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
- 2010.08.16
초임 홍보관의 좌충우돌 정착기
벌써 시드니 온지 일년 반, 임기의 반이 지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문화부 바깥으로는 파견근무도 안 해본 내가 나라 밖 공관에서 근무를 하려고 마음먹고 나올 때 예상했던 것 보다, 막상 도착해서 일하기 시작한 후에 훨씬 많은 어려움이 생초보 홍보관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서 제일 힘들었던 사람들간의 관계에 중심을 두어 정착과정에서 느낀 어려운 점들을 기술해 본다.
어디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해외 공관은 그 지역에서 유일한 정부기관이라는 측면에서 마치 섬과 같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섬 안에 있는 외교관 혹은 주재관, 현지 채용인력들과의 관계는 가장 기초적인 생태환경이다.
그동안 문화부에서만 근무하면서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몰랐다. 주변의 동료, 선후배들과의 편안한 인간관계를 당연시 했었는데 공관에 나와 보니 그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홍보전략회의 안건 발표.
모두가 처음 보는 분들인데 그 분들과 각각의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형성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조심스런 처신이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상호 조정하는 과정이 뒤따랐다. 개인역량의 총체적인 모습이 고스란히 비춰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경험에 의하면 계급장 떼고 편안하고 겸손하게 다가가는 게 효과적이었고 그렇지 않을 때 힘들었다.
홍보관의 주된 고객인 언론분야만 얘기해 보자면 우선 교민언론의 경우 한국과 비슷하게 접근하면 문제가 없었던 듯 하다. 상대방이 기자든, 편집인이든, 발행인이든 그 분들이 원하는 걸 최대한 듣고 해드릴 수 있는 서비스를 해드리려고 노력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실제로 해외 나와 보니 교민언론이 많은 한인들에게 주류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에 대한 중요한 정보제공처이고 비전 제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결국 교민언론에서 기사, 칼럼, 사설 등을 쓰는 교민언론인들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모국에 대한 이미지나 한국정부의 정책에 대한 이해도에 있어 교민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니 그분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필수적이었다.
다행인 점은 이분들이 한국분들이기 때문에 언어, 문화에 있어 편하고 내가 솔직하게 다가가는 한 큰 무리 없이 관계형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정에서 일부 갈등이 표출될 수 있고 오해가 있을 수 있으나 상대방의 역할과 존재감을 인정하고 다가가면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지난 4월 시드니음대에서 열린 한국음악연주회 후 키스하워드 시드니음대 부학장과 출연자들.
반면에 호주 주류언론인의 경우 정말 힘들었다. 몇 번 만나자고 해서 간신히 만나면 상대방의 관심을 내가 말하는 내용에 유지시키기가 힘들다. 처음 모 신문의 편집인급 언론인한테 갔을 때 그분의 눈에서 관심이 사라지는 걸 보기까지 오분도 안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자꾸 찾아가니 나중에는 서양영화에서 보는 한 장면처럼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를 출구로 안내해 줬다.
선진국이니 인내심을 갖고 내 영어를 들어주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가기 전에 얘기할 걸 준비해서 핵심 단어들을 숙지하고 가더라도 막상 둘이 딱 마주 앉으면 결국 내가 갖고 있는 어학능력, 지성과 감성 심지어 체력까지 총 동원해서 순간순간 대응해야 했다.
모든 일에 그렇지만 결국 끈기 있게 계속 부딪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수모를 당하더라도 자꾸 찾아가서 만나고 계속 설명하면 나중엔 미안해서라도 들어주었다. 그러다가 진정성이 전달되고 나면 나중에 점심 식사도 같이 하고, 와인도 같이 할 수 있었다.
나한테 나갈 길을 가르쳐 주며 쫓아낸 그 언론인도 결국에는 외신부 후배기자를 불러서 동해병기가 말이 되니 참고하라고 자료를 전달해 주었다. 호주언론도 나름 선후배간 권위체계가 잡혀있어 그 자료전달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는데, 그 순간에는 정말 마음속으로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처음에 의욕을 갖고 동해 표기오류 시정을 하려고 부딪칠 때 한계를 많이 느꼈다. 일본총영사관의 문화홍보영사는 부영사 한명에 현지직원이 셋이고 저팬파운데이션이라는 단체를 갖고 있는데 이들의 물량에 현지직원 한명인 내가 대응하려면 그야말로 부딪치는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일본 영사는 일본 특유의 수치회피 문화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체면이 상하면서까지 들이밀지는 않는 것 처럼 보였다.

올해 음력설 행사가 시드니 한인 밀집지역(스트라스필드)에서 열렸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축사하고 있는 모습.
결국 몇 달 동안 작업한 끝에 여기 주요일간지 두 곳으로부터 동해병기에 대한 좋은 결과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작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내 입장에서는 친하게 되었다고 하고 싶은 호주 언론인들이 결코 한국식으로 친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서로 나이에 상관없이 이름 부르고 굉장히 편안하게 격식 없이 만나는 듯 하지만 그 이상 나가기가 어려웠다. 여기 와 있는 프랑스문화원장, 일본 문화영사 등과는 가족간 왕래도 하고 저녁에 술 한잔 같이 하기도 했는데 아직까지 호주 언론인들과 그만큼 친해진 사람은 없다. 계속해서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들어 알게 된 것인데 각종 방한 프로그램에 호주 언론인을 포함시킬 때 가급적이면 그동안 방한 혜택을 누린 혹은 누릴 만큼 위치가 있는 고위 간부급 언론인 보다는 이제 막 에디터 레벨에 진입한 40대 간부급 언론인이 훨씬 더 접근 가능하고 소통이 쉽다는 점이다.
그 밖에 문화홍보관이 주로 만나는 대상 집단으로 교민, 지상사 주재원, 문화예술계, 학계, 정부 인사들이 있는데 내가 콘텐츠와 기준을 확실히 갖고 있고 열린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 좋은 결과가 나왔고 그중 하나라도 부족할 때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처음 와서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 나라는 사람의 실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고 있는 책, 만나는 사람, 생각하고 말하는 내용과 같은 나의 모든 것들이 결국엔 드러나는 것 같았다.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새벽기도를 시작한 지 벌써 몇 달이 되었다. 문화원 신설과 같은 핵심현안을 헤쳐 나가는데 아침마다 참회하고 감사하고 발원하는 게 도움이 되고 있다. 아무리 아파도, 전날 과음해서 힘들어도 꼭 지키려고 한다. 마치 물속에 빠진 사람이 동아줄 하나 간신히 잡고 있듯 간절한 마음으로. 이래서 해외 나오면 종교생활을 시작하게 되는구나, 하고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종교와 함께 가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고 새삼 감사하게 여기게 되었다. 해외 생활이라는 게 접촉하는 인간관계와 생각하는 사고반경이 현격하게 좁아지다 보니 한국에서는 잘 몰랐던 아내와 아이들이 얼마나 나한테 중요한 사람들인지 거의 매일 느끼게 된다. 딸아이가 등교하는 길과 내가 출근하는 길이 갈라지는 아파트 앞 횡단보도에서 안녕, 인사를 하고 돌아선 그녀석이 뒤돌아보고 빙긋 웃으며 손흔들 때까지 기다리는 짧은 순간 같은 사소하지만 본질적인 행복은 해외 생활의 큰 기쁨이자 기반이다.
반면 집안에 작은 갈등이나 소소한 문제들이 꽤 크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아이가 아프다든지 하면 해외에서 별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의료시스템과 문화가 워낙 달라 그저 집에서 자연치유하거나 간단한 약을 먹이는 정도인데 그 과정에 한국에서보다 훨씬 신경이 많이 쓰인다.
신념이나 비전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재무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당위나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그렇다. 소위 문화적 관점이라는 걸 유지하고 늘 생각해야만 문화홍보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 같다. 사석에서 공석에서 주변사람들에게, 가끔은 혼자 있을 때 스스로에게 일부러 되뇌곤 한다. 말로 하고 글로 써야 생각이 강화되고 행동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뭐라고 할까 마치 등대처럼 내 갈길을 비춰주고 의지하게 된다. 요즘 여러 사람들한테 혹은 스스로에게 반복하는 말로 이글을 맺고 싶다.
"감히 제 공무원 생활의 목표를 말씀드리자면 한국이 문화국가로서 세계인들로부터 존경받도록 하는데 헌신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언제까지 공무원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제가 은퇴하기 전에 목표달성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가 공무원 생활을 문화체육부에서 처음 시작했던 1995년만 해도 '한류'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전 세계에 한국문화원은 4개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정부는 한류라는 말이 상대국에 오히려 좋지 않은 인상을 줄까 싶어 대외적으로 꺼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한국문화원은 15개에 이르며 지금 제가 근무하고 있는 시드니를 비롯해 올해 안에 3개가 더 세워질 예정입니다.

김영수 주시드니 문화홍보관
호주에 있는 3년간 제 목표는 한국하고 호주하고 문화를 통해 친해지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서로 친해지려고 할 때 극장가고 공연 같이 보는 것 처럼 국가간에도 서로 친해지는 데에는 문화가 최고입니다. 그 일환으로 시드니에서 문화홍보관으로 일하려고 비행기 타고 오면서 문화원 만들 생각을 했습니다. 작년에 예산을 따서 올해 열심히 만들어 내년에 운영을 정착시켜 놓고 떠나는 것이 호주에서 근무하는 동안의 중기 목표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잘 될 것이라는 믿음도 있습니다.
전 제가 이렇게 일할 기회를 주고 그럴만한 자원과 알리고 싶은 문화가 있는 우리나라가 자랑스럽습니다. 좀 어려운 일이 가끔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있겠지만 이 생각만 하면 추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