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된장을 살린다, 이생재 샘표 상무
한국음식에서 빠뜨릴 수 없는 양념이 있다.바로 된장이다. 콩과 소금, 물로 만드는 식품이다. 콩을 삶아 으깨어 사각의 덩어리를 만들어 건조한 후 발효시킨 것을 메주라고 한다. 메주에 소금물을 넣어 숙성시킨 후 액체만 거른 게 간장이다. 된장은 남은 건더기를 숙성시키거나 소금물을 떠내지 않고 그대로 배어들게 하여 만든다. 입맛이 없거나, 속이 거북할 때 된장찌개를 곁들인 식사는 기운을 내게 해준다.샘표식품은 70년간 간장과 된장을 만들어온 식품기업이다. 이 회사의 된장 공장 장인 이생재 상무는 전통방식이 빚어내는 된장의 맛을 되살리기 위해 10여년간 전국을 돌아다녔다. 유서깊은 집안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차곡차곡 방법들을 쌓아왔다.그는 전북 익산고를 마친후 간장공장 미생물 연구실의 직원으로 출발했다. 미생물들을 배양하면서 급속도로 불어나며 맛을 이뤄내는 신비함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발효전문가로 인정을 받았다. 2000년대 초 일본 도쿄 농업대학에서 연수를 받은 이후 전통된장을 재현하라는 상사의 지시를 받았다. 가내 또는 소규모 생산위주의 전통방식은 맛은 뛰어나나 균일한 품질의 유지와 대량생산엔 한계가 있었다.보다 많은 이들이 전통의 된장을 맛볼 수 있도록 메주와 일상을 함께하는 생활이 10여년간 계속됐다. 결실은 최근 2월 출시된 ;백일된장;과 ;시골집토장;으로 맺어졌다. 그럼에도 이 상무는 최종 목표한 바는 아니라고 손사레를 친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맛을 재현하기 위한 의지를 단단히 내비쳤다.30여년간 발효식품에 매달려온 이 상무를 만나 전통식품 된장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았다.▲ 30여년간 한국의 전통 발효식품인 간장과 된장에 천착해온 이생재 샘표식품 상무.- 원래 간장, 된장이랑 친숙했나요?전문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닙니다. 미생물을 처음 다뤘을 때 발효되면서 처음엔 백 마리였던 것이 한 시간 후에 천 마리가 되는 것을 보고 신기하고 흥미로웠습니다. 메주를 만드는 과정은 새로운 것을 공부하듯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즐겁게 일한 것이 결국 지금 전문가 소리를 듣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몰입하고, 즐기다 보면 누구나 전문가가 될 거라 믿습니다. 본인이 최고라고 생각하면 이미 최고가 아닙니다. 여전히 부족 하다고 생각하면서 꾸준히 일해야 합니다. 자만하는 것을 경계하며 항상 겸손하게, 내가 부족하다는 마음으로 일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효식품 역사는 어느 정도인가요? 장의 역사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BC1100년 장(醬) 기록-사슴이나 토끼, 새 등의 짐승이나 물고기의 고기를 원료로 한다고 기록이 있다고도 합니다. 고려시대의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문왕 3년(683년) ;폐백십오여 미주유밀장시포혜일백삼십오여(幣帛十五轝 米酒油蜜醬豉脯醯一百參十五轝);(폐백이 15수레, 쌀, 술, 기름, 꿀, 장, 시, 포, 혜 135수례) 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된 식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출시한 백일된장, 시골집토장은 전통 맛을 내기 위한 출발이라고 밝힌 이생재 샘표식품 상무.- 된장 연구 30여 년, 맛을 찾아 10년간의 전국순례였다고 들었습니다. 만드는 방법은 제각각이고 비밀주의 또한 만만찮았을텐데요.모든 발효 식품이 그렇듯이 어떤 원료를 가지고 유용한 미생물을 이용해서 우리가 목적하는 기능성 그리고 맛과 향을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미생물이 있었다고 알 수도 없었던 시기에 더구나 안정성도 확인할 수 없는 미생물을 활용해서 이렇게 좋은 발효 식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 참 불가사의 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말씀 하신 대로 만드는 방법도 제 각각이고 자신들이 만드는 비법이 아주 특별하고 최고라고들 생각하고 비밀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모든 것을 감추려고 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전통제조방식과 공장생산방식은 여러모로 차원이 다를텐데요. 어떻게 맛, 균질성 문제를 해결했나요? 적절한 맛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수공(手工)된장만을 3년간 먹었습니다. 저희 회사 제품보다 4배나 비싼 장인들의 제품이었습니다. 점심시간 때마다 된장만 먹다 보니 어느 순간 ;딱 이 맛과 향이야; 하는 느낌이 왔습니다. 맛과 향의 차이를 분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수공된장의 단점은 매년 동일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메주가 만들어져야 같은 맛과 향을 낼 수 있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해의 온도, 습도, 메주 뜰 때 환경은 매번 달라지기 때문에 그 맛 역시 달라집니다. 동일한 조건을 못 맞추는 것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였습니다.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200여 톤의 콩을 폐기했습니다.우리는 콩을 찌는데 가장 적당한 온도, 습도, 그리고 찐 콩을 눌렀을 때 찌부러짐의 경도를 맞추고 가장 알맞은 조건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조건을 항상 일정하게 관리하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런 노력 하에 탄생된 것이 ;백일된장; 입니다. 밀가루 등 전분을 섞어 만든 일반된장들과 달리, 백일된장은 100% 콩으로 만들었습니다. 현재 시중의 된장들과, 일본의 미소된장, 중국 된장 등 어디에서도 100% 콩을 가지고 만든 된장은 없습니다. 일본 미소된장도 쌀이나 밀가루로 메주를 만들고, 콩을 덧밥으로 써서 만든 것입니다. 전통된장은 미생물 번식시켜 만든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놓고, 거기서 나온 액은 간장으로 사용되고, 1~2년 숙성시켜서 만듭니다. 일반 된장들은 1개월 정도 숙성돼 제품화되는 반면, 백일된장은 100일간 숙성시킵니다. 영양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그 맛이 일품이고,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 가운데 맛을 아는 분들은 깊은 맛을 느낀다고 합니다.▲ 2014년 10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SQFI(Safe Quality Food Institute) 주최로 열린 '2014 SQF국제컨퍼런스'에서 아시아 최초로 '올해의 제조 업체상'을 수상한 샘표식품 충북 영동공장.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가운데)과 이생재 샘표 영동공장 상무(오른쪽)가 시상식 후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메주를 만드는데 필요한 균을 얻어내려고 남도에서 된장 맛있기로 소문난 종가를 찾았다가 문전박대 당한 일도 있었다던데. 메주를 만드는데 균이 가장 중요합니다. 집안마다 비밀주의가 강해서 서로 경계합니다. 맛있는 메주의 비밀은 균에 있고 그 균을 얻기 위해 종갓집 메주 만드는 방에서 몰래 옷으로 쓱 문질렀습니다. 옷에 묻은 수천 종의 균을 골라냈습니다. 그리고 각 균을 배양해서 메주를 만들고 맛을 봐야 했습니다. 지난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런 과정 끝에 22년 만에 지금의 백일된장과 ;시골집 토장;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전통의 향을 그대로 간직한 된장을 만들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더 나은 제품이 나올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지금은 소규모 생산에서 대량생산으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샘표의 된장 연구진은 총 17명입니다. 700명 직원 중에 총 연구인력은 100명입니다. 이 정도면 많은 편입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샘표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경영철칙으로 가능한 게 아닌가 합니다.- 백일된장과 시골집 토장의 차이점은?시골집 토장은 메주의 엑기스(간장)을 빼내지 않은 전통 그대로의 맛을 유지한 것이 특징입니다. 다른 조미료나 양념 없이 물에 끓여만 먹어도 그 자체로 맛이 납니다. 백일된장은 순수하게 전통방식으로 발효, 숙성해서 만들었습니다. 어떤 육수로, 어떤 재료로 맛을 내느냐에 따라 된장 맛이 달라집니다.- 젊은 세대와 서구인에게는 암만해도 된장특유의 냄새가 부담스러워 보이는데요. 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나요?네 맞습니다. 우리 전통 발효식품 간장, 된장은 서구인이나 젊은 세대 들에게는 특유의 향 때문에 부담스러워하고 피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메주를 만들 때 그 메주 속의 미생물 종류 각각의 미생물 분포에 의해서 맛과 향이 결정됩니다. 그런 특유의 맛과 향을 가진 균을 분리해 내기 위해서 수천 종의 균을 분리해 냈고 그 수천 종을 다시 각 균주에 따라 맛과 향이 어떤가를 분별하였고 그래서 언제든지 그들이 원하는 맛과 향을 재연할 수 있는 활용 가능한 균주를 확보해 놓았습니다. 지금은 메주 속에 그런 유용한 균이 어떤 분포로 있을 때 어떤 맛과 향이 나는지와 메주발효에서 우리가 원하는 균들의 분포를 가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가를 지금도 게을리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습니다, 제가 이야기한 이런 목표가 이루어질 때 질문하신 문제가 완벽히 해결 될 것이고 우리 전통 발효식품인 장류의 세계화도 성공적으로 이루어 질것이라 확신합니다.- 된장의 장점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간장, 된장의 장점은 참 많이 있지요. 일본에서는 장을 요리의 마술사 라고도 합니다. 맛의 절묘한 하모니라고도 하고요. 우선 관능적 특징으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유중림, 1766)에 ;장은 모든 음식 맛의 으뜸;이라 했습니다. 집안의 음식 맛은 그 집의 장맛이 좌우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관능적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영향적 특성이 있습니다. 콩 단백질에서 유래된 아미노산이 아주 풍부한 식품이 장입니다. 기능적 특성이 있습니다. 생선에 바르면 비린내가 사라지는 소취 효과가 있습니다. 간장과 된장은 주먹밥이나 닭 꼬치 같은 것이 발라서 구우면 노릇노릇 고소한 향기가 나는 가열효과가 있습니다. 된장이나 간장에 담가 두면 보존이 잘 되는 정균 효과도 있습니다. 간장을 아이스크림 같은 단것에 살짝만 뿌려주면 단맛이 상승하는 대비효과가 있습니다. 짠 매실 장아찌나 소금에 절인 연어에 간장이나 된장 국을 떨어뜨리면 순한 맛이 나는 억제 효과가 있습니다. 다시와 간장이 합쳐졌을 때에 맛이 강해지는 상승효과 등 다양한 효과가 있습니다.- 된장의 맛을 살릴 수 있는 요리를 꼽는다면요? 맛있게 된장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주세요.된장은 그야말로 고향의 맛이고 어머니의 맛이 아닌가 싶습니다. 좀 나이가 먹은 세대들이 어머니의 어렸을 때 고향의 맛, 어머니의 맛을 떠올릴 때 가장 많이 표현하는 것이 엄마가 뚝배기에 자글, 자글(지글,지글) 끓인 된장찌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표현하지 않나요?역시 된장은 뚝배기 된장찌개, 된장국이 으뜸이겠지요. 또한 강 된장을 끓여서 밥을 비벼먹는다면 그것이 바로 밥도둑이 아닌가 싶습니다. 강 된장을 끓여서 밥을 먹게 되면 질리는 것이 없이 한없이 들어가니까 다이어트는 되지 않겠지만 맛은 정말 일품이지요. 그리고 요즘은 생선회를 먹을 때도 간장, 초고추장 보다 된장에 청양고추와 마늘을 다져서 넣고 먹으면 그 또한 새롭게 회 맛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겠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우리가 먹고 있는 모든 나물에 된장이 들어가야 맛이 나는 것이지요.우리 한국의 모든 음식에는 된장과 간장이 가장 잘 어울리고, 맛을 살려주는 요리에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어주는 요리의 마술사이지요. 글 위택환 코리아넷 기자사진 위택환 코리아넷 기자, 샘표식품 201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