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 역사의 국민 진통소염제 안티푸라민
1926년 미국에서 돌아온 31세의 청년사업가는 일제 치하에서 어려운 조국의 현실을 발견했다.그는 "건강한 국민만이 장차 교육도 받을 수 있고, 나라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국민건강을 지키는 제약업을 선택하고 서울 종로에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유한양행의 창업자 고 유일한 박사(1895-1971)의 이야기다.당시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약품은 수입 판매 제품이 전부였고 가격도 비싸 일반인들에겐 부담스러웠다. 유일한 박사는 결핵약에 이어 1933년 의사 출신인 부인 호미리 여사의 도움으로 소염진통제를 개발했다. 이 제품이 바로 국산 자체개발 의약품 1호 안티푸라민(Antiphlamine)이다.▲ 안티푸라민은 오늘날 연고제형 외에도 붙이는 파스, 뿌리는 스프레이, 피부에 바르는 로션 등 다양한 형태로 출시되고 있다.▲ 녹색 철제 캔에 간호사가 그려진 생산초기 형태의 안티푸라민 연고.안티푸라민을 개발한 고 유일한 박사는 "가장 좋은 제품으로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는 믿음으로 이윤추구가 아닌 기업의 국가 기여역할을 강조했다. 실제로 유한양행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실천한 사회공헌 대표기업이다. 유 박사는 일제 치하에서는 고국의 독립을 위해, 해방 후에는 국가와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개인주식 5만6천주를 기부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 친인척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자리를 물려주며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를 확립했다. 또,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며 1971년 영면하던 해에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유 박사에게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유한양행의 창업자 고 유일한 박사 (1895-1971)안티푸라민은 ;한국인의 가정 상비약 1호;로 오랫동안 사랑 받아왔다. 이 제품은 원래 관절염, 신경통, 근육통 등 국소 부위 치료를 위해 개발됐지만 사람들은 삐거나 멍들었을 때, 손발이 부르텄을 때, 벌레에 물렸을 때, 인중에 발라 막힌 코를 뚫을 때 등 온갖 상처와 증상에 사용했다. 이처럼 폭넓게 쓰인 까닭은 안티푸라민의 주성분인 멘톨, 캄파, 살리실산메칠로 등이 소염진통, 혈관확장, 가려움증 개선 작용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량의 바세린 성분도 함유되어 높은 보습효과를 보인다.1933년 출시 이후 진통소염제 1위를 늘 고수해왔지만 안티푸라민에게도 고비가 존재했다. 유한양행은 제품 다양화를 위해 1999년 안티푸라민 로션을 출시했다. 그러나 붙이는 패치 형태의 소염진통 제품이 인기를 얻자 안티푸라민의 인기는 주춤했고 매출은 20억원~30억원 대에 머물렀다. 유한양행은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그 결과, 2010년 파스 형태의 안티푸라민 조인트와 안티푸라민 파프와 스프레이 형태의 안티푸라민 쿨 에어파스를 선보였다.연고;로션;파스;에어로졸의 '안티푸라민 패밀리' 전체 매출은 2010년 24억원에서 2011년 59억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 해 총 매출은 98.9억원을 기록했다.오늘날 안티푸라민은 베트남, 미얀마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유한양행은 안티푸라민 외에도 전문의약품, 일반의약품, 의약외품, 건강기능식품, 생활용품, 동물약품, 의료기기, 진단시약 등 다양한 분야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2006년 유한양행은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읍에 지상4층, 지하1층, 연건평 15,411평의 국내 최대규모 공장을 설립했다. 약 1,300억 원이 투입된 이 공장은 미국 심사기준인 국제의약품 생산규격 CGMP(Current Good Manufacturing Practice) 수준의 자동화 생산설비와 첨단 계량시설, 자동화 물류센터 등 최신설비를 갖췄으며 일반 정제, 동물약품, 페니실린계 항생제 등을 생산한다.▲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읍의 유한양행 공장. 국내 최대 규모의 제약회사 공장이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의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1960년대 안티푸라민 연고의 신문 광고 이미지윤소정 코리아넷 기자arete@korea.kr 201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