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문화유산 중요성을 재인식 하는 상징
▲5년여에 걸친 숭례문 복원공사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14일 현장에서는 여전히 철저한 고증에 따른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전한 기자)숭례문(崇禮門)이 아픔을 딛고 돌아온다.지난 2008년 방화로 인해 전소된 숭례문이 5년간의 복원공사를 거친 끝에 한층 더 원형에 가까운 위용을 자랑하며 공개를 앞두고 있다.대한민국의 국보 1호인 숭례문은 각계 전문가의 철저한 고증을 거쳐 조선시대(1392~1910) 말 모습에 가깝게 복원을 해왔다. 현재 90% 이상 진척이 된 상황이다.숭례문은 복원과 함께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남기는 작업이 병행됐다. 새로운 석재와 기존 석축 사이에 명암차가 크지만 쓸 수 있는 석재는 그대로 사용했다. 석재 가운데는 6.25 전쟁 당시 생긴 탄환 자국이 선명한 것도 있지만 역사의 기록으로 남겼다.2층 누각도 화재로 피해를 입은 목재 가운데 안전에 문제가 없는 목재 90%를 그대로 사용했다. 불에 타 그슬린 흔적으로 단청의 아름다운 빛깔은 잊어 버렸지만 문화재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강조함과 동시에 후손들이 문화재 관리에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심어주는 상징으로 남았다.▲지난 13일 숭례문 복원현장을 찾은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화마로 상처를 입었지만 복원공사에 사용된 2층 누각의 그슬린 목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 : 문화체육관광부)숭례문복구단은 새롭게 성곽 동편 53m, 서편 16m 가량을 이번에 추가로 복원했다. 이는 숭례문의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다. 지난 1960년대 복원공사에서는 간과됐던 숭례문 본연의 웅장함이 되살아 났다. 아직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현판 또한 *양녕대군이 쓴 원형을 되살리기 위해 그의 사당인 서울 사당동 지덕사에 소장된 탁본자료를 바탕으로 제작했다.▲숭례문 복원공사는 철저한 고증을 거쳤으며 전통기법에 따라 복원됐다. 사진 시계방향으로 현판,단청, 잡상의 모습. (사진: 전한 기자)지난 13일 숭례문 복원 현장을 찾은 문화체육관광부 유진룡 장관은 문화재청 숭례문복구단 최종덕 단장에게 공사 진척상황을 설명 듣고 문화재 보전과 안전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 장관은 숭례문 화재와 같은 국민적 아픔을 겪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대책을 주문했다. 실제로 숭례문은 원형에 가까운 복원 노력과 함께 철저한 방재시설 설치가 병행됐다. 복원된 숭례문에는 스프링쿨러, 폐쇄회로(CC) TV, 화재감지기를 설치함과 동시에 이를 조정하는 관리동의 건설과 운영에도 심혈을 기울였다.현재 서울시가 공사 중인 관리동 건립이 4월말 마무리 되면 준공식을 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은 유 장관은 무리하게 일정에 맞추지 말 것을 당부하며 ;각계 전문가 등과 충분히 협의해 모두가 합의하는 시점에 준공식을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최 단장은 ;준공식을 언제 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준공식은) 5월 중순 무렵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한편 복원공사를 진행 중인 명헌건설의 김의중 소장이 지난 1960년대 숭례문 해체;복원공사에도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유 장관은 ;이런 분이야말로 진정한 문화재 아니겠냐;라며 ;주변 경관을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복구공사에 참여한 모든 분의 이름을 새긴 조형물을 세우는 법을 강구하라;고 말했다.*양녕대군(讓寧大君, 1394 ~ 1462) ; 조선시대 태종의 장남이자 세종대왕의 형이다.** 숭례문(崇禮門) ; 서울에 남쪽에 위치해 남대문이라고도 불리는 숭례문은 조선시대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해 태조 7년(1398)에 완성됐다.손지애, 전한 기자jiae5853@korea.kr 2013.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