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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넷뉴스

게시일
2021.02.01

[기고칼럼] 한국 김치의 비밀 '유대감의 맛' (팀 알퍼)

Kimjang festival in Seoul 2019

팀 알퍼 코리아넷 칼럼니스트는 김장에 대해 '독특한 사회적인 경험'이라며 김치와 김장에 담긴 한국의 나눔과 배려의 문화를 강조했다. 사진은 2019년 11월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열린 '2019 국민행복나눔 김장축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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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알퍼(Tim Alper)



김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전 세계 셰프들과 미식가들에게 주목받는 퓨전 식재료로 떠올랐다. 이는 김치가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매운 맛과 기분좋은 아삭한 식감 덕분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아닌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치라고 부르는 것은 배추 김치(baechu kimchi)이다. 소금에 절인 배추와 무, 마늘, 고춧가루, 그 외 각종 재료로 만든다. 김치에는 항산화 성분과 항암에 좋은 식물성 화학물질, 우리 몸에 유익한 젖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이 때문에 빠르게 성장하는 건강식품 업계에서도 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사람들이 대부분 상점에서 김치를 사거나 집에서 직접 소량씩 담가 먹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김치 준비 방식은 이와 매우 다르다. ‘김장(kimjang)으로 알려진 이 방식은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를 의미한다.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

김치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11월에 한국을 가보라는 권유를 받곤 한다. 물론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뒤에 가능하겠지만 11월은 한국의 김장철이다. 이 때는 갓 수확한 배추와 무를 가득 실은 트럭이 시장과 식료품점, 심지어 일반 가정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연례 특별행사

김장철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김장 재료를 대량 구매한다. 그 이유는 김장은 일 년에 한번만 하기 때문이다. 배추가 나지 않는 겨울철 3~4개월 동안 먹을 김치를 미리 한번에 담갔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연례 김장 행사는 며칠 간 이어지고 김치는 새로 공급된다. 이 행사는 대규모여서 온 집안 식구들 뿐만 아니라 이웃의 일손도 필요로 한다. 


김장은 2등분 또는 4등분한 배추를 하루 동안 소금물에 절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재료를 소금에 절이는 이유는 김치가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김치는 이 과정을 거쳐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좋아지게 된다.


소금물에 절인 배추는 물기를 빼내고 생강, 마늘, 무, 고춧가루, 당근 등을 넣고 빨간 루비색의 김치소 양념을 준비한다. 풍미를 더하기 위해 멸치액젓이나 새우젓 또는 둘 다 넣기도 한다. 최근에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김장법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방법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배추김치 담그는 비법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단맛을 더하기 위해 배를 갈아 넣거나 항산화 성분과 매운 맛을 더하기 위해 대파를 넣기도 한다. 대파(daepa)는 커다란 서양 부추인 ‘릭(leek)’과 혼동하면 안된다. 쪽파와 노란 양파(스페인 양파)도 쓸 수 있다.

김치소 만드는 방법은 한국 사람 숫자 만큼이나 저마다 독특하고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재료 다듬기 및 혼합 과정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지며 이 고된 노동은 오랜 시간 계속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김장 담그기 방식은 믹서기를 쓰거나 슈퍼마켓에서 미리 다듬어진 재료를 쓰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과정을 마치면 배추잎마다 넉넉히 김치소를 넣는 힘든 노동이 이어진다. 김치소를 배추잎 사이사이에 다 넣으면 배추 겉잎으로 마치 소포를 싸듯 배추를 잘 돌려 감는다. 옛날 사람들은 땅을 파서 큰 항아리를 땅에 묻고 그 안에 김치를 넣어 대량 저장했다. 그러나 요즘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용기에 나눠 담아 김치냉장고에 보관한다.

유대감의 맛

김치는 한국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음식이다. 끼니 때마다 먹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김장에는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한국에서는 4인 가족의 경우 50포기 가량 배추김치를 담그며 식사 때마다 먹기 좋게 썰어 식탁에 올린다.

나는 여러 해 동안 한국에서 음식 전문 기자로 일하면서 운 좋게도 학계와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유명한 김치 명인들을 만나봤다. 

김치 명인들은 김장을 정확한 과학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 김치 명인들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지만 김장은 과학이나 예술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공동체 의식과 관련이 깊다.

2000년대 중반에 한국에 처음 갔을 때 나는 김치를 매우 좋아해서 고향 런던에 돌아가 직접 담가 먹기도 했다. 김치담그기는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김치 담그기는 쉽고 칼을 쓸 줄 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칼질이 서투르더라도 도와주는 사람만 있다면 할 수 있다. 김치 담글 때 정말 필요한 것은 강도 높은 육체 노동이다. 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장할 때는 어린 아이 욕조로 써도 될 만큼 커다란 대야에 여럿이 함께 둘러앉아 작업할 공간이 필요해 주방이 비좁게 느껴질 때도 종종 있다. 주방 대신에 거실이나 남는 방, 심지어 옥상이 김장 담그는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김장은 가족, 친구, 이웃 등 함께 하는 사람들과 끝없이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김장철에 한국인 가족을 방문하게 되면 누군가 양념한 배추잎을 말아서 입에 넣어주더라도 놀라지 말라. 김장김치는 한국에서 별미로 친다.

나는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봤다. 몇 달 간 잘 숙성돼 맛이 깊어진 김치를 더 좋아하지만 이런 김치를 한 입 먹게 되면 나도 같이 김장 할 마음이 절로 생기게 된다. 커다란 대야 앞에 몇 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아서 배추잎 사이에 김치소를 채우는 일을 반복하다 근육통이 생겨도 한국에서 김장처럼 동지애가 생겨나는 자리는 없을 것이다.

나눔이 곧 배려다

배추잎 마지막 장까지 다 양념했다고 김장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다음 순서는 ‘나눔’이다. 201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정확하게 언급된 바 있다. 그 옛날 한국인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며 모든 이웃들과 김치를 나눠 먹었던 것처럼 갓 담근 김치를 친구, 동료, 가족 친지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은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다.

해마다 우리 집 냉장고는 친구들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주신 신선한 김치로 채워진다. 김치를 선물 받으면 늘 사랑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볼 수는 없더라도 느낄 수는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 기분이다.

크고 작은 회사나 시청 직원들 혹은 아파트 주민회 등에서는 정기적으로 대형 천막을 치고 김치 담그기 행사를 열어 어려운 이웃들에게 김치를 나눠주곤 한다.

나는 이제 런던에서도 한국인 입맛에 맞는 김치를 담가먹고 있다. 하지만 김장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인 소속감은 늘 부족하다. 김치담그기는 혼자 할 수 있지만 김장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독특한 사회적 경험이다.

2020년 11월에는 한국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때문에 함께 모여 김장을 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면 한국의 대표적인 공동체 행사인 김장 축제를 다시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몸은 힘들어도 즐거움이 넘치고 행복해질 것이다.


팀 알퍼는 영국 출신 기자이자 작가로 한국에서 12년 이상 거주했으며 현재는 영국에 잠시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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