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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년, 격변의 시절 환한 빛이 되어 준 2곡의 노래

    1974년, 격변의 시절 환한 빛이 되어 준 2곡의 노래

    2014년은 4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일들이 많은 해다. 40년 전인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암살당한 해이다. 또한 한국 음악에 큰 획을 그은 음악이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그 당시 한국에는 락 음악과 포크 음악은 접하기 힘든 생소한 장르였다. 레코드판 한 장 가격이 너무나 비쌌던 그때, 사람들은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복사;판을 구해 듣곤 했다. 원본을 오픈릴식 테이프 녹음기에 틀어 값싼 레코드판에 복사해 파는 사업이 번창했다. 그런 값싼 레코드판은 쉽게 부러졌지만 가격 부담이 적어서 음악 애호가들은 대부분 복사판을 구입해 들었다.전축으로 불렸던 오디오기기는 구하기 힘들었다. 전축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일 뿐이었다. 하지만 음악은 친구들, 그리고 대학생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그 당시엔 노래방이라는 것도 없었다. 노래방은 1980년대 후반에 와서야 생겨나기 시작했다. 노래방은 없었지만 레코드판 음악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음악 다방;이 있었다. 자정이 넘으면 통행을 금지하는 ;야간통행금지;제도 때문에 밤 11시 30분에는 문을 닫아야 했지만, 그전까지는 비싼 레코드판의 가격 걱정 없이 듣고 싶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1974년 가장 인기 있는 노래 두 곡을 꼽는다면, 하나는 8월에 발매된 신중현의 ;미인;, 또 하나는 한대수의 ;물 좀 주소;이다. 두 곡은 참신함과 독특하고 재미있는 가사로 큰 인기를 얻었다. 정치적인 메시지는 담고 있지 않았지만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는 학생들은 그 노래의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했다.신중현의 ;미인;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록, 펑크록, 사이키델릭 스타일이 엿보이는 음악이다. 한대수의 ;물 좀 주소;는 ;언플러그드로 연주하는; (전자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포크 록이다. 이 곡은 한국에 포크 록과 ;언더그라운드 록 밴드;를 처음으로 소개한 음악으로 평가되고 있다.전혀 다른 스타일의 뮤지션이 부른 이 두 곡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현대적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전통적인 색을 담고 있다. 발매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지만 안타깝게도 이 곡들은 당시 정부에 의해 금지곡으로 분류됐다. 음악 애호가들에겐 1974년 어둠의 시절, 환한 빛줄기와 같은 곡이었다.당시 익숙지 않은 록이라는 음악장르를 대중에서 소개한 신중현의 ;미인;은 록과 펑크 록 두 음악적 색깔과 함께 한국의 전통적인 보컬스타일을 담고 있다. 전설적인 펑크 록 밴드 ;팔리아먼트; 혹은 70년대 펑크 락을 연상시키는 듯한 도입부의 베이스 연주가 인상적이다. ;팔리아먼트;의 베이시스트 부치 콜린스의 연주가 한국 락 음악과 만났다고나 할까. ▲ 신중현의 첫 앨범 ;히키-申: 키타 멜로듸; (사진제공: 다음뮤직)이어 신중현은 ;비틀즈;의 헬터 스켈터(Helter Skelter);을 연상케 하는 창법으로 허스키하고 거친 목소리로 첫 소절을 시작한다.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네 소절이 끝나는 순간 신중현의 화려한 기타연주가 시작된다. 감각적인 기타 연주기법으로 베이스와 환상적인 합주를 선보이며 노래를 이어간다. 반주베이스의 솔로 연주 부분에서는 잠시 노래를 멈췄다가 다시 2절로 들어간다.이 곡이 나왔을 때 신중현의 나이는 36세. 그는 한국전쟁(1950-1953) 이후 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20여장의 앨범을 발매했다.1938년 태생인 그에게 전쟁과 가난의 아픔 속에서 음악은 유일한 해방구였다. 1955년, 17살인 신중현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 내며 기타를 독학했기 시작했다.음악을 하면서 다른 가수들을 위해 작곡한 곡들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사기를 당하는 등 수많은 수난을 겪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록 밴드를 결성하고 다른 가수들을 위한 작곡활동을 하는 등 활발한 음악활동을 펼친다. 또 1959년, 자신의 첫 데뷔앨범 ;히키-申: 키타 멜로듸;를 발매했다.1962년, 그는 한국 최초의 록 그룹 ;에드 포;를 결성하고 1969년에는 영화 ;푸른사과;의 배경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그의 본격적인 음악활동은 1974년부터였다.1974년 8월, 신중현은 밴드 ;신중현과 엽전들;을 결성해 앨범을 내놓았다. 밴드 이름을 그대로 딴 앨범 ;신중현과 엽전들;에 담긴 곡들은 70년대 펑크 록과 1968년의 혁신적인 록 장르를 한국적 록과 결합시킨 ;사이키델릭 록;을 선보였다.그룹의 리드 기타리스트와 보컬을 맡은 신중현과 함께 ;엽전 멤버;로는 베이시스트 이남이, 드럼연주자 김호식이 맡았다. 미국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결성한 밴드와 구성이 비슷하다. 지미 헨드릭스 밴드도 한 명의 리드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 그리고 드럼연주자로 구성됐다. 한 명의 훌륭한 기타리스트가 있으면 다른 리듬 기타리스트 없이도 혼자서 다양한 연주법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던 것이다.;신중현과 엽전들;의 1집 앨범은 처음 발매 당시 500여장 밖에 나오지 않아 한국에 현존하는 아날로그 레코드판 중 가장 값어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 앨범의 LP판은 1994년에 발매된바 있다.이 앨범은 찾는 사람이 많아 이후 지구레코드를 통해 재 발매됐다. 2차로 찍어낸 앨범에는 김호신 대신 새 드럼연주자 권용남이 등장했다. 지구레코드사는 좀 더 강렬한 스타일을 원했고 신중현은 기존 곡들을 리메이크해 편집음반을 발매했다.▲ 1974년 8월 25일 발매된 신중현의 20번째 앨범이자 그룹 ;신중현과 엽전들;의 첫 데뷔앨범. 이 앨범의 첫 곡으로 ;미인;이 실렸다. (사진제공: 다음뮤직)첫 곡으로 실린 ;미인;은 발매되자 마자 학생들,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히트였다. 이 곡은 1974년 후반부터 1975년까지 라디오에 계속 흘러나올 정도로 팬들의 오랜 사랑을 받았다.1975년 말, 그에게 뜻밖의 청탁이 들어온다.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어달라는 것. 신중현은 망설임 없이 곧바로 거부했다.그러고 나서 곧바로, 한국 땅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전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는 ;아름다운 강산;을 작곡했다.1975년 12월에는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됐고 이후 2년간 정신병원에 감금됐다. 1977년 풀려났을 때 그의 곡들은 여전히 금지곡으로 분류돼 있었고, 발라드와 댄스곡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록 음악은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었다.▲ 1974년 공연을 하고 있는 신중현과 엽전들. (왼쪽부터) 베이시스트 이남이, 드럼연주자 김호식, 그리고 리드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 신중현. (사진제공: Bing Images)신중현과 함께 1974년 한국음악에 큰 변화를 가져온 가수, 한대수. 부산 출신인 그는 뉴욕으로 이민 가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1961년 다시 한국 돌아온 그는 록 음악에 심취했고 대학가를 누비며 공연을 펼쳤다. 26세에 해군을 전역하자 마자 코리아 헤럴드의 기자로 활동했고 같은 해 데뷔앨범인 '멀고 먼 길'을 발매했다. 첫 곡이 '물 좀 주소'였다.신중현의 '미인'을 지미 헨드릭스의 'Purple Haze'(1967)과 비교한다면, 한대수의 '물 좀 주소'는 밥 딜런의 'John Wesley Harding' (1967)곡이라 할 수 있다.그의 곡들은 자유와 행복을 염원하고, 때론 한 인간의 비애를 담기도 했다. 한대수는 노래 뿐 만 아니라 어쿠스틱 기타 실력도 선보였다. 그의 첫 앨범은 대 히트였다.큰 인기를 얻었던 첫 번째 곡 '물 좀 주소'는 목이 말라 물 달라고 하는 한 남자의 외침으로 시작된다.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갈증을 해소하고픈 '절박함'이 담겨있다.한대수의 끓는 듯한 거친 목소리가 Sonny & Cher 혹은 Mama & The Papas를 연상케 하는 기타 반주에 맞춰 흘러나온다. 이어 베이스 연주가 시작되고 그는 삶의 절박함과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물 좀 주소'를 또 다시 외친다. 드럼연주는 ;비틀즈;의 링고 스타를 떠올린다. 한대수의 울부 짓는 듯한 목소리는 마치 ;비틀즈;의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프라이멀 스크림 테라피' (정신요법의 일종)를 받을 때 절규하는 듯하다. 앨범 자켓은 얼굴을 손으로 쥐고 절망에 빠진 듯한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한대수의 모습을 담았다.▲ 1974년 발매된 한대수의 1집 앨범 '멀고 먼 길'. 그의 곡들은 1980년대 후반까지 금지곡이 됐다. (사진제공: 다음뮤직)한대수 역시 당시 정부의 감시를 받았다.당시 민주화, 시민의 자유, 그리고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학생 운동가들은 집회에서 한대수의 노래를 불렀다. 마치 국가를 부르듯 한대수의 노래가 민주화 운동이 열리는 곳마다 울려 퍼졌다. 학생운동가들은 경찰들의 진압에 맞서 흩어지지 않으려고 어깨동무를 하며 한대수의 곡을 열창했다. 그들은 정의와 민주주의를 갈구했다.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펼치지 못한 한대수는 뉴욕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그곳에서 밴드를 결성하며 음악활동을 펼쳤다. 필자가 알기로는 한대수는 당시 뉴욕에서 유명했던 록 클럽인 CBGB에서 한국인 최초로 공연을 했다.한대수의 또 다른 곡인 '행복의 나라로'는 '암막'으로 더 이상 가려지지 않은, '어둠' 없는 밝은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40년이 지난 오늘, 한대수의 공식홈페이지 이름은 '행복의 나라'다.지금의 한국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그리고 문화적으로나 40년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한국의 문화와 음악은 지난 40년간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 이제 한국은 전 세계 대중문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한국의 것;으로 재탄생 시켜 다시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최근 한 대학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이 수입하는 미국의 영화, 음반 등 문화상품이 7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그리고 중국으로 수출되는 한국 문화상품은 82.3%에 달한다. 서구 문화를 수입해 '동양적인 색'을 입히고 다시 다른 아시아 국가에 수출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국가이기에 가능한 것이다.서울 명동 지하 상가에는 레코드판을 파는 상점 하나가 있다. 이곳에는 신중현과 한대수의 레코드판은 물론, 그때 그 시절 아날로그 레코드판이 진열되어 있다.흠집 하나 없이 완벽하게 포장된 한대수의 첫 앨범 '멀고 먼 길'은 110,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40년 전에는 금지곡이었던 신중현과 한대수의 곡들. 이제는 그들의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다. ▲ 1974년, 당시 26세였던 한대수는 첫 데뷔앨범을 발매했다. (사진제공: 다음뮤직)그레고리 이브스 코리아넷 기자gceaves@korea.kr 201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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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공연 줄이어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공연 줄이어

    ;아름다운 것은 추하고, 추한 것은 아름답다;이는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비극 ;멕베스;에 나오는 대사. 이 작품 속에서는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등 서로 대립되는 가치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사회가 거대해지고 혼란스러워 질수록 삶의 본연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고 삶을 짚어보는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러한 인간의 복잡한 갈등과 다양한 감성을 셰익스피어만큼 잘 표현해낸 작가가 또 있을까?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아 한국에선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연극, 오페라, 영화, 뮤지컬 등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의 작품은 뛰어난 통찰력으로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선과 악, 욕망의 충돌은 현재진행형이다. ▲ (맨 위부터)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멕베스;의 한 장면, ;템페스트;의 포스터, ;베니스의 상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노래하는 샤일록; (사진: 국립극단)국립극단은 이달 서울명동예술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강렬하고 시적인 리듬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손꼽히는 ;멕베스;를 올렸고, 4월엔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노래하는 샤일록;을, 5월엔 같은 무대에서 ;템페스트;를 각각 선보인다. ;노래하는 샤일록;은 원작 ;베니스의 상인;을 크게 변형하지 않으면서도 흑백논리를 벗어나 샤일록을 재해석한 코미디이며 ;템페스트;는 형제 간의 배신과 복수, 우연한 만남과 사랑을 담고 있는 후기 걸작이다. 또 5월 말 명동예술극장에서는 ;줄리어스 시저; 공연도 예정돼있다. ;줄리어스 시저;는 로마의 정치가 시저를 그린 연극으로 ;브루터스 너마저!;라는 유명한 대사로 기억되는 작품이다.오페라도 있다. 국립오페라단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가 작곡한 오페라 ;오텔로;와 샤를 구노(Charles-Fran;ois Gounod) 작곡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각 10월과 11월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잇따라 선보인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우아하고 서정적인 음악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며 ;오텔로;는 원작의 재구성과 방대한 스케일의 음악으로 이루어진 장엄한 비극이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각색한 뮤지컬도 관객을 찾는다. ;햄릿;의 여주인공 오필리어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뮤지컬 ;오필리어;가 5월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 국립오페라단이 선보이는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위)과 ;오텔로;(아래)의 한 장면 (사진: 국립오페라단)해외초청 공연도 있다. 국립극장은 오는 4월 영국 브리스톨 올드빅 극장 (Bristol Old Vic Theatre)의 연극 ;한여름밤의 꿈;을 초청해 달오름 극장에 올린다. 지난해 영국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런던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가디언;으로부터 ;마법에 걸린 듯 신비하다;는 호평을 들었다. 올해 2월 런던 바비칸센터(Barbican Centre) 공연을 시작으로 세계 투어에 돌입했으며, 한국에서 마지막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영화에서는 바즈 루어만(Baz Luhrmann)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 DiCaprio), 클레어 데인즈(Clair Danes) 주연의 1996년 작 ;로미오와 줄리엣;이 27일 한국에 재개봉 된다. 이 작품은 원작의 줄거리와 대사만 살리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각색한 것이 특징이다. 원작에서 나온 앙숙관계의 두 가문은 경쟁기업으로 바뀌고 록음악이 더해지면서 청춘 영화로 변모했다. 프랑코 제페렐리(Franco Zeffirelli) 감독, 올리비아 핫세(Olivia Hussey) 주연, 감미로운 멜로디로 유명한 1968년 작 ;로미오와 줄리엣;이 주는 감수성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재개봉되는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포스터 (사진: 프레인 글로벌)이처럼 셰익스피어는 연극, 영화, 뮤지컬, 오페라 등 무대에서 아직도 살아있다. 전 세계에서 단 하루도 그의 작품이 공연되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할 만큼 그의 작품은 다양한 변형을 거쳐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잇따라 공연되는 또 다른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연극의 교과서라고 일컬어질 만큼 작품에 내재된 갈등을 풀어내는 스토리의 구성과 캐릭터의 묘사가 완벽하기 때문이다.올 초 공연됐던 ;햄릿;을 각색한 연극 ;두 병사 이야기;의 석성예 연출은 ;셰익스피어 작품은 읽을수록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만든다;고 말했고 2월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인 양정웅 연출은 ;셰익스피어는 연극인의 영혼과 심장이다;라고 평했다. 국립극단 ;멕베스;의 이병훈 연출은 ;셰익스피어 희곡은 연극의 성서다;며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은 알 수 없는 시스템에 걸려 들어 파멸한다. 보여지는 세계와 내적인 진실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고 설명했다.국립극단 김윤철 예술감독은 ;타계 400주년을 맞는 2016년까지 셰익스피어 작품은 세계 연극계의 화두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3년간 셰익스피어의 주요 레퍼토리를 계속해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셰익스피어 연극은 5세기 전의 작품임에도 어느 나라에서나 동시대 연극으로 현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현대예술이 구현하고 있는 삶의 신비함과 모호함, 절망에 빠진 부조리적 상황까지도 이미 포함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셰익스피어 연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매력을 지녔다. 타계 400주년이 되는 2016년에는 보다 본격적인 셰익스피어 판을 벌여볼 것;이라고 덧붙였다.임재언 코리아넷 기자jun2@korea.kr 201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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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선으로 지형과 하나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곡선으로 지형과 하나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이음새 없이 물 흐르는 듯한 디자인. 외부는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물 내에서 기둥을 찾을 수 없는 비정형 건축물. 이라크 태생의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마치 거대한 외계우주선이 서울한복판에 내려앉은 모양이다.21일 개관을 앞두고 서울을 찾은 하디드는 ;건축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고 싶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건축물과 지형을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굉장히 어려웠지만 성공적으로 구현됐다. 건축물 자체가 지형이 됐다는 것이 DDP의 특징이다;라고 말했다.하디드는 2004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최고의 건축가들에게 주어지는 프리츠커 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받았다. 그는 DDP외에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베르크이젤 스키 점프대(2002), 독일 라이프치히 BMW센트럴 빌딩(2005), 이탈리아 로마 MAXXI(2010), 2020년 도쿄올림픽 주경기장 등을 설계했다. DDP는 하디드가 한국에서 설계한 첫 프로젝트로 세계 최대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이다. ▲ 어느 각도에서나 다른 모습을 한 DDP의 외부 (사진: 서울디자인재단)그는 건축계에서 오랫동안 ;페이퍼 아키텍트;라 불렸다. 도면 위에 설계는 했지만 실제 건축으로 이어지는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파격적이고 과감한데 쉽사리 타협하지 않아 설계도면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디자인은 막힘도 경계도 없다는 점이 남다르다. 건물뿐 아니라 가구, 패션, 액세서리까지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하디드는 2007년 국제공모에서 당선되면서 DDP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DDP는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을 허물고 ;시민과 함께 만들고 누리는 디자인;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설계의 주요 아이디어는 건축물이 주변지형과 결합되는 것이다. 현장에 있는 공원과 유기적 결합할 수 있도록 설계됐고 컨셉트를 충실히 실현해서 이와 같은 결과물이 나오게 됐다.DDP의 특징은 사방 어디에서 보더라도 같은 모양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부 벽면에 동일한 색의 알루미늄 패널을 덮는 등 표면을 단순화하면서 차분한 느낌을 주도록 설계됐다.▲ DDP의 아트홀 1관, 2관 (사진: 서울디자인문화재단)▲ 지하 2층에서 지상 4층까지 이어지는 조형계단 (사진: 서울디자인문화재단)자하 하디드 아키텍츠(Zaha Hadid Architects)의 파트너인 패트릭 슈마허(Patrik Schumacher)는 ;DDP는 하나의 조형물이만 규칙성이 없고 어느 각도에서 보든지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모양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낯선 땅을 밟으면서 돌아다닐 때 받는 느낌이다;며 ;중요한 것은 이 건축물이 이음새 없이 연결이 되면서 통일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고 밝혔다.그는 또 ;DDP의 건축개념이 너무나 독창적이고 색다르다;며 ;우리가 지향했던 개념과 건축물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시민의 이해를 얻게 됐다. 처음에는 디자인이 너무 낯설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바뀌었다. 대부분의 작품이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고 덧붙였다.최첨단 기술로 건축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건축비만 약 5000억 원이 투입됐다. 지하 3층, 지상 4층, 연면적 8만5320m2에 컨벤션홀, 아트홀, 전시관, 스튜디오, 비즈니스센터, 편의시설 등 복합공간이 만들어졌다. 기둥도 없고 곡선으로만 이루어진 이 건축물의 설계를 구현하기 위해 최첨단 설계 기법인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이 도입됐다. 이는 2차원의 평면적 도면 정보를 3차원 입체설계로 전환하고 설계, 시공, 유지관리 등에 활용하는 기법이다. 또 기둥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실내를 구현하기 위해 초대형 지붕 트러스(Mega-truss)와 스페이스 프레임 등의 새로운 기술이 적용됐다.DDP는 구성 또한 극적이다. 층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공간들이 겹쳐있고 전체를 휘감으며 올라가는 갤러리가 있다. 특히 컨벤션 센터인 아트홀 오픈 스튜디오는 면적 2992m2에 최고 높이 9m로 탁 트인 공간을 자랑한다. DDP는 지하 2층부터 지상 4층까지 휘몰아치는 듯한 조형 계단으로 연결된다.▲ DDP 개관전인 Zaha Hadid_3600이 열리는 갤러리 (사진: 임재언)▲ 곡선이 끝없이 이어지는 건물의 외부 (사진: 임재언)▲ 동대문운동장 부지에서 발견된 유적을 보존한 모습 (사진: 임재언)DDP의 외부는 4만5133장의 서로 다른 모양의 알루미늄 패널로 덮여 있다. 4mm의 알루미늄 패널 제작은 DDP공사의 성패를 가르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하디드는 2차원 곡면 패널을 제작하기 위해 영국과 독일업체에 제작을 요구했으나 비정형 패널 제작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다 만들려면 20년이 걸린다는 통보를 받았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한국 기술로 최첨단 성형 장비 및 절단기를 개발했다. 이로써 총 6건의 특허를 보유하게 되었고 하디드는 전세계에서 자신이 설계한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한국의 외장패널을 소개하고 있다.이상규 삼성물산 공무팀장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건축물이다 보니 참고할 자료가 없어 공사가 쉽지 않았다;며 ;외장패널 공사를 정해진 비용과 공사기간 내에 성공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모든 금속 성형 분야의 기술들을 총 망라했다;고 말했다.- 11일 DDP에서 열린 자하 하디드와의 기자회견에서 그의 건축세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1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DDP 디자인 컨셉트를 설명하는 건축가 자하 하디드 (사진: 임재언)- DDP를 설계할 때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목표는 서울에서 가장 번화하고 유서 깊은 지역인 동대문에 문화 허브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전시와 이벤트가 주변에 문화적 활력을 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성곽의 흔적을 살리면서도 공원과 플라자를 물 흐르듯이 매끄럽게 하나로 묶고 싶었다. 주변에 녹지가 하나도 없다는 점도 고려했다. 최첨단 기술을 사용해 건축물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고 이들을 하나의 풍경으로 아우르고 싶었다.- 설계에 곡선을 많이 사용한 이유는?- 커브를 좋아한다. 20년 전부터 여러 프로젝트 시작하면서 건물의 지형과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대형 프로젝트는 넓은 부지에서 건축되기 때문에 지형의 특성을 고러하지 않을 수 없다. 지형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 보니 둥근 모양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낯선 땅을 처음 밟았을 때 주위를 살펴보면 각보다 곡선이 많이 있다. 그래서 곡선이 많이 들어간 것 같다.-DDP는 다른 작품과 어떻게 다른가?- 모든 작품은 공통적으로 장소에 따라(site specific) 많이 달라진다. 지형을 고려하면서 건축물이 나올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점은 모든 프로젝트에서 고민이다. 이번에는 지형과 건축물의 조화를 이루는 것에 있어서 새로운 접근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이 부지의 특성, 역사적인 배경, 건축물의 조화를 추구하다 보니 독창적(original)인 결과물이 나왔다.- 세계도시의 많은 도시들 가보았는데 디자인에 관점에서 어떤지?-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유럽과 아시아 도시들은 많이 다르다. 도시마다 자기 고유의 전통에 따라 생겨난 특성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많은 도시들이 글로벌화를 지향하다 보니 공통점도 많이 생긴다. 서울이 글로벌화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여기서 서울이 나아갈 길은 도시성(urbanism)을 어떻게 구현하느냐 하는 것이다.▲ DDP 개관전인 Zaha Hadid_3600 에서 포즈를 취한 자하 하디드 (사진: 임재언)- 어떻게 독창적으로 접근했나?- 건축과 지형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건축물 자체가 지형이 된 것이다. 그런 것이 독창적이다. 지붕이 잔디로 덮여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 건축물이 존재함으로 인해서 새로운 지형을 인공적으로 창조해낸 것이다. 전시공간을 박스형태로 두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 자체도 지형에 녹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독창적이다.- 원래의 디자인이 얼마나 구현이 되었는지? DDP의 완성된 모습에 만족하나?- 설계도가 나오고 건축물이 지어지면 또 다른 차원이 생긴다. 실제로 건축자제가 사용이 되면 그런 재질의 특성에 따라서 굉장히 고유한 모습을 갖춘다. 그러면 설계도와 다른 느낌과 분위기를 갖게 된다. 건축을 하는 과정은 설계도를 해석하는 과정이다. 이번 건축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잘 해석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어떻게 역사적, 문화적 요소를 고려했나?- (슈마허) 동대문 경기장을 철거하고 디자인플라자를 짓는 것은 서울시의 결정이었다. 공모전에 참가하면서 그런 것이 제시가 됐다. 지형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 경기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설계에 반영했으면 좋겠다는 주문이 있었다. 경기장에서 사용되었던 투광조명(floodlight)를 보존했다.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경기장 느낌이 나도록 디자인했다.- 전시공간으로서의 건축물의 디자인의 차이는?- (슈마허)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곡선의 흐름, 이음새 없이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도시성(urbanism)이라는 철학을 녹여 내려고 노력했다. 인테리어 디자인 또는 제품 디자인에 다 적용되는 것이다. DDP가 굉장히 복잡한 건물이라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사용해야만 했다. 곡선을 많이 집어 넣은 것은 의도적이었다. 다목적 공간이 배치가 되어있고 이런 복잡성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시각적 차분함을 담아내야만 했다. 직선이었다며 혼돈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곡선을 이용해서 복잡하지만 차분함과 우아한 느낌을 살릴 수 있었다.- 디자인과 건축은 비슷하다고 본다. 하지만 건축은 훨씬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다. 건축 공간 속에 공간이 있고 다층적인 공간이 있어서 이를 설계해야 하는 건축이 훨씬 더 복잡하다. 디자인 회사로서는 다양한 규모에서 디자인을 할 수 있다. 기본적인 개념에서 반지 디자인과 건물 디자인은 비슷할 수 있지만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훨씬 더 복잡한 것이 건축이다.- 스케일이 과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무엇을 기준으로 과하다고 하는지 되묻고 싶다. 사실 스케일은 건축가에게 주어진 것이다. DDP는 집이나 사무실을 설계하는 것과는 다르다. 특정 기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디자인한 것이다. 지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곡선을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직선을 이용해 박스형태로 건축물을 지었다면 지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더 커 보였을 것이다. 정해진 기능이나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축소가 불가능하다. 요건이 달라지면 다른 프로젝트가 됐을 것이다.- 도시 디자인에서 서울이 지향해야 할 점은?- 모든 도시가 도시의 특성을 건축에 고려해야 한다. 교통수단 등의 변천과 함께 많은 도시들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도시의 성장과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도시의 모습을 바꾸는데 있어서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도시가 변화하는 특성을 건축에 반영해야 한다.- 여성으로서 정상의 건축가 자리에 올랐다. 건축이 ;끝없는 전투;라고 했는데?- 건축가라는 직업 자체가 굉장히 어렵고 힘들다. 건축가는 동료들, 정치인, 건축주 등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 이 전투가 여성이기 때문에 더 힘든 게 사실이다. 내게 지난 30년은 여성 건축가로서 인정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장애물에 부딪히는 과정이었다. 요즘엔 환경이 많이 바뀌어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여성이 더 힘들다.임재언 코리아넷 기자jun2@korea.kr 201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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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캐나다 두 정상, FTA타결 선언

    한-캐나다 두 정상, FTA타결 선언

    박근혜 대통령은 11일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한;캐나다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선언하고 한반도에서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안정을 위한 북핵 포기 촉구 등에 합의했다.박 대통령과 하퍼 총리는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채택한 '한;캐나나 정상간 공동성명'을 통해 "한;캐나다 FTA 협상 타결을 환영하고 양국간 파트너십을 새로운 단계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양국이 천부적 파트너로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앞서 박 대통령은 확대회담 모두발언에서 "한;캐나다 FTA가 양국 관계 협력의 새로운 룰이라고 할 수 있고 특히 이것을 바탕으로 두 나라의 경제협력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11일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기 전에 악수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11일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장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오른쪽 세번째)이 11일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사진: 청와대)이에 하퍼 캐나다 총리는 "오늘 우리의 양자 관계는 한국전쟁 당시 캐나다에서 참전했던 2만6천명의 참전용사들, 그리고 한국계 캐나다 20만 교민들과 같은 인적 교류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며 "이를 통해 안보와 경제협력이 더욱 강화될 수 있음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FTA 협상 타결과 관련해 "작년에 양국 외교관계 수립 50주년을 기념한 데 이어, 양국이 함께 이룩한 획기적인 성과"라면서 "FTA가 가급적 조속히 발효되도록 할 것이라는 의향을 공유하며, 법률 검토와 필요한 국내 절차를 신속하게 완료하고자 한다"고 말했다.그러면서 "한;캐나다 FTA는 21세기형 무역협정으로 양국간 교역;투자 관계를 강화시킴으로써, 양국 국민에게 일자리와 경제적 기회 창출은 물론, 수출기회 증대와 혁신적 파트너십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며 "한;캐나다 FTA가 이행될 경우, 양국 경제와 중소기업을 포함한 업계, 그리고 소비자들 모두에게 상당한 혜택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지지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양국이 지역 및 범세계 문제에 있어 공동의 목표를 수호하고 증진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추구하고 있는 한반도에서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안정이 이루어지기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밝혔다.이어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포함한 모든 현존하는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포기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성명은 이어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에 기초한 한반도 평화통일의 비전을 공유하며, 이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라며 "또한 동북아시아에서 신뢰구축의 수단으로서 역내 대화와 협력의 중요성과 역할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양국 관계에 대해 "두 정상은 한;캐나다 양국이 강력한 경제적 파트너로서, 에너지;자원, 혁신, 과학;기술 및 북극 연구;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제협력 기회가 많다는데 인식을 같이 한다"고 강조했다.위택환․윤소정 코리아넷 기자whan23@korea.kr▲ 박근혜 대통령(가운데)이 공식방한한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환영 공식만찬에서 한-캐나다 FTA와 양국간 협력관계를 강조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공식방한한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를 환영하는 공식만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오른쪽 네번째)과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가 11일 공식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201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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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키에서 활약 중인 월드스타, 김연경

    터키에서 활약 중인 월드스타, 김연경

    유럽최대의 터키 배구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선수가 있다. 터키 최상위 배구팀 ;페네르바체(Fenerbah;e);에서 공격과 수비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고 있는 배구스타 김연경(25).▲ 터키 여자배구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김연경 선수 (사진제공: 인스포코리아)김연경 선수에게는 ;월드스타;라는 칭호가 더 어울린다. 2011년 입단 후 그가 지금까지 공격수로 활발히 뛰고 있는 ;페네르바체;팀은 터키 여자 프로배구리그 2008-2009, 2009-2010, 그리고 2010-2011시즌까지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터키의 최강 팀.영입 당시, 페네르바체 구단의 한 관계자는 "각종 세계대회에서 김연경을 눈여겨보면서 영입을 원했다"며 "공격뿐 아니라 리시브, 블로킹도 뛰어나 '멀티 플레이어'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김연경 선수의 배구사랑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처음부터 ;배구 신동;이 아니었다. 또래보다 너무 키가 작은 탓에 주로 세터를 보던 ;벤치멤버;였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건 한일전산여고에 진학하면서부터다. 고3 무렵 키는 186cm로 훌쩍 커져 있었고 강력한 공격수로 팀의 주전으로 성장했다.2005년 프로무대에 발을 들여놓으며 본격적인 선수 활동을 시작했다. 데뷔 첫해였던 여자프로배구 2005-2006시즌에는 신인왕부터, 정규리그 MVP,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싹쓸이 했다. 2006-2007시즌에도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동시 석권했고 2007-2008시즌 정규리그 MVP 3연패에 이어 2008-2009시즌 챔피언결정전 MVP 3연패를 달성했다.▲ 터키 여자배구팀 ;페네르바체;에서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는 김연경 선수가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제공: 인스포코리아)2009년에는 일본 프로배구 JT마블러스에 입단하며 한국 여자 프로배구 역사상 해외로 진출하는 첫 선수가 됐다. 그는 당시 일본 여자배구 10개 팀 중에서 9위에 머물렀던 JT마블러스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또 한번의 기적을 이뤄냈다.또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해 한국 여자배구를 세계 4강으로 이끌었고, 메달을 따진 않았지만 한국 여자배구선수 최초로 올림픽대회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김연경 선수의 존재감은 터키에서도 그 빛을 발하고 있다. 페네르바체는 지난 2일 유럽배구연맹(CEV) 주최 2013-14시즌 컵대회 준결승전에서 세트 스코어 3-0으로 아제르바이잔의 아제랄바쿠를 완패시켰다. 김연경은 이날 경기에서 서브에이스 2개를 포함해 11점을 기록하며 팀 결승 진출을 견인했고, 3월 말 러시아 팀 우랄로츠카와의 결승전만을 남겨두고 있다.코리아넷은 김연경 선수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터키에서의 선수생활과 그의 배구 사랑에 대해 들어봤다.<김연경 선수 인터뷰>- 터키에서 활약하는 모습 잘 보고 있다. 터키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많이 적응이 돼서 잘 지내고 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혼자 생활하다 보니 요리도 많이 늘고 혼자 지내는 게 편해졌다▲ 김연경 선수가 자신을 응원하러 온 터키 팬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 인스포코리아)- 2011년부터 터키 리그에서 뛰게 됐다. 페네르바체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듣고 싶다.일본 JT마블러스 팀에서 2년 동안 뛰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뒤 유럽 진출을 꿈꾸고 있었다. 때 마침 페네르바체에서 나를 원했고 터키리그 수준이 높다고 생각해 결정하게 되었다. 사실 다른 유럽 팀과 계약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 페네르바체에서 연락이 왔고 이 팀을 선택하게 됐다.- 국가대표선수, 2009년 일본 JT마블러스, 그리고 터키 페네르바체 등 지금까지 한국, 일본, 터키 무대에서 뛰었다. 이 세 나라에서 경기하는 차이가 있다면?한국 대표로 뛰는 것은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경기할 때 마음가짐부터 다른 팀 경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한국 대표팀 선수들과 경기를 하면 클럽 팀들과의 경기보다 수준이 높고, 나에 대한 기대도 크다고 생각한다.일본 배구는 정말 빠르고 기본기가 탄탄해 공격을 하면 한 번에 끝내기가 쉽지 않다. 당시 외국인 선수는 나 혼자뿐이라 부담이 컸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터키의 상위 팀과 경기할 때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블로킹이 높고 그 뒤에 수비가 철저해서 쉽지 않은 것 같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돼서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뛰는 것이 매 순간 즐겁다.- 여러 나라의 제의에도 불구하고 터키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세계에서 배구리그 수준이 가장 높고, 또 훌륭한 선수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어서 이 팀을 선택하게 됐다.- 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배구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큰 언니가 배구를 먼저 시작했었는데, 매일 언니가 배구할 때 옆에서 공을 주웠다. 원래 운동을 좋아해서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마침 배구를 알게 됐고 그게 시작이었다.- 다른 운동을 생각해 본 적은 없나?중학교 때 키가 작은 편이어서 축구를 해볼까 생각했었다. 마침 아는 선배가 배구를 하다가 축구로 종목을 바꾸게 됐고, 그 팀에서 내가 오길 원했다.- 올 시즌 서브 득점 1위, 세트당 득점 2위, 베스트 플레이어 선정 등 모든 시합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192cm의 큰 키에도 민첩한 움직임과 강력한 테크닉을 가질 수 있는 자신만의 몸 관리 비결이 있다면?신체 조건을 잘 가지고 태어난 것도 있고, 항상 노력하고 연구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학창시절에 키가 작은 편이라 공격보다는 수비 연습을 많이 했었던 것이 지금큰 도움이 되고 있다. 몸 관리를 위해 각종 영양 보충제를 꾸준히 복용하고, 잠도 많이 잔다.- ;다른 선수들보다 이것만은 자신 있다;하는 자신만의 무기가 있다면?큰 키에도 불구하고 수비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 25살. 당신은 아직 젊다. 언제까지 선수활동을 하고 싶나? 그리고 은퇴 후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궁금하다.오랫동안 선수활동을 하고 싶다. 아직 확실하게 ;언제까지; 정해놓진 않았지만 다치지 않고 좋은 기량을 유지한다면 하고 싶을 때까지 계속 하고 싶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나 배구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만약 배구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나?배구가 아닌 다른 운동을 하고 있지 않을까.- 운동하느라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많을 것 같다. 지금 이 나이에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없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말도 통하지 않은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어려움도 많이 있었을 것 같다.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하다.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혼자 있으면서 밀려오는 외로움도 힘들 때가 있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더라도 이곳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면서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처음보다 영어나 터키어가 조금 늘어서 대화하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지금까지 포기 하지 않고 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인가?그냥 쉬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항상 꿈을 생각하며 그 꿈에 가깝게 가려고 노력했다. 옆에서 항상 함께 해주는 가족이 있기에 힘을 내서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배구란?삶, 내 인생이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배구에도 행복할 때와 슬플 때가 있다. 내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배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됐다. 배구도, 인생도 앞으로 계속 나와 함께 같이 가야 하는 것이다.▲ 김연경 선수가 코리아넷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친필 싸인 (사진제공: 인스포코리아)손지애 코리아넷 기자jiae5853@korea.kr 201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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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신이 보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외신이 보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내수 활성화;규제개혁;노동생산성 제고 등 적절한 처방;;4% 경제성장은 충분히 달성, 3개년 계획은 아시아 및 세계경제의 모델;;장기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과감한 구조개혁;외신과 해외 투자은행들은 한국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3개년 계획이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내수활성화 및 규제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집권 1주년을 맞은 박근혜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종합경제정책으로 잠재성장률을 4%대, 고용률 70%를 달성, 그리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 4만 달러 시대를 여는 것이 목표다.블룸버그의 경제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William Pesek)은 3월 3일자 기고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474;비전은 경제학자나 기업가, 정책입안자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성취 가능한 정책;이라며 ;박 대통령이 주변 국가들처럼 통화량 증대와 같은 단기적인 처방이 아니라 장기적인 비전에 초점을 맞추는 것 자체가 전망을 밝게 한다;고 평했다.블룸버그는 이에 앞서 2월 25일자 기사에서도 ;3개년 계획이 한국 경제에 필요한 정책이며 장기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과감한 구조개혁;이라며 ;서비스 산업 활성화는 수출의존도 감소를 통해 잠재성장률을 목표치인 4%까지 끌어올리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블룸버그는 3월 3일자 칼럼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성취 가능한 정책;이라고 평했다.월스트리트 저널도 2월 27일자 사설에서 ;3개년 계획은 아시아와 세계경제에 새로운 성장 모델이 될 수 있는 종합적인 개혁정책이다. 이 계획이 민간 주도의 성장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의 현 상황에 맞는 올바른 해법;이라며 ;생산성 제고에 초점을 두고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변국의 경제정책보다 낫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월 25일자 기사에서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한국의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강조했다.해외 투자은행들도 박근혜 정부의 3개년 계획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라는데 공감하고 실현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HSBC 로널드 맨(Ronald Man) 아시아담당 애널리스트는 ;박 대통령은 한국의 잠재 경제성장률을 강화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아시아 지역의 경제정책이 개혁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는 정치적 의지가 과거보다 훨씬 강력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바클레이스 은행의 애널리스트 와이 호 렁(Wai Ho Leong)은 2월 26일 3개년 계획을 주변국의 경제정책과 비교하면서 ;3개년 계획이 더 포괄적이고 실질적이며 실행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와 목표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월 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바클레이스 은행은 전날 보고서에서도 ;3개년 계획이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과 같은 단기 경기진작이 아닌 구조개혁으로 과감하게 전환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2014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4.1%, 2015년에는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4.2%까지 오르고, 2017년까지 4% 잠재성장률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평했다.호주뉴질랜드은행(ANZ)의 레이몬드 응(Raymond Yeung)은 2월 28일 일본의 외교전문지 The Diplomat에서 ;이 계획이 한국경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는 문제들을 정확한 진단(correct diagnosis)하고 있다;고 언급했고, JP Morgan도 2월 25일 보고서에서 ;이 계획이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적절한 정책;이라고 분석했다.▲ 취임 1주년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중간)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 청와대)한편 지난달 방한한 나카오 다케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총재는 현오석 경제부총리 및 기획재정부 장관 면담시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발전을 추구하는 한국의 새로운 성장전략이 아시아 국가에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제시할 것;이라며 ;3개년 계획이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근본적 경제구조개혁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임재언(林在彦) 코리아넷 기자jun2@korea.kr 20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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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시 소녀시대, 컴백 첫 무대에서 정상

    역시 소녀시대, 컴백 첫 무대에서 정상

    ▲ 1년 1개월 만의 복귀 첫 무대인 ;M.Net; 엠카운트타운(Mcountdown)에서 정상에 오른 소녀시대가 앵콜 공연을 펼치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전한 기자소녀시대가 컴백 첫 무대에서 정상에 오르며 저력을 입증했다.소녀시대는 6일 복귀 무대로 택한 ;M.Net; 엠카운트타운(Mcountdown) 생방송에서 타이틀곡 ;미스터 미스터(Mr. Mr.);의 무대를 처음 공개했다.소녀시대는 검은 정장에 중절모를 쓰고 나와 보이시한 모습을 선보이며 1년 1개월 동안 기다린 팬들에게 그녀들만의 매력을 뽐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남자 백댄서와 호흡을 맞춘 소녀시대는 의상컨셉에서 짐작이 되는 것 처럼 파워풀하면서도 소녀시대만의 군무를 선보였다.▲ 소녀시대가 6일 첫 복귀 무대인 ;M.Net; 엠카운트타운(Mcountdown)에서 1위에 오르자 기뻐하고 있다. 전한 기자소녀시대는 이날 ;미스터 미스터(Mr. Mr.);에 앞서 이번에 발표한 미니앨범에 수록된 ;웨잇 어 미닛(Wait a minute); 무대도 선보였다. 소녀시대는 보이시한 ;미스터 미스터(Mr. Mr.);와 달리 ;웨잇 어 미닛(Wait a minute); 무대에는 가죽치마와 하트가 그려진 상의를 입고 나왔고 무대도 꽃으로 꾸며져 그녀들만의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p>▲ 소녀시대가 6일 복귀 무대에서 함께 공개한 ;웨잇 어 미닛(Wait a minute); 은 타이틀곡 ;미스터 미스터(Mr. Mr.)와 상반된 분위기로 연출했다. (사진제공: M.net)상반된 분위기의 무대를 이날 모두 선보인 소녀시대는 KBS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 등 각종 음악 방송프로에 차례로 복귀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한편 이날 ;M.net; 엠카운트타운(Mcountdown) 생방송에는 박지윤, 동방신기, 씨엔블루, 선미, 베스티, 갓세븐, 레이디스코드, 린, 소유&정기고, 원피스(1PS), 멜로디데이, 루나플라이, 비투비, 넬, 방탄소년단, 태원이 출연해 무대를 화려하게 수 놓았다.소녀시대가 복귀한 M.net 엠카운트타운(Mcountdown)의 더 많은 사진은 여기서(http://www.flickr.com/photos/koreanet) 확인 할 수 있다.전한, 백현 코리아넷 기자hanjeon@korea.kr▲ 첫 복귀무대에서 정상에 오른 소녀시대가 6일 타이틀곡 ;미스터 미스터(Mr. Mr);의 앵콜 공연을 하고 있다. 전한 기자▲ 소녀시대는 1년 1개월 만에 발표한 미니앨범 타이틀곡 ;미스터 미스터(Mr. Mr); 무대에서 데뷔 후, 최초로 남자백댄서와 호흠을 맞췄다. (사진제공: M.net) 201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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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 외교, 유엔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 첫 제기

    윤 외교, 유엔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 첫 제기

    윤병세 외교장관은 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25차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연설을 통해 보편적 인권 문제이며 여전히 살아있는 현재의 문제인 일본군 위안부(comfort women) 피해자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윤 장관은 위안부는 '일본 제국주의 군에 의해 징집된 전쟁 성노예 희생자(victims of wartime sexual slavery drafted by the Japanese imperial armed forces)'이며, 지난 20년간 유엔 인권 메커니즘의 지속적인 권고와 많은 국가들의 결의 채택에도 불구, 고노 담화 부인 시도 등 최근 일부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행태를 지적하며 일본이 과거의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고, 올바른 역사교육을 실시하도록 촉구했다.윤장관은 이날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 핵심목표인 ;지구촌 행복; 실현을 위해 지구촌 구성원 모두의 존엄성과 인권이 존중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세계를 만드는데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윤병세 외교장관이 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25차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연설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제공)▲ 윤병세 외교장관이 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25차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연설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제공)윤 장관은 인권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반영하고자 하는 유엔의 ;인권주류화(mainstreaming); 추진을 평가하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천명한 "인권우선(Rights Up Front); 이니셔티브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국제사회의 주요 인권 문제와 관련, 윤 장관은 시리아 등 세계 인권 상황을 평가하고,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Commission of Inquiry) 보고서 발표를 계기로 북한인권 상황 개선의 필요성과 함께, 무력분쟁하 성폭력 문제 대처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으며,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였다.특히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역사적 이정표가 될 북한인권 조사위원회보고서(COI) 제출을 평가하고 북한의 인권개선을 위한 실질적 조치 이행 기대, 국제사회의 후속조치 논의 조속 개시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COI 후속조치로서 유엔 메커니즘 강화 지지 및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의 중심적 역할을 기대했다. 이를 위해 강제송환금지 원칙을 준수하고 탈북민 보호의 중요성 강조했다. 아울러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납치피해자, 국군포로 등 인도주의적 사안에 대한 조속한 해결책 마련을 북한에 촉구했다.윤 장관은 한국이 지난 세기 식민침탈과 전쟁, 빈곤과 억압, 그리고 지금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나라로, 국제사회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위치에서 인권보호와 신장을 위한 인권이사회의 노력에 중요한 동반자가 될 것임을 약속하였다.위택환;윤소정 코리아넷 기자whan23@korea.kr 201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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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구석구석, “여행을 떠나요”

    대한민국 구석구석, “여행을 떠나요”

    추운 겨울이 지나고 한국에는 완연한 봄기운이 감돌고 있다. 날이 풀리면서 가족, 친구, 연인 단위로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국내의 가볼 만한 여행지를 한눈에 파악하고,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풍부한 지역들을 미리 체험해본다면 만족도 높은 여행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2월 27일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4 내 나라 여행박람회;에서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대사와 함께 정동진레일바이크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 전한 기자)대한민국 구석구석 숨어있는 여행지 축소판으로 꾸며진 특별한 박람회가 지난달 27일부터 3월 2일까지 나흘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다.;대한민국 구석구석, 내 나라 한바퀴;라는 주제 아래 열린 ;2014 내 나라 여행박람회;는 경상북도 영양군, 영주시, 안동, 충청남도 홍성군, 충청북도 충주시, 전라북도 고창군, 강원도 정동진, 제주도 등 국내 여러 지역의 생태관광, 관광열차, 축제, 특산물 등 다양한 여행정보를 제공하고 매력적인 여행지들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장이 됐다.▲ ;2014 내 나라 여행박람회; 개막식이 열린 지난 2월 27일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에서 다섯 번째)과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대사(오른쪽에서 다섯 번째)를 포함한 참석자들이 박람회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사진: 전한 기자)이번 박람회에선 5월에 가볼 만한 다양한 지역축제들이 소개됐다. 오는 5월 16일부터 3일간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열리는 ;제10회 영양산나물 축제;에서는 영양군의 청정 산나물이, 오는 5월 2일부터 11일까지 열리는 ;제6회 함평나비대축제;에서는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사육된 다양한 종의 나비들이 봄소식을 전한다.이와 함께 한국의 전통문화 예술과 옛 ;선비정신;을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소개하는 ;2014 영주선비문화축제;가 경상북도 영주에서 5월 2일부터 6일까지 열린다는 소식과, 이 지역의 대표 문화유산인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경유하고 소백산자락의 자연 풍광을 즐기며 달리는 코스로 구성된 ;제12회 영주 소백산 마라톤대회;에 대한 정보가 제공됐다.또한 전라북도 장수군의 특산품인 한우, 사과 등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제8회 장수 한우랑사과랑 축제;부터 경상북도 상주시의 대표 축제인 ;감고을상주이야기축제;, 오는 30일까지 포항 구룡포에서 한창 진행 중인 과메기, 문어 등 동해안의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구룡포 수산물한마당잔치;까지 다양한 축제들도 함께 소개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자연환경해설사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액세서리 만들기 체험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전한 기자)볼거리가 가득한 지역 관광명소들도 소개됐다. 방문객들은 홍성군에는 그 지역의 역사가 8km의 길에 펼쳐져 있는 ;홍주성 천년 여행길;이 있고, 상주시에는 카누, 요트, 카약 등 다양한 해양 레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계류장이, 그리고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전라북도 고창군에는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유적지와 조선시대 세워진 성곽인 고창읍성 등 명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이 있듯,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는 맛있는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박람회에서도 각 지역의 특산품을 직접 시음, 시식해보는 자리도 마련됐다.영양군의 대표 특산품인 영양 고추, 신선한 산나물을 비롯해, 상주시가 자랑하는 곶감, 한우, 강원도 홍성군의 새조개, 한우, 친환경 우유로 만든 요구르트, 구운 계란, 경상북도 영주시의 홍삼, 사과, 도너츠, 안동의 특색 있는 음식인 간고등어, 헛제사밥, 찜닭, 그리고 장수군의 한우, 사과, 오미자, 토마토, 충청북도 충주시의 사과, 쌀, 사과국수 등 다양한 특산품들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시식회도 있었다.▲ 경상북도 영덕군 부스 관계자들이 영덕군 마스코트 ;키니토리;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제17회 영덕대게축제;가 4월 3일부터 6일 영덕군 강구항 일원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사진: 전한 기자)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관광객들이 보다 편안하고 저렴하게 여행을 갈 수 있는 휴가문화를 제공하고자 한다;며 ;이번 박람회를 통해 매력적인 한국의 여행지 정보를 한번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됐기를 바란다;고 밝혔다.손지애 코리아넷 기자jiae5853@korea.kr 201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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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일랜드 청년, 제주도민과 고락을 60년 나누다

    아일랜드 청년, 제주도민과 고락을 60년 나누다

    전쟁의 포탄이 나라 전체를 뒤흔들던 1950년대부터 국민소득이 2만 5천 달러를 넘어선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화무쌍한 한국 사회를 직접 체험해 온 파란 눈의 외국인이 있다. 가톨릭 사제의 신분으로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이래, 한국인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품어 온 아일랜드 출신 맥그린치 신부가 바로 그 주인공. 그는 1954년 제주에 부임한 이후 60여 년을 이곳에서 살아왔다. 성 맥그린치와 이름 패트릭 제임스의 머리글자를 따 ;임피제;란 한글 이름을 사용하면서 이 땅의 사람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성이시돌 목장. 160만여 평방미터의 초원에 낙농우 약 900두 비육우 약 350두, 경주마 약 100두가 사육되고 있다. 제주 낙농업을 대표하는 원조로 불리는 곳이다.25세의 아일랜드 청년이 제주 땅을 밟았을 때 그곳은 척박한 황무지였고 주민들은 극도의 빈곤에 시달렸다. 그는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첫 사업으로 한림읍 금악리의 황량한 황무지를 개간하기 시작했다. 성이시돌 목장의 출발이었다. 그는 농민들에게 목초지 개량법, 가축 기르는 법을 가르치는 등 농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중산간 황무지를 개간해 초원을 만들고 축산업과 낙농업 등을 도입해 농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4H클럽 조직도 꾸렸으며, 제주 최초의 신용협동조합인 한림신협도 설립했다.▲ 임피제 신부는 1954년 제주에 부임한 이후 60여 년 동안 이 땅의 사람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이제 고국 아일랜드보다 현재 살고 있는 제주도를 더 고향처럼 느낀다는 임 신부. 한국에 도착한 첫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가 어떤 여정을 걸어왔는지, 제주생활 60년을 들어보았다.- 혼란한 나라의 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제주도에 오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습니까?;1951년 12월, 사제 서품을 받고 한국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당시 한국은 전쟁 중 이었어요. 아일랜드에서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 들은 한국 소식엔 매일 몇 사람이 죽었다는 내용뿐이었죠. 겁이 났어요. 한 달 안에 죽겠구나 싶었어요; ▲ 25세의 아일랜드 청년 맥그린치가 처음 한국 땅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한국으로 오는 여정은 길었다. 아일랜드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또 다시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1953년 4월 11일 부산에 도착했다. 전쟁을 막 겪은 한국의 모습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한다.전국에서 피난 온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죠. 외국인이 나타내면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이 손을 벌리고 따라다녔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가마니나 판자로 엉성하게 지은 집들이 빽빽했죠.;이듬해, 1954년 4월 임 신부는 제주도로 발령이 났다. 제주도는 그야말로 텅 빈 마을이었다. 성당도 없고 사제관도 없었다. 신자도 25명이 전부였다.제주도에 처음 도착한 임 신부는 고향과 유사한 점이 많은 작은 마을에 편안함을 느꼈다. 바람도 잦고 돌담도 많고 초가집의 형성도 비슷했다. 결혼식과 장례식 풍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제주도는 아일랜드와 달리 가축 산업에 매우 취약했다. 변소에서 길러내는 제주도의 상징 ;똥돼지;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려서부터 농촌에 살며 소, 돼지 등 가축을 기르는 것에 익숙했던 임 신부는 가축 산업을 통해 지역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찬 꿈을 꾸기 시작했다.낯선 땅에서의 도전, 그리고 이어지는 실패의 연속도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무리 말해도 할아버지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그 때 한 5년 여 동안 ;안 됩니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것 같아요. 그들은 일본 사람들이 이미 모두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했다는 말을 반복하며 안 된다고 못 박았어요.;임 신부는 눈을 돌려 16세~20세의 젊은이들과 함께 4H 클럽 활동을 시작했다. 4H는 머리(Head), 마음(Heart), 건강(Health)과 손(Hands)의 앞 글자를 딴 세계적 청소년 계몽 운동이다. 이를 통해 신부는 젊은이들에게 경제적 자립의 방법을 교육하기로 결심했다. 가축은행을 통해 새끼 돼지와 병아리를 무상으로 분양했지만 사업의 규모가 워낙 작고 어른들의 이해도가 낮아 한계에 부딪혔다.- 4H 운동은 어떻게 전개되었습니까?;실패와 궁리 끝에 산에서 돼지를 키워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금악리로 이동해 왔어요. 한라산 중산간 지대를 개간할 수만 있다면 훌륭한 목초지를 만들어 수많은 가축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일본 군인들이 주둔하던 막사가 있어 그 위에 판자와 가마니로 지붕을 얹고 돼지를 들여놓기 시작했습니다.;1961년 11월, 그렇게 ;성이시돌 중앙 실습 목장; 간판이 들어섰다. 이름은 12세기 스페인에 살았던 농부 출신의 가톨릭 성인 이시도르(Isidore)에서 따온 것이었다.▲ 맥그린치 신부(가운데)가 모금 운동을 벌이기 위해 미국 휴스턴 텍사스를 방문했다.▲ 70년대 이시돌 목장에서 양을 기르는 모습.그렇게 시작한 4H 운동이 현재 금악리에 세워진 이시돌 목장 설립의 시초가 됐다. 이후 이시돌 목장은 제주도의 축산업과 낙농업 발전의 씨앗이 되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선교와 함께 이시돌목장을 운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말이 아닌 실천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주변의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실천이라고 믿었습니다. 당시 선교보다 이들에게 시급한 것은 빵이었고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이시돌목장 내부에는 목장뿐만 아니라 양로원, 성당, 어린이집, 수녀원, 호스피스 병원이 있습니다. 이를 운영하는 데는 엄청난 열정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토록 매달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까?;모든 일은 이미 계획되어 있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4H 회원들과 중산간에 올라 목장 실습소를 준비하면서 조그만 사무실 건물을 지었는데 마침 홀로 사시던 할머니가 기아상태에 있어 사무실 한 켠에 모시고 살았던 것이 양로원의 시작이 됐습니다.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기에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초기에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자립을 돕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업을 운영한 만큼 실패를 거듭 경험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습니까?"물론 어려운 순간은 많았습니다. 잘못된 판단, 한국 문화에 대한 얕은 지식과 이해, 믿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 등 사건이 많았죠. 그러나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우선적으로는 제가 행하는 모든 것이 저의 개인적 계획이 아닌 하느님의 계획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더불어, 생사고락을 함께 한 4H 회원들의 희생에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해 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들은 늘 희망에 차 있었습니다. 어디서 저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아침부터 밤늦도록 일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다독였죠. 함께 일하고 함께 생활했으며 협동을 즐기는 듯하게 보였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이시돌의 발전에 인생을 던졌습니다. 너무도 고마울 따름이었죠.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는데 어떻게 포기 할 수 있었겠습니까?"그러나 도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그의 노력은 복지시설의 설립으로 끝나지 않았다. 제대로 된 금융기관이 없어 사채를 얻어 쓰는 것을 당연시 하는 도민을 위해 제주도 1호 신용협동조합 (신협)을 설립했다. 또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섬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여인들을 위해 양털을 이용한 수직물 사업도 진행했다. 아일랜드에서 직조 전문가 수녀를 초대해 제주 여성에게 기술을 가르쳐 품질 좋은 모직 제품을 생산했다. 한 때는 1,300여 명의 일자리를 제공했던 ;한림 수직;의 얘기다.▲ 한림수직 직원들이 양털로 옷을 짜고 있다.- 혜택을 받고 감동한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역시 초창기 4H 회원들입니다. 특히, 현재 제주에서 가장 큰 양돈 농장 2곳을 운영하는 신부삼 (73) 삼축산업 대표 생각이 납니다. 신 대표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탓에 학업을 중단하고 중학생 나이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죠. 4H 클럽 활동의 초기 모델이었던 가축은행으로부터 개량종 수퇘지 한 마리를 분양 받아갔습니다.1960~70년대 양돈사업은 반짝 호황을 누렸지만 1980년대 돼지파동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시돌 목장에서 사업을 접고 돼지를 나누어 주면서, 신 대표를 포함한 10여 명의 직원들이 본격적으로 축산업을 뛰어 들었습니다."당시 ;돼지를 잘 키우면 10년 후에 외국처럼 자가용을 끌고 다닐 수 있다;는 임 신부의 말에 신 대표는 ;신부님이 거짓말을 한다;라며 몰래 웃었다고 한다. 현재 그는 쏘렌토를 몰고 다닌다. 임 신부는 ;돼지 4500두를 길러내는 기업의 사장;이라고 덧붙였다.제주도에서 보낸 시간이 자그마치 60년이다. 그 동안 그는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수많은 도전과 실패에 맛보았을 것이었다.- 향수병에 빠지거나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까?그러한 생각을 품어본 적은 없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런 생각을 할 겨를 이 없었던 것 같고 지금은 평생을 함께 한 이 곳이 더욱 익숙해졌어요. 제주도가 저의 고향이죠.- 호스피스 시설 운영에 마지막 목표를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이제는 이사장 자리에서도 물러나 여유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그러나 꼭 정착시키고 싶은 게 호스피스 사업입니다. 외국의 경우 호스피스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한국은 아직 이런 개념이 뚜렷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거든요.2007년 성이시돌목장 안에 설립된 호스피스 전문 시설 ;이시돌복지의원;은 더이상 치료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자가 세상을 뜰 때까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공간이죠. 사료공장의 수익금과 10년 전 시작한 종마사업의 이익금을 이 곳에 투입합니다. 환자들에겐 돈을 받지 않고요. 모든 사람은 존엄하게 삶을 마감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모두 알았으면 좋겠어요.- 60년 동안 지켜본 한국의 인심과 한국문화는 어땠나요?제주 사람들은 아주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배가 고프면서도 달걀을 함께 나누어 먹자고 할 만큼 정이 많아요. 뿐만이 아닙니다. 성당을 지을 때를 잊을 수 없어요. 목재가 없어 성당을 건립하지 못 하고 있을 때, 한림 앞바다에 큰 배가 암초에 걸려 좌초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같은 아일랜드인이었던 선장은 ;진상조사단이 3일 후에 올 예정이니 그전에 얼른 부서진 배에서 목재를 가져다 쓰라;고 했습니다. 목재는 성당을 짓기에 충분했지만 운반할 사람이 턱없이 모자랐죠. 신자들은 기껏해야 아이들까지 25명이 전부였습니다. 다음 날 새벽, 고심하던 끝에 ;일단 가보자;는 마음으로 바닷가에 나갔습니다. 순간 저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바다 앞에는 400명 가량의 사람이 나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분들은 ;(신부님이) 제주에 와서 고생하는데 구경만 할 수 있겠습니까. 멋진 건물이 생기면 마을에도 좋은 일이고요;라며 웃어 보였습니다. 가톨릭 신자도 아닌 사람들이 그날 새벽에 나선 이유에 대해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남을 도우려는 그 마음에 깊은 감동을 느꼈고 제가 추후 지역민들을 돕고자 시작한 사업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마지막으로, 코리아넷 독자들을 위한 한 마디를 부탁했다. 임피제 신부는 짧고 강렬하게 대답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십시오;이승아 코리아넷 기자slee27@korea.kr 201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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