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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게시일
2010.06.15

비빔밥 처음 먹어본 독일인 안야의 소감 세마디

안야는 올해 31살에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는 직장 여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올해 여름, 남자 친구와 함께 떠날 휴가지도 알아볼 겸 색다른 관광지에 대한 정보도 얻을 겸 베를린 국제관광박람회장(ITB)를 찾았다고 합니다.

베를린 국제관광박람회는 세계 190여 개국에서 1만 1천여 업체가 참가하며, 방문객수만 연인원 18만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관광전문 박람회입니다. 관광 분야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실제체험을 통해 국가이미지 제고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 각국의 치열한 홍보경쟁도 볼 만합니다.

안야는 올해 관광박람회의 주빈국인 터키 전시관을 둘러본 후,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쪽 관광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아시아관을 찾았다고 합니다. 열대 태양 아래 해변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거야 말로 진정한 여름휴가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홍보책자를 훑어보고 기념품도 챙겨들던 안야는 마침 비빔밥 시연회가 열린다는 한국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여러 가지 재료들을 뒤섞는 것을 보니 간단한 조리법만큼이나 그 맛도 단순해보였습니다. 이곳저곳 다니느라 배도 고픈 참에, 돈을 내고 먹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공짜로 맛을 보라는 데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흥미롭다"…"맛있다"…"아쉽다"

첫 숟갈은 "흥미롭다"였습니다. 두 번째부터는 "맛있다"였고 마지막 숟갈은 "아쉽다"였습니다. 안야는 비빔밥의 맛에 흠뻑 반하고 말았습니다. 기본 재료를 단순하게 조리해서 기본적인 양념과 간단히 뒤섞었는데도 기존 재료와 다른 새로운 맛을 내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 음식이 대한항공의 기내식으로 제공된다고 귀띔하자 비빔밥을 한번 더 맛보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방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음식 맛에 빠지자 이런저런 한국의 관광상품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템플스테이'를 통해 자기명상의 시간을 갖는 것도 열대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만큼 좋아보였습니다.

한국관광상품 자료를 훑어보던 안야는 자신이 맛본 비빔밥을 정장차림의 말쑥한 독일인과 한국인이 함께 만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시장 안내원이 안야의 궁금함을 눈치챘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독일인은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이며 한국인은 문태영 주독대사라고 설명해줍니다.

베를린 국제관광박람회

비빔밥에 놀라고 한국의 개방성에 놀라고

안야는 외국인에게도 주요 직책을 맡길 수 있는 한국인의 개방성이 놀라웠습니다. 상이한 재료들이 뒤섞여 새로운 맛을 내는 비빔밥처럼, 낯선 것들을 포용하고 조화시키는 것이 한국의 장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게다가 한국사람과 독일사람이 함께 만든 비빔밥이라니, 서로 다른 재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비빔밥의 조리방식에 딱 들어맞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안야는 과거 독일처럼 남과 북으로 나뉘어졌다는 점이나 요즘 경제적으로 좀 잘 나가는 나라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던 한국이 새삼 흥미로워졌습니다.

베를린에서 한국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을 묻는 안야에게 이곳저곳 한국음식점을 소개하던 끝에 손수 만들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마침 베를린 도심으로 막 이주해서 새로 개원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음식과 관련된 전시를 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한국음식에 대한 설명도 듣고 조리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일러두었습니다. 안야는 꼭 한국문화원을 방문하겠다며 헤어졌지만, 곧 그녀의 혀가 버터맛에 뒤덮여 비빔밥의 맛을 잊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한국음식 전시기획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한국문화원의 한국음식 전시기획은 술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문화원은 작년 12월 현재의 위치로 이주를 시작했지만 신임문화원장으로 부임한 2월 말에도 정식 개원식을 열기에는 아직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십 수 년의 세월이 쌓아올린 짐들을 옮기고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도 힘에 부친 일인 데다가 새로 마련한 건물의 공간을 전시공간답게 재구성하는 것도 큰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개보수공사가 끝나고 전시공간이 모습을 드러내자 도면으로만 보고 판단했던 것과 실제 공간 체험이 다르게 나타나는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정식 개원식을 앞두고 전체적인 공간을 다시 한번 조정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베를린 국제관광박람회 전시

한국문화원이 새로 자리한 곳은 베를린 도심에서도 한가운데로 수많은 유동인구가 넘치고 있었습니다. 일단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에 로비로 이용하고자 했던 1층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문제는 어떤 기획을 갖고 무엇을 전시할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문화원 이전에 지친 직원들에게 전시기획에 대한 고민을 요구하는 것도 염치가 없어 보였습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신임 문화원장으로 부임했다는 것을 핑계로 문화원 직원들과 '단합대회'를 열었습니다. 직장인들이 흔히 그렇듯 술자리가 흥해지면 아무래도 이런 저런 업무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기 마련입니다. 개원식에 대한 걱정과 1층 공간 활용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자, '무대의상디자인'을 전공한 탓인지 평소 밉지 않는 튀는 옷차림과 행동으로 관심을 끌었던 직원이 주말 동안 자신이 전시기획안을 마련해보겠노라고 자진하고 나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술김의 약속도 약속이라고 못 박으면서도 이 직원의 호언장담을 '소맥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이라 생각하며 큰 기대는 걸지 않았습니다.

월요일 아침, 약속대로 그 직원은 문제의 '한국음식'에 대한 전시기획안을 갖고 왔습니다.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탓에 이틀 만에 전시기획안을 내놓는 순발력이 놀라웠고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대의 효과를 끌어내려는 꼼꼼한 기획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시기획안을 받아들이고 1층 공간구성에 대한 전권을 약속한 후에도 얼마나 잘 해낼까하는 걱정은 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신데렐라의 마녀와 같은 직원 재주 덕에 어엿한 전시공간으로

화요일 아침, 작업 상황도 둘러볼 겸 일부러 1층 로비를 통해 사무실로 출근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1층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말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룻밤 만에 1층 로비는 그야 말로 '특별전시장'으로 탈바꿈되어 있었습니다. 김치, 비빔밥 등 한국음식 사진과 한국음식을 맛본 독일인들의 소감 등이 1층 벽을 따라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밤 12시가 되면 모두 다 호박으로 변하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룻밤 만에 일어난 믿을 수 없는 변화였습니다. 신데렐라의 마녀와 같은 재주를 가진 그 직원 역시 밤샘 작업으로 파김치가 돼있었지만 스스로도 대견하게 느끼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독일 한국문화원 원장

비록 아직까지 문화원을 찾는 손님들은 많지 않지만, 전자제품 양판점처럼 커다란 평면 TV 두 대만 덜렁 놓여있던 1층은 어엿한 전시공간이 되면서 행인들의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공간은 일종의 기획전시공간으로 활용할 생각입니다. 이번 한국음식 기획전시에서 얻어낸 효과는 또 있습니다. 자발적인 제안으로 실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다른 직원들도 더욱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내놓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업무 개선 제안에서부터 진지한 조직운영 개선 제안까지 문화원 직원들의 아이디어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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