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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을사늑약은 없다” (도츠카 에츠로 변호사)
2020.03.24


도츠카 에츠로

변호사



2020년 3월 26일은 안중근 대한의군 참모중장이 처형된 지 1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 총독을 사살한 한국인 독립 운동가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쏜 뒤 뤼순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다 일본 재판에서 1910년 2월 14일에 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 해 3월26일에 처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의 인격, 사상가로서의 자질, 예술적 재능을 숭배하고 존경하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안중근에 대한 한일 양국의 평가는 어떠한가? 한국에서는 독립운동의 ‘영웅’이지만 일본에서는 이토 히로부미 공작을 암살한 ‘테러리스트’다. 과연 이 평가가 맞는 걸까?

일제의 지배하에서 관동도독부지방법원이 재판 관할권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가장 큰 법적 문제점이다. 재판관은 1905년 11월 17일에 체결된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 혹은 제2차 일한협약) 제1조(일본 외무성이 대한제국의 외교권과 한국백성의 외교보호권을 가진다)를 근거로 하얼빈에 있는 일본 총영사가 재판 관할권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 일본형법을 한국인인 안중근에게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판결은 법적관점에서 중대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 일본 외무성조약국이 1934년 출판한 구조약휘찬(舊條約彙纂) 제3권(조선, 류큐) 204쪽. 교토대학소장


1963년 국제연합 총회에 제출된 국제연합 국제법위원회(ILC) 보고서에 따르면 을사늑약은 일본이 대한제국 황제와 그 각료를 협박해 강제로 체결된 것으로 국제법에서 볼 때 이는 절대적으로 무효다. 결과적으로 당시 일본 재판소에는 재판 관할권을 내세울 법적 근거가 없었다는 말이다.

재판의 불법성을 지적하는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을사늑약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정부가 보관하는 을사늑약 문서 일본어판 원본은 첫 줄이 공백으로 되어 있고 조약서의 제목조차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는 완성되지 않은 초안에 불과하다.

만약 조약이 존재한다고 해도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조약서에 최고 통치자 서명이나 비준이 없다는 것이다.


▲ 일본 외무성외교역사관소장자료(www.jacar.go.jp/goshomei/index.html)


한국 측은 이를 근거로 을사늑약이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일본 측은 비준 없이도 국가가 외교권을 이양하고 독립을 상실하는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국제법상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1905년 당시 일본의 국제법 학자는 모두 비준은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불필요하다고 주장한 저작은 한 건도 없었다. 1905년 이후에 비준은 불필요하다는 학설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 시제법의 논리에 의거하면 조약이 체결된 후의 학설은 체결 당시의 효력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중근 재판 관할권의 근거가 되는 을사늑약은 존재하지 않으며 재판 역시 관할권 없이 강행된 불법이었다. 따라서 2014년 스가 요시히데 내각 관방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안중근의 행위는 일본 형법상 살인죄에 해당하며 ‘테러리스트’라 평가한 것은 법적으로 옳지 않다.

안중근은 일본의 침략에서 자국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싸운 의용군 장군으로 평가돼야 마땅하다. 설령 사형 판결을 받았다고 테러리스트로 치부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아가 을사늑약을 기초로 체결된 1910년 한일병합조약 역시 무효가 된다고 볼 수 있다.

한일 양국은 지금부터라도 협의와 연구를 강화해 을사늑약의 본질에 대한 사항을 공유하도록 노력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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