 나은 효율성을 보인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K팝 기획사들은 여기서 한단계 더 발전한 그들 만의 독특한 멀티레이블 체제를 구축했다. 기획사 내부에 다수의 레이블을 두고 각 레이블이 한 아티스트 혹은 팀을 전담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레이블이 데뷔전부터 한 아티스트 혹은 팀을 육성, 관리, 음악프로듀싱, 스타일 및 안무 기획, 팬 상품(굿즈) 기획 및 판매, 공연 기획 등 집중적이며 총체적으로 관리한다.
하이브의 경우 지주사격인 빅히트 뮤직,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어도어, 쏘스뮤직과 같이 각 레이블에 각자의 독립운영체계를 부여했다. 따라서 레이블 마다 각자가 관리하는 아티스트 혹은 팀의 개성과 특징을 살려 운영하고 있다.
특히 한 레이블이 각자 관리하는 아티스트 및 아티스트팀에 집중함으로서 회사는 동시에 다양한 지식재산권을 확보할 수 있다. 자연스레 각 아티스트들의 개성과 특징을 강화한다. 무엇보다도 신곡 발매 시기를 단축시켜 음원 및 음반제작 빈도를 높여 결과적으로 더욱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됐다. 특히 국내 대형 K팝 기획사들은 대부분 상장사들이기에 아티스트 및 팀이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생산해 내는 선순환구도를 만든다. 그리고 이는 주가부양에 매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즉, 주로 장르적 특징으로 레이블사를 구분한 미국의 멀티레이블 체제의 틀에 K팝의 특유의 ‘인하우스 육성 및 제작’ 방식을 접목시킨 셈이다.
이같은 체계는 해외음악산업계의 주목으로 이어졌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020년 멀티레이블 시스템의 해외 연장선으로 소니뮤직재팬과 협업해 일본 현지화 걸그룹 니쥬(NiziU)를 선보이면서 성공을 거뒀다.
지난 2022년 3월에는 당시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였던 이수만씨가 사우디 수도 리야드를 방문해 하이파 빈트 모하메드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공주이자 관광부 차관, 파이잘 알 이브라힘 기획재정부 장관, 하메드 빈 모함마드 파예즈 문화부 차관 등 정부 주요 관계자를 만났다. 이는 사우디 투자부가 SM 엔터테인먼트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현지 케이 팝(K POP)육성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현지 아티스트 발굴 및 육성 기획으로 이어졌다. (이수만씨가 SM엔터테이먼트를 떠나면서 실행되지 않았다)
하이브도 유니버설뮤직그룹 산하 게펜 레코드와 손잡고 지난해 미국 LA 산타모니카에 위치한 IGA 스튜디오에서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탄생한 미국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가 지난 28일 첫 번째 싱글 '데뷔'(Debut)를 발표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K팝의 육성과 제작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국가 및 인종들로 구성된 다양한 재능들이 국제 아티스트팀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K팝 기획사들은 ‘1인 프로듀싱 체제’에서 출발, 다채로운 변화과정을 겪으며 미국의 멀티레이블 시스템의 장점까지 도입하고 아티스트 육성 시스템 및 기획력을 더해 그들 만의 독특한 시스템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이는 K팝의 장르화와 더불어 다양한 국가에서 현지의 다양한 인종 및 멤버들로 구성된 아티스트 및 팀을 배출해내기 시작했다.
K팝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지식재산권에서 세계음악시장의 시스템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의 문화 지식재산권을 더욱 적극적으로 세계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K팝을 필두로 영화, 연극, 소설, 시, 전통음악 등 더욱 다양한 한국의 문화 콘텐츠들이 전세계의 더 많은 이들과 공유되고 즐겨지질 희망해 본다.
황준민 교수는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전 JYP엔터테인먼트 홍보이사를 역임했으며 2022년부터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글로벌음악산업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