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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베트남 FTA타결

    한-베트남 FTA타결

    한국과 베트남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다.2012년 8월 협상을 시작한 지 2년4개월 만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응우옌떤중 베트남 총리는 10일 부산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이 상품 서비스 투자 지식재산권 경쟁 등 경제 전반을 포괄하는 총 17개 장으로 구성된 FTA를 체결하기로 했다고 공식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오른쪽 뒤)과 응웬 떤 중 베트남 총리(왼쪽 뒤)가 지켜보는 가운데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 앞)과 부휘황 베트남 산업무역부 장관이 10일 부산에서 양국 FTA 실질 타결 합의 의사록에 서명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오른쪽 뒤)과 응웬 떤 중 베트남 총리(왼쪽 뒤)가 지켜보는 가운데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과 부휘황 베트남 산업무역부 장관이 10일 부산에서 양국 FTA 실질 타결 합의 의사록에 서명한 후 악수하고 있다.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2014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의 첫 공식 일정으로 떤중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FTA를 비롯해 양국 협력 방안과 한반도 정세를 논의했다.박 대통령은 "1992년 양국 수교 이후 양국 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특히 경제 부문 발전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며 이번 FTA 타결을 계기로 양국 간 협력이 한층 더 심화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두 정상은 △한;베트남 FTA 협상 사실상 타결 △베트남 내 각종 대형 에너지 기반시설 사업 참여 등 경협 방안을 논의했다. 양국은 2012년 8월 FTA 협상 시작 이래 지난 8일까지 모두 9차례에 걸쳐 협상을 진행했다.베트남은 지난해 기준 한국의 9번째 교역 상대국으로 FTA가 발효되면 그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 양국 FTA 타결에 따라 베트남은 이미 한국이 아세안과 맺고 있는 FTA에서 추가로 교역액 기준 6%포인트(7억4천만달러)를, 품목 수로는 200개 상품을 추가 개방하기로 했다.이에 따라 기존 한;아세안 FTA 대비 한국은 개방률이 기존 91.7%에서 94.7%로, 베트남은 86.2%에서 92.2%로 각각 3%포인트와 6%포인트 높아졌다. 특히 베트남은 한;아세안 FTA에서 개방하지 않았던 5t과 20t 화물차에 대한 관세를 즉시 철폐하고 3천㏄ 이상 승용차, 자동차부품, 화장품, 생활가전 부문도 추가 개방하기로 했다. 또 처음으로 전자상거래를 독립 장으로 FTA에 포함시켰다.한국은 추가로 교역액 기준 3%포인트(1억7천만달러)와 새우 최대 1만5천t(1억4천만달러)까지 무관세 대우를 부여하기로 했고 품목 수 기준으로는 495개 상품을 추가 개방하기로 했다. 마늘 생강 등 농산품은 파쇄되거나 건조;냉장된 품목 위주로 개방했고 쌀은 협정에서 완전 제외했다. 또한 서비스 분야에서는 건설, 도시계획;조경, 기타기계;장비임대 분야를 추가 개방했다.위택환 코리아넷 기자whan23@korea.kr 201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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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베트남•말레이시아와 양자 정상회담

    한국, 베트남•말레이시아와 양자 정상회담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응웬 떤 중(Nguyen Tan Dung) 베트남 총리, 나집 라작 (Najib Razak) 말레이시아 총리와 잇따라 양자회담을 갖고 협력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아울러 한;ASEAN 특별정상회의, 지역 및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북핵문제 등 한반도 정세와 동북아평화협력구상 등 역내 문제에 대해 협의했다.박 대통령은 응웬 떤 중 베트남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FTA 타결을 선언했다. 한-베트남 FTA 협상은 개시 2년 4개월 만에 타결됐으며 베트남은 한국의 15번째 FTA타결국가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응웬 떤 중 베트남 총리와 한-베트남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한반도 문제와 관련 박 대통령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요구를 무시한 채 핵능력 고도화를 지속하고 있는데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베트남이 도이모이 정책(Doi Moi Policy)으로 개혁개방과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발전모델이 되고 있는 것처럼, 북한이 베트남과 같은 변화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한국과 지속 협력해 나가기를 기대했다.중 총리는 남북 대화와 협력 증진 등 평화적 방법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한국 정부의 노력에 대한 지원과 협력을 약속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나집 말레이시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이어 박 대통령은 나집 말레이시아 총리와 교역;투자, 건설;인프라;방산, 교육;문화, 보건․관광 등 제반 분야에서의 양국간 교류․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박 대통령은 나집 총리에게 "한국과 말레이시아 두 나라는 80년대 초 말레이시아의 동방정책으로 각별한 인연을 맺은 후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발전하고 성장해 왔다"며 "양국이 이번 회담을 통해 협력관계를 더욱 심화,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박 대통령은 또, 나집 총리가 추진중인 국가개조프로그램(National Transformation Programme) 정책과 말레이시아 장기 계획인 비전 2020(Vision 2020)을 언급하며 "말레이시아의 발전이 양국의 협력 증진에 더 큰 가능성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이에 나집 총리는 "한국과 말레이시아 양국 관계는 그 동안 아주 공고한 경제협력 관계에 기반해 왔다"며 "이런 협력관계를 앞으로 더욱 심화시킬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교역;투자와 관련, 나집 총리는 한국 기업들이 말레이시아에서 대규모 건설사업을 수주하여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으며, 첨단기술 분야에도 훌륭한 능력을 보여줬다며 말레이시아의 2대 투자국인 한국의 기업들이 더 많이 말레이시아에 진출하기를 희망했다. 나집 총리는 매년 4~5% 성장해 온 양국간 교역이 금년 10개월 동안 7.9% 증대했다며 한국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양국 정상은 향후 양국간 경제;교역;투자 협력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의 동방정책(Look East Policy) 관련, 협력 및 관광, 교육, 과학기술 등 새로운 분야의 협력 확대를 위해 "경제협력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박 대통령은 나집 총리에게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아세안 FTA 추가 자유화 논의가 원만하게 진행되어 내년까지 합의가 이뤄지길 희망했다. 나집 총리는 한국의 요청을 감안하여 한-ASEAN FTA 추가 자유화 논의를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윤소정 코리아넷 기자사진 청와대arete@korea.kr 201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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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대통령,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동아시아 공동평화의 중요한 발판”

    박 대통령,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동아시아 공동평화의 중요한 발판”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돼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데, 아세안 국가들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앞서 아세안 10개 회원국 언론에 보낸 기고문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동아시아 공동평화를 달성하는데 중요한 발판이자 요건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앞두고 아세안 10개국 언론에 보낸 기고문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아세안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사진은 지난 달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ASEAN+3 때의 모습. (사진: 청와대)아울러 아세안 각국은 한국과 북한 모두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한반도 평화와 통일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한;아세안 관계 증진을 위해 중소기업간 네트워킹을 목적으로 한-ASEAN 비즈니스 협의회(ASEAN-ROK Business Council)를 출범시키고 아세안의 문화를 한국민들에게 소개하는 ;ASEAN 문화원;(가칭 ASEAN Culture Plaza)을 부산에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함께 아세안 국민들이 한국을 손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비자 간소화 방안을 모색하고, 나아가 미래지향적 관계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차세대 유력인사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박대통령은 내년 출범하는 아세안 공동체와 관련해 아세안의 위대한 역사적 성취라며 한국은 아세안의 통합정신을 동북아에서도 구현해 나가고자 한다고 역설했다.위택환 코리아넷 기자whan23@korea.kr 201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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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브루나이 정상, "인프라건설, 농업 협력 확대"

    한국-브루나이 정상, "인프라건설, 농업 협력 확대"

    박근혜 대통령은 9일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과 정상회담을 갖고 인프라건설, 농업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박 대통령은 볼키아 국왕에게 "한-브루나이 수교 30주년 맞는 올해 한국을 국빈 방문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한국과 브루나이는 지난 30년간 여러 분야에서 견고한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왔고 최근에는 인프라 건설분야를 중심으로 활발한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박 대통령은 이어 "국왕님께서 추진하고 계시는 국가비전 2035 전략과 한국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서로 지향하는 목표가 유사하므로 이 회담을 통해 서로의 지혜와 경험을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볼키아 국왕은 "한국은 아주 역동적인 도시들을 많이 갖고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최첨단 기술들을 발전시켜 왔다"며 "브루나이는 한국과의 관계를 아주 중시 여긴다"고 화답했다. 이어 "이번 방문을 통해 양국 관계를 격상시키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기 전 악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국왕이 9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양국 정상은 정상회담에서 무아라-템부롱(Muara-Temburong) 교량 건설사업, PMB섬 가스터빈 발전소 건설사업, 브루나이 외교부 청사 신축공사 등 총 23억 달러 규모의 주요 인프라 건설 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추진하기로 했다.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과 브루나이는 양국간 투자;경제 교류를 확대해나가기로 합의하고 교육, 농업분야의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또한 브루나이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세부담을 줄이고 역외 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이중과세 방지협정을 체결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이 국군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하사날 볼키아 국왕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과 브루나이 양국 외교장관이 이중과세 방지협정에 서명하고 있다.윤소정 코리아넷 기자사진 청와대arete@korea.kr 201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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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 개막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 개막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내일 부산에서 개막된다.한국과 아세안의 대화관계 수립 25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회의는 지난 2009년에 이은 두 번째 특별정상회의이자 박근혜정부가 국내에서 처음 주최하는 다자 정상회의이다.▲ 아세안 10개국 정상이 11일과 12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위해 부산에 모여 박근혜 대통령과 한-아세안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한다. 사진은 지난달 13일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기념촬영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회원국 정상들.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ㆍ외교 분야에서도 중요성이 커지는 아세안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내실화하는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박 대통령은 첫날인 11일 대한상공회의소 주관으로 열리는 ;한ㆍ아세안 최고경영자(CEO) 서미트;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것으로 특별정상회의 일정을 시작한다. 이어 미얀마ㆍ인도네시아ㆍ라오스ㆍ태국ㆍ필리핀ㆍ싱가포르 정상과 잇따라 정상회담을 하고 경제ㆍ통상 협력 강화 방안과 양국관계 및 한반도 등 지역정세를 협의한다.둘째날인 12일에는 특별정상회의 1ㆍ2 세션을 진행한다. 특히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미얀마의 테인 세인 대통령과 함께 이번 특별정상회의의 공동의장인 박 대통령은 1세션을 직접 주재하면서 모두발언을 통해 ;한-아세안 협력관계 평가 및 미래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이어 테인 세인 대통령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한-아세안 간 채택할 공동성명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끝으로 특별정상회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이번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올해 박 대통령이 다자 정상외교를 완결하는 무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4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포스터위택환;윤소정 코리아넷 기자whan23@korea.kr 201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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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대통령, “한반도 통일 세계 평화, 안보에 기여”

    박 대통령, “한반도 통일 세계 평화, 안보에 기여”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통일이 세계 평화와 안보를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 강화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박 대통령은 8일 서울에서 열린 제 7차 세계정책회의에서 ;통일은 한국뿐만 아니라 동북아를 넘어 세계 인류에 '대박'이 될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당부했다. ▲ 8일 서울에서 열린 제 7차 세계정책회의에서 기조연설하는 박근혜 대통령 ▲ 8일 서울에서 열린 제 7차 세계정책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아울러 박 대통령은 한국정부의 신뢰외교(trustpolitik) 방향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한반도 신뢰와 평화의 통로가 열리고 국제사회의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이어 역사 영토 문제를 놓고 대립과 긴장이 계속되는 동북아 정세의 해결책으로 '국가간 신뢰'를 제시하며 "동북아 다자 협력을 위해서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한국 정부는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을 기초로 3국간 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박 대통령은 또 "세계 주요국들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경제가 흔들리면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믿음도 흔들릴 수 있다"며 "이럴 때 일수록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더욱 존중하고 국가를 비롯한 다양한 행위자 간 신뢰와 협력을 다져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를 위해 "한국은 지구촌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하고자 새천년개발목표 달성, 2015년 이후 개발목표 설정, 2020 신기후 체제 수립 등 국제이슈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며 "새마을운동 모델을 국제사회와 공유하여 빈곤퇴치와 지속 가능한 개발모델이 지구촌에 확산되도록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윤소정 코리아넷 기자사진 청와대arete@korea.kr 201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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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방가구의 명가 한샘

    주방가구의 명가 한샘

    ▲ 한국의 앉는 문화의 산물인 대청마루와 서구식 입식 주방을 접목시킨 한샘의 주방가구 모델.한국의 전통가옥 구조에서 부엌은 거실과 침실에서 분리된 별도의 공간이었다. 한 세대 전만해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재래식 부엌에서 생활을 했다. 불을 때는 아궁이는 워낙 낮게 만들어 주부들은 허리를 굽혀 일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음식물 폐기물 또한 부엌에서 처리할 수 없어 별도로 정리하여 외부에 버리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1970년 부엌가구 전문기업으로 출발한 한샘은 한국에 ;입식 주방;이라는 새로운 주방문화의 개념을 도입했다. 입식주방은 동선이 길고 일이 번거로웠던 과거 주방일의 불편함을 해결했다. 잘 정비된 개수대, 수납이 잘 되는 선반과 찬장, 조리대부터 가스레인지, 식탁까지 빈틈없는 구성으로 구성된 부엌가구 덕분이다. 소비자들은 재료 손질부터 요리, 식사와 마무리까지 모두 한 곳에서 마무리할 수 있는 입식 주방의 편리함에 크게 호응했다.한샘은 ;싱크대;로 통칭되던 부엌가구 시장의 한계를 넘기 위해 현대인의 집구조와 소비자의 취향, 생활방식과 음식문화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제품에 반영했다.▲ 바닥의 버튼을 누르면 전기 콘센트가 밑에서 솟아오르는 스마트 테이블. 주방에서 많은 일을 보는 현대인의 생활 방식을 잘 반영했다.▲ 리모컨으로 조정 가능한 선반과 주방 내 자투리 공간. 주방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한샘은 탕과 국을 즐기는 한국인들의 음식문화를 고려하여 솥, 냄비 등 부피가 큰 주방용품과 각종 식재료 보관을 위해 서랍과 찬장의 수납효과를 최대화시킨 주방가구를 디자인했다. 오븐과 식기세척기를 주로 사용하는 해외 고객의 식문화도 디자인에 반영됐다.한샘이 디자인한 주방은 음식과 식사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부엌일 뿐만 아니라 컴퓨터 등 다양한 작업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물기가 닿지 않고 안전하게 콘센트를 사용할 수 있게 식탁 표면에서 올라오는 전자식 콘센트 장치를 선보였다. 공간을 최대한 살리되 주방에서 가족과 소통하며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또, 간혹 방치될 수 있는 주방 한 켠 남는 공간을 리모콘으로 작동해서 가림막으로 가리거나 혹은 걷어서 상황과 용도에 맞게 사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 탕과 국을 즐기는 한국인의 음식문화를 반영해서 부피가 큰 주방용품 수납을 위해 큰 서랍을 여러 개 디자인한 한샘의 키친바흐 모델. 모든 서랍은 살짝 누르면 쉽게 열리도록 설계됐다.▲ 밝고 온화한 나무색과 샹들리에 등 서구식 취향을 선호하는 고객에게 인기 높은 주방가구 모델.▲ 수납을 가장 중요시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찬장.한샘의 주방가구는 해외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한샘은 1986년 미국 법인 설립을 시작으로 중국과 일본에 해외법인을 세웠다. 미국에서는 소비자가 한샘 딜러와의 일대일 상담으로 견적부터 가상디자인 이미지 시연 등을 보며 자신이 원하는 주방을 직접 선택, 설계할 수 있다. 사실 평택을 비롯한 한국에 거주하는 미군 전용아파트에서 한샘 주방가구를 접한 주부들의 입소문에서도 한샘의 인기는 잘 드러난다. 중국에서는 현지 건설사의 아파트 시공 과정에서 한샘의 주방가구가 도입되고 있다.한샘은 오늘날 주방가구는 물론 종합 가구, 인테리어 분야에서도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달성하며 주방가구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글 윤소정 코리아넷 기자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arete@korea.kr 201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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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0년 전 '사직대제' 되살아나다

    230년 전 '사직대제' 되살아나다

    조선의 태조는 나라를 세우면서 왕의 공식집무공간인 경복궁의 동쪽에 종묘를, 서쪽에 사직단을 지었다. 종묘에서는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시는 제사 ;종묘제례(宗廟祭禮);를, 사직단에서는 땅과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직대제(社稷大祭)'를 지냈다. ;사;는 땅의 신을, ;직;은 곡식의 신을 의미한다. 예를 갖추어 지내는 제사 의식이 백성에게 편안함과 풍년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이후, 1988년 전주이씨대동종약원(현 사직대제보존회)에 의해 복원되어 현재는 매년 9월 첫째 주 일요일에 사직단에서 거행되고 있다.▲ 국립국악원은 12일 조선 전통제사의식인 '사직대제'를 복원해 무대에 올린다.국립국악원은 정조대의 문헌인 사직서의궤(1783)를 바탕으로 음악, 악기편성, 복식, 의물 등을 체계적으로 고증해, 이를 무대에서 재현한다. 신을 맞이하는 '영신례'부터 신을 보내는 '송신례', 제사에 쓰인 축문과 폐백을 태우는 '망료'의식 등 10개의 절차가 약 90분 동안 이어진다. ▲ 매년 9월 사직단에서 펼쳐지는 조선의 사직대제 재현 공연. 땅과 곡식의 신에게 풍년을 기원했던 의식이다.특히, 국악연구실은 1928년 녹음된 축음기(SP)음반 「Victor49802」에 수록된 아악(雅樂, 궁중의식에서 연주된 전통음악)을 분석해 이를 이번 공연에 반영했다. 이전보다 훨씬 빠른 당시의 음악을 생생히 느껴볼 수 있다.의물과 복식, 제례 절차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참여로 이뤄졌다. 특히 안동대학교 이은주 교수의 도움을 받아 사직대제에 사용되는 의물 ;조촉;을 선보인다.;조촉(照燭);은 밤에 제사를 지낼 때 신호를 담당했던 큰 등롱(燈籠)을 가리킨다. 1m 가량의 큰 등에 불을 밝히고, 신호에 따라 세우고 눕혀서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조촉 제작에는 여러 명장이 참여했다.이번 공연을 기획한 국립국악원 송지원 국악연구실장은 ;조선 문화의 전성기를 이끈 정조(正祖)대에 거행된 사직대제의 음악과 춤을 재현함으로써 우리 음악문화의 정제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공연 관람은 무료이며, 관람권은 당일 예악당 로비에서 선착순으로 배포된다. (문의 02-580-3358)이승아 코리아넷 기자사진 국립국악원slee27@korea.kr▲ 국립국악원에서 선보이는 '사직대제' 공연 포스터 201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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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도가 올바른 명칭”

    “독도가 올바른 명칭”

    에드 로이스(공화;캘리포니아)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은 6일(현지시간) 한국 동해의 끝에 있는 섬, 독도의 표기와 관련, "올바른 명칭은 독도"(The proper name is Dokdo island.)라고 밝혔다.로이스 위원장은 이날 워싱턴DC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장에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독도 문제는 역사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밝혔다. ▲ 에드 로이스(공화;캘리포니아)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은 6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장에서 "독도 문제는 역사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공식 표명했다. 사진 위는 독도의 동도. 아래는 독도의 서도.연합뉴스에 따르면 로이스 위원장은 "미국 지명위원회가 일본 측의 로비에 따라 미국 지도 상의 독도 명칭을 바꾸는 결정을 내린 사실이 2008년 드러났을 때 나는 한;일 강제병합과 독도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됐다"며 "우리는 역사를 이해해야 하고 과거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이어 그는 최근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군대 위안부 동원에 강압성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위안부 동원이 강압에 의해 이뤄졌으며 위안부들이 '성노예'(sex slaves)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역사적 기록은 매우 분명하다"며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성노예로 죽어간 위안부 여성들이 많이 실존했음에도, 이를 부정하는 것은 2차 세계대전 때 홀로코스트도 유대인 학살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공포스럽다"고 지적했다.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올해 초 발표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가 북한인권 관련 입법활동에 많은 지렛대를 주고 있다"며 "인권을 유린한 북한 관리들을 제재대상에 포함하는 대북 금융제재 강화법안(H.R 1771)이 올해 말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도 통과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로이스 위원장은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20년간 노력해왔으나 결론을 찾지 못했다"며 "북한 사회에 정보를 유입시켜 북한 주민들과 당국자들의 생각을 바꾸도록 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글 사진 위택환 코리아넷 기자whan23@korea.kr 201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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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도 전설은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전설은 계속되고 있다

    1996년 독일 중부의 소도시 굼머스바흐(Gummersbach). 20대 한국청년이 나타났다. 평범한 동양인의 체형과는 달리 그는 2m3cm의 거대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큰 키에 민첩함과 파워까지 갖춘 그는 독일 핸드볼 분데스리가를 휘저었다. 전무후무한 분데스리가의 전설 윤경신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됐다.1996년 독일무대에 데뷔한 이래 굼머스바흐에서 10시즌, 함부르크에서 2시즌 등 총 12시즌을 뛰며 8차례나 득점왕에 올랐다. 2000-2001시즌에는 324점을 기록, 분데스리가 한 시즌 유일하게 300득점 이상을 달성했다. 지난 2001년에는 국제 핸드볼 연맹으로부터 올해의 핸드볼 선수(IHF Welthandballer)로 선정되었다. 그가 거둔 2,908골은 42년 역사의 분데스리가 통산 최다득점으로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 윤경신 현 두산 남자핸드볼팀 감독이 경기도 의정부실내체육관에서 선수들의 연습을 지켜보고 이다.그의 앞을 가로막을 상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국제무대에서도 1995년과 1997년 세계선수권대회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득점왕에 오르는 등 명실상부 최고의 핸드볼 스타로 코트를 누볐다. 핸드볼 국가대표로 250회 이상 출전하였다. 1990년 베이징부터 2010년 광저우 대회까지 아시안게임 6번, 올림픽은 1996년 애틀랜타 대회를 제외하고 1992년 바르셀로나때부터 지난 2012런던올림까지 5차례나 출전했다.2008년 그는 독일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30대 후반임에도 그는 타고난 체력으로 2013년 6월까지 자신이 뛴 모든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2013년 9월 코리아리그에서 감독으로서 첫우승을 따냈으며 팀의 5년 연속 우승을 지켜냈다. 어느새 40대 초반에 접어든 그를 만나 핸드볼 인생을 들어봤다.* 윤경신 감독과의 인터뷰▲ 윤경신 감독(왼쪽)이 자신의 핸드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독일생활을 성공리에 마치고 귀국했다. 그곳에서 계속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있고 다른 나라에서도 좋은 조건으로 영입하려 했을 텐데, 그걸 마다하고 귀국한 이유는?제의가 있었다. 당시 네 살 난 아들이 있었고 아내도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해서 여기서 계속 남느냐 한국에 들어가느냐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결국에는 가족들 때문에,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오랜 외국생활로 힘든 점도 느꼈기 때문에 귀국하게 됐다.- 농구, 배구를 하지 않고 핸드볼을 선택한 이유는?서울 숭인초등학교 4년 시절 특별활동시간에 핸드볼을 선택하게 됐다. 공을 잡아 보니 희한했다. 농구나 축구공처럼 크지도 않고, 야구나 탁구공처럼 작지도 않은 게 참 어중간했다. 한데 그게 맘에 쏙 들었다. 그 생소하고 특이한 사이즈에 묘한 호기심이 일었고, 손으로 하는 운동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숭덕 초등학교에 핸드볼팀이 창단돼 전학하게 됐다. 그 당시에도 농구, 배구는 굉장히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던 스포츠였고, 핸드볼은 좀 생소했던 종목이라 궁금했다. 핸드볼을 한다고 했을 때 처음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도 핸드볼 골키퍼 출신이었더라. 어머니는 힘든 핸드볼을 왜 하려고 하느냐며 처음엔 말리셨다.- 최고 득점왕 기록은 아직도 여전한가?2,908골 득점하며 최고 득점왕에 올랐다. 3천 골을 못 넣은 게 조금 아쉽기는 하다. 이 기록이 깨지긴 쉽진 않을 것 같다.- 우월한 신체적 조건이 궁금하다. 집안 내력인가?그렇다. 부모님 모두 키가 크다. 아버지는 181cm, 어머니는 170cm정도 된다. 누나도 175cm다. 동생(윤경민)도 지금은 부상 때문에 은퇴했지만 두산 핸드볼팀에서 활약했다. 집안 자체가 골격과 키가 크다. 선천적으로 몸이 건강하고 골격이 좋다 보니깐 외국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부상도 적었고 이런 우월한 신체적 조건 덕분에 해외에서도 오래 활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굼머스바흐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팀과 지역 주민들은 어떻게 일체감을 갖고 있나?대학교 3학년이었던 1995년 아이슬란드 세계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그때 굼머스바흐 팀도 출전했고 관계자들도 있어서 나를 눈여겨 본 것이다. 그 당시에 그들에게도 동양인, 그것도 한국인을 영입하는 건 하나의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당시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영입이 가능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인연이 돼서 굼머스바흐에 들어가게 됐다. 사실 중, 고등학교 때부터 유럽, 특히 독일무대에서 뛰어보는 것이 내 꿈이었다. 막연한 꿈만 가지고 있었는데, 운 좋게도 기회가 왔다. 그때는 돈이고 조건이고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사인했다. 그냥 나는 무조건 간다;고 했다.굼머스바흐는 매우 조그만 도시다. 인구가 적어 핸드볼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핸드볼만 봐도 유럽이 핸드볼 시스템이 활성화 돼있고, 리그도 체계적으로 구성돼 있다.처음에 그곳에서 적응할 때는 많이 힘들었다. 언어소통이 가장 어려웠다. 독일팬들의 지지와 사랑은 엄청난 힘이 됐다. 한국인이라고 직접 담근 김치도 가져다 주기도 했다. 독일인들이 만든 김치가 한국 맛을 낼리 만무하지만 그들의 정성이 너무 감사했다. 독일팬들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보내는 애정은 두터워졌다. 한마디로 말해 그들은 의리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특히 중년, 노년부부들이 보내준 분에 넘친 사랑은 잊을 수 없다.시간이 지나면서 같이 뛰는 선수들과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배우려고 하면서 가까워졌다. 4년 째 되니깐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더라. 실수를 해도 받아주고 이해해주니깐 자신감이 생기더라.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 같다.- 지금까지 가장 인상에 남는 순간은?2007년 함부르크에서 열린 유럽핸드볼연맹(EHF)컵에서 부동의 1위 팀을 꺾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 굼마스바흐팀 은퇴식 때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때 2만여 명의 홈팬들이 모였다. 정말 울컥했다. 조촐한 은퇴식을 생각했는데, 그렇게 많은 팬들이 와서 나를 응원해줄지 생각도 못했다. 지금까지 독일팬들과 SNS를 통해서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경기했을 때도 오신 분들도 있었고, 심지어 내 결혼식 때도 10여 명의 독일팬들이 찾아와 축하해줬다. 너무 고마운 분들이다.- 경희대 박사논문 주제가 ;리더십과 선수들의 자기관리, 팀 문화;다. 당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리더십이란?어떤 리더십이 옳다고 정의 내리기 쉽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과의 소통, 선수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리더십인 것 같다. 동시에 훈련을 할 때는 확실하고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지도자로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계속 노력하는 중이다.선수들 대부분 중,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강압적이고 지도자의 눈치를 보는 운동을 해왔다. 나도 그랬다. 이제는 너무 강압적인 것이 아닌 스스로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려고 한다. 감독이 지시한 대로 그냥 따라 하는 것은 로봇에 불과하다. 지도자가 말을 꺼내기 전에 선수들끼리 서로 의논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 그런 자율적인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1,2년 안에 이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금씩 노력하고 있고 그 변화가 조금씩 보이고 있다. 이것이 내가 강조하는 소통의 리더십이다.- 롤모델을 독일대표팀의 하이너 브란트 감독으로 삼았다고 들었다. 그분의 어떤 면이 본받을만한가?하이너 브란트(Heiner Brandt) 감독은 초대 굼마스바흐 감독이었다. 나를 집에도 초대하기도 했고, 당시 독일어를 못했던 나는 한독사전을 갖고 대화를 나누면서 정을 쌓았다. 자상한 아저씨 같은 스타일이었다. 체육관에서는 정말 독하고, 카리스마적인 리더였다. 푸근하지만 일을 할 때는 혹독하게 가르치는 지도자였다. 그런 모습에 나는 그분을 롤모델로 삼았다. 유럽 무대는 프로이기 때문에 어떠한 실수나 건방진 태도에 굉장히 엄격하다. 자유로우면서도 정해진 규칙을 잘 지켜야 하는 곳이 유럽 무대다. 예의를 중시하는 이곳에서 밝은 인사성과 겸손한 태도는 큰 도움이 되었다. 독일의 조직문화와 한국의 유교적인 전통과 예의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핸드볼은 희로애락을 함께 한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는 윤경신 감독- 당신이 생각하는 핸드볼의 매력은?스피드와 몸싸움이다. 핸드볼은 몸싸움을 허락하는 구기종목 중 하나다. 가장 격렬한 운동이 핸드볼이기 때문에, 스피드와 몸싸움 테크닉이 그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이다.몸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독일에서 10kg이상을 찌웠다. 웨이트 훈련을 통해 몸을 키웠고 몸무게를 110kg이상 불렸다. 서로 간의 기 싸움이 많은 운동이다. 그때 서로 몸을 부딪치고 기 싸움하던 선수들이 지금은 좋은 친구가 됐다. 이 운동 덕분에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요즘도 국제대회에 나가면 지도자로 활동하는 옛 동료들을 만나곤 한다. 시합이 끝난 후 그들과 맥주 한잔을 걸친다. 여러 나라에 친구들이 있다. 한국에서만 활동했다면 이런 친구들을 어떻게 만났을까.▲ 윤경신 감독(왼쪽)과 그가 이끄는 두산 남자핸드볼팀.-당신에게 핸드볼은 어떤 의미인가?핸드볼은 내 인생이다. 계속 직업으로 가지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갈 수 있게 만든 것이 핸드볼 때문이었다. 인생과 같다. 핸드볼에는 희노애락이 있다. 기쁘고 슬플 때도 있고, 이것 때문에 눈물 흘린 적도 있었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 더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이 운동을 그만 둘 때까지 핸드볼을 좋은 이미지로 가지고 가고 싶다.▲ 윤경신 감독이 독일 굼마스바흐와 함부르크 팬들에게 행운을 비는 메시지.글 위택환, 손지애 코리아넷 기자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whan23@korea.kr 201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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