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정착한 캐나다 출신 예술가, 폴 카잔더
서울에 거주하는 캐나다 예술가 폴 카잔더(34)씨는 을지로를 자주 방문한다. 을지로 거리에 있는 수 많은 조명상가들과 상점들 앞에 놓여 있는 조명 전시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2012년 밴쿠버에서 서울로 이주한 카잔더씨는 영상과 설치작업을 해오고 있다. 지난 여름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된 서울시립미술관의 '유니버설 스튜디오'전에 참가하기도 했다.유목적인 삶을 살아가며 다양한 문화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예술가들처럼 카잔더씨도 한국에서 영감을 얻고 자신이 바라본 한국을 예술작품에서 표현하고 있다.▲ 캐나다 출신 미디어;설치미술 작가 폴 카잔더2011년 '미디어시티서울' 전시에 참가한 지인들로부터 서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한국으로 이주한 카잔더씨는 서울이 창작활동을 하기에 훌륭한 도시라며 현재는 서울이 집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카잔더씨는 영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설치작업을 해왔다. 그는 이렇게 다양한 매체와 소재를 이용하는 이유는 "가장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유연하게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 복잡한 것이나 의문을 표현하기를 좋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그는 한국의 역사, 사회, 문화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 'The Real DMZ Project'에 참여하면서 비무장지대 근처인 강원도 철원에서 동네 초등학생들을 소재로 작업을 하기도 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건물을 배경으로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촬영하고 분단의 이미지를 대비시킴으로써 전쟁의 기억과 아픔, 그리고 상처를 표현했다.그는 예술이 "세상을 비치는 거울이며 기회이고 책임"이라며 "현실을 재구성하는 방법이고 현실 속의 자신을 되돌아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생각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폴 카잔더씨와 신사동 스튜디오에서 한국에 정착한 이유와 그의 예술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어떻게 서울에 정착해 예술가로서 활동을 하게 됐나?궁금하기도 했고 필요에 의해서이기도 했다. 세계 곳곳을 탐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서 여기에 정착했다. '미디어시티서울' 전시에 참가했던 친구들로부터 서울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국 영화나 역사, 한국전쟁, 분단상황에 대해 좀 알고 있었다. 한국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최근 한국영화인들이 훌륭한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뉴욕, 도쿄 등에서 작업을 해왔는데 서울에서의 창작활동은 어떤가?서울은 창작활동을 하기에 정말 흥미롭고 훌륭한 도시이다. 재료에 대해 구상하기에도, 문화와 정치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도쿄와 뉴욕에서는 소규모 작업을 했지만 몇 개월만 머물렀다. 이들 도시에 비교하면 서울은 집처럼 느껴진다. 뉴욕이나 도쿄에 정착할 생각은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잠시 머물렀을 뿐이다.어떤 곳에 정착한다는 것은 방문하는 것과는 확연히 틀리다. 어떤 도시를 방문을 할 때는 박물관이나 갤러리 등 가는 곳이 일정하다. 하지만 어떤 곳에 기반을 두면 그 곳에 대해 속속히 알게 된다. 그 도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도시의 낯선 곳을 탐험할 수 있다.▲ 폴 카잔더씨는 자신이 어떻게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결정을 내려 기쁘다고 말했다.- 어떻게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됐나? 자신이 예술가의 길을 걷는데 영향을 준 사람은?어려운 질문이다. 예술가의 역할은 문화와 사회와의 관계에 의해서 정의된다. 어렸을 때는 낯선 문화에 대해 궁금하기도 했다. 예술가는 경쟁이나 생존의 문제에 대해 덜 민감하다. 노동의 경제적인 관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어렸을 때 그림을 그리면 사람들은 내가 재능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점이 나의 자아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됐다. 미술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좀 더 현실적인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게 됐다. 18세 때의 예술활동과 34살이 되었을 때의 예술활동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나의 예술에 대한 관점은 그 때 이후로 크게 달라졌다. 사실 내가 왜, 언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런 결정을 내려서 매우 기쁘고 지금도 예술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내가 예술가의 길을 걷는데 영향을 준 사람들이 몇 명 있다. 2008년 내가 학부에 있을때 쥬디 리듈(Judy Radul) 교수를 만났다. 그는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났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깊은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가 일하는 방식이나 그가 자신의 작품을 구상하는데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제자-선생님의 관계로 만났지만 나중에는 좋은 친구가 됐다.- 미술의 여러 분야 중 미디어아트, 설치미술을 선택한 이유는?대체로 나의 작품을 볼 때 재료나 시간의 관점에서 본다. 대부분의 경우 영상물이 포함된다. 영상물로 정말 독특한 작업이 가능하다. 소리, 공간, 언어 등 여러 요소가 동시에 발생한다. 영상물에서는 사람들은 동시에 보고, 말하고 듣는다. 이러한 조각들이 나중에 하나가 된다. 내가 예술활동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 작품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시간과 공을 기울인다. 사전조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무언가를 발견하면 그것이 계기가 되고 작업을 시작한다.▲ 신사동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을 가진 폴 카잔더- 회화, 조각, 비디오 등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이용해 창작활동을 하는 이유는?미디어아트나 설치미술에서는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 다양한 소재, 이미지, 시간 등을 결합할 수 있다. 영상과 소리는 인생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미술에서 일어날 수 있다. 언제 작품이 완성;고정이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지하철을 타면 사방에서 LCD스크린을 볼 수 있다. 미디어는 이러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모든 사람들은 사물에 대해 각기 다른 방법으로 사물에 접근한다. 씨에이 콘라드 (CA Conrad)라는 훌륭한 시인이 있다. 그는 하나의 시가 있어도 천 명의 사람들이 읽으면 천 개의 시가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지식, 믿음 등이 합쳐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관람객들 중에서 마음을 열고 작품을 바라보면서 정말 놀라운 논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 작품에서 자신과 연관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미술전시에서 볼 수 있는 가능성이다. ▲ 폴 카잔더씨가 지난해 참여했던 'The Real DMZ Project'. 철원군의 초등학생들을 소재로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작업을 했다. (사진: 폴 카잔더)- DMZ 근처의 강원도 철원군에서 벌어진 'Real DMZ 프로젝트'에 참여해 철원군의 초등학생들을 모아놓고 작품을 만든 적이 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나?DMZ 프로젝트는 아주 특별한 의미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에 대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DMZ를 여러 번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상당히 복잡하다. 한국전쟁은 대규모로 일어난 폭력과 잔악행위라고 볼 수 있다. 전쟁은 심리적인 상처를 남기고 철원에서 이런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 내가 한국전쟁에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교과서, 영화, 다큐멘터리 등에서 배운 것 뿐이었다.철원에서 자란 아이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 이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요즘 한국아이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이 동네에서는 탱크가 지나다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현실과 너무 가까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자유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지원을 받아 창동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International Artists Residency Program)에 참여한 적이 있다. 어떻게 이런 기회를 갖게 됐으며 이 프로그램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전세계의 미술가들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지원했다. 한국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최고의 기회를 제공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 국가의 미술가들과만 일할 수 있는데 한국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한국과 외국 미술가들이 적절히 섞여 있다.어느 예술가에게나 서울에서 작업하는 것은 정말 좋은 기회다. 나는 한 곳에 기반을 두고 작업을 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한때 어딘가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느낌을 잃어버렸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대규모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다른 곳에서는 그렇게 큰 작품을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 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된 폴 카잔더의 작품 '전시를 위해 불을 밝히다'(Lights Lit for Show). 을지로 조명상가에서 제작한 전시물을 촬영한 뒤 라텍스에 이미지를 인쇄해 제작했다. (사진: 폴 카잔더)- 올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인 '전시를 위해 불을 밝히다'(Lights Lit for Show) 작품에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나?형광등 상자를 촬영해서 인쇄한 것이다. 옥외광고에 자주 쓰이는 방법인데 라텍스에 인쇄한 것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조명 전시물이다. 서울 을지로의 많은 상점들은 이러한 조명 전시물을 길에 내놓고 장사를 한다. 볼 때마다 흥미로웠고 을지로를 자주 방문하게 됐다.대부분 상점 주인들이 만든 것인데 이들을 촬영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이들은 기이하지만 정말 환상적인 조각품이다. 을지로에는 이러한 조각품들이 즐비했다. 을지로를 정말 좋아하게 된 이유다. 북미에서는 주로 대형체인점인 홈디포에서 이러한 조명들을 구입하는데 을지로는 마치 홈디포가 폭발해 사방에 흩어져 있는 것 같다.- 자신이 가장 관심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계획 중인 프로젝트는?나는 3차원 작품에 관심이 많은데 현재 3차원 요소가 가미된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나는 내년 8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뉴폼스페스티벌(New Forms Festival)에 참가할 계획이다. 아마 소리와 결합된 3차원 영상물이 될 것이다.최근에 뉴욕에 갔을때 켄 제이콥스(Ken Jacobs)의 3D작품을 봤다. 정말 경이로웠다. 실험적인 영화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의 3차원 작품도 봤다.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다. 미디어는 항상 진화하는 것 같다.- 한국의 문화, 역사 등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나? 영감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주로 독서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을지로는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영감을 준다. 긴장을 풀기 위해 도심외곽에 있는 산에 가기도 한다. 북촌에 살 때는 밤에 창덕궁 담 길을 따라 걷기도 했다. 특히 여름 밤에는 나무가 많아 시원해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버티고개 근처로 이사를 간 후부터는 서울성곽 길을 따라 걷는다. 호텔신라 주변의 야경은 정말 아름답다. 걷는 것은 영감을 얻는 좋은 방법이다.▲ 폴카잔더씨는 서울에 거주하면서 항상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본인에게 한국과 예술은 어떤 의미인가?예술이란 나에게 모든 것이다. 새로운 의문을 자아내는 방법이며 투쟁이며 기쁨이기도 하다. 훌륭한 예술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정직하게 반영한다. 작품은 사람들이 감상하고 이를 보면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때 의미가 있다. 특히 현대미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예술을 접근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오직 사람들만이 예술활동을 한다. 다른 창조물들은 예술활동을 하지 않는다. 예술활동은 한마디로 깨어있다는 것이다.한국은 나에게는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밴쿠버에서는 다양한 인종이 거주한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에서는 모두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에게는 유용한 경험이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항상 인지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당연시해왔던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한국은 그런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시간을 들여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임재언 코리아넷 기자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jun2@korea.kr
2014.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