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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리뷰: 김영하 '빛의 제국'
2016.09.06

여러 해 동안 평범한 영어권 독자라면 한국 관련 책 중에 별로 읽을 거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국에서 나오는 영어책들이라곤 반(反)공산주의적이고 엄청나게 두꺼운 역사책 아니면 김치가 얼마나 건강에 좋고 사계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설명하는 인류학 교과서, 아니면 (공로 순으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재정부의 똑똑한 엘리트들, 자신을 희생하며 공장에서 몸소 스타하노프(Stakhanov: 노동 생산력 증대 운동. 1935년 우크라이나의 광부 스타하노프(Stakhanov, A. G.)가 새로운 기술로 보통 사람의 14배를 채탄한 것이 계기가 됨) 운동을 실천한 남자들, 집에서 한복을 입고 아이들을 길렀던 순박한 어머니들 덕분에 가능했던 경제 발전이라는 기적의 비결을 공유하는 책 정도였다. 짜잔, 그러다 놀랍게도 1990년대 제대로 된 현대 한국문학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인구증가 추세에 따라 지난 세기 말 일련의 신진 작가들의 물결이 마침내 출판계를 강타했다. 신경숙(1963년생), 공지영(1963년생), 한강(1970년생), 성석제(1960년생). 배수아(1965년생) 등 이들 작가들의 책이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들은 자신들만의 언어로 글을 썼다. 출판계는 호황을 누렸고 영어로 번역돼 호주 애들레이드(Adelaide)부터 스위스 취리히(Zürich)의 서점까지, 전 세계 독자들을 만나는 작가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영하(1968년생)도 그 중 하나다.

순수문학이라기보다 대중문학 작가에 가까운 김영하는 장편소설을 11편 출간했다. 그 중 4~5편이 세계 출판시장 규모 상위 1, 2위의 영어권, 스페인어권에서 출간됐다. 뿐만 아니라 독일어, 불어, 터키어, 네덜란드어, 심지어는 리투아니아어로도 번역됐다. 한국에서 받은 문학상만도 여러 개에, 스릴러 소설 여러 편이 영화화됐고 또 뮤지컬로 제작된 작품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김영하는 최근 맨해튼에 살고 있다. 진정 뉴요커인 셈이다.

소설 '빛의 제국'(김영하, 김지영 역)의 영역본은 2010년 휴튼 미플린 하코트(Houghton Mifflin Harcourt)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 소설 '빛의 제국'(김영하, 김지영 역)의 영역본은 2010년 휴튼 미플린 하코트(Houghton Mifflin Harcourt)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모든 것을 청산하고 즉시 귀환하라.”

'빛의 제국'(2006)은 김영하의 세 번째 장편이자 영어로 번역된 두 번째 작품이다. 처음 몇 장을 읽다 보면 냉전시대 말기 남북한간의 첩보 스릴러가 펼쳐진다. 위키피디아 한 페이지를 가득 메울 만큼 넘쳐나는 대중문화 레퍼런스는 덤이다. 등장인물들은 하이네켄, 비틀즈, B.B. 킹, 유명 브랜드들, 폭스바겐, 윌리엄 셰익스피어, 멘솔 담배, 여기에 약간의 성적인 장면을 배경으로 총격전을 벌인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마치 김영하가 큰 소리로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러하듯) ‘내가 여기 왔노라’ 선언하는 것처럼 분명하게 묘사된다. 북한 간첩마저 이제는 전 세계의 소비주의와 대중문화, 유행의 일부인 것이다.

미국 TV드라마 '24'처럼 '빛의 제국'도 24시간 동안 펼쳐진다. 챕터나 섹션은 각각 한두 시간에 일어난 일을 다룬다. 오전 7시, 오전 9시, 오전 10시 등 촘촘하게 쓰여진 이야기의 마지막은 오전 3시, 오전 5시를 지나 다음날 아침 7시에 끝을 맺는다. 새 하루의 동이 튼다.

소설은 후반부로 갈수록 잘 맞물려가던 톱니바퀴가 탁, 갑자기 튕겨 나갈 것 같은 긴박감 속으로 점점 독자를 몰아간다. 가족사, 끊긴 연락책, 거듭되는 배신이 마지막 페이지에 드러난다. 이야기는 개발 붐이 일던 1980년대 군부 독재하의 한국에서부터 1988~89년 민주화 운동을 거쳐 1990년대 자유가 보장된 현대의 준법국가로 이어진다. 이 대중적인 스릴러 소설을 통해 김영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와 이 나라 현대사의 상처, 조선 후기에서 현대 한국으로 한반도를 변모시킨 20세기의 한국에 부드럽게 스며들 치유의 연고를 내놓는다. 김영하는 이 24시간짜리 액션 소설에서 식민제국주의, 착취, 공산주의, 협력, 분단, 두 개의 경제구조, 연속되는 비밀을 다룬다. 유일한 치료제는 시간뿐이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흘러간다. 째깍째깍.

“여기는 롯데월드.”

그러나 ‘제임스 본드’, ‘제이슨 본’ 류의 스펙타클한 액션을 이 소설에서 찾아보기란는 어렵다. 미국 TV드라마 '매드맨'의 주인공 돈 드레이퍼처럼, 우리의 주인공도 그가 추정하는 페르소나가 되어간다. '스파이'니 '첩보요원'이 된다는 컨셉트 자체는 인생의 우화에 가깝다. 우리는 속으로 하는 생각과 겉으로 하는 행동이 따로 있다. 무엇이 진짜인가? 실인가? 장발장의 물음처럼 "나는 누구인가?"

이러한 부분은 두 명의 다른 캐릭터를 통해 정교하게 진행된다. 주인공의 아내와 딸의 이야기가 가까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우리의 스파이 이야기와 꼭 맞아 들어간다. 이들 모두 24시간 동안 자신들만의 과정으로 정체성을 찾아간다. 아내는 부정을 저지르고 거리를 두고 담배를 피운다. 딸은 같은 시간 십대들이 겪는 것들, 남학생들과 성장과 숙제를 마주한다. 김영하는 주인공의 삶이 바뀌는 동안 아내와 딸의 생각을 주인공의 24시간 속에 시시각각 녹여낸다.

제1장에서는 이야기가 이 세 명의 캐릭터 사이를 오간다. 생각의 꼬리 3개가 각각 장에서 장으로 이어지며 독자는 서울로, 또 세 명의 이야기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각 인물들을 좀 더 많이 알게 되고, 이들의 속내를 듣고 이들의 내밀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세 명이 모두 한편으로는 위장 중인 것이고, 어떤 면에서 보면 세 명이 모두 말 그대로 또 비유적으로 스파이인 것이다.

아, 그리고 특히 세계 최대의 실내 놀이공원 가운데 하나인 롯데월드에서 벌어지는 현란하기 그지없는 쇼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치범 수용소가 있는 국가 북한에서 벌어지는 심각하기 그지없는 행진을 비교하는 부분에서는 작가의 예리함이 느껴진다.

1990년대 한국문학 신진 작가군 중 하나인 김영하 작가(왼쪽에서 두 번째)가 지난 5월 베를린에서 열린 문학대담 행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1990년대 한국문학 신진 작가군 중 하나인 김영하 작가(왼쪽에서 두 번째)가 지난 5월 베를린에서 열린 문학대담 행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눈을 떴다. 몸은 무거웠고 입에서는 구취가 풍겼다.”

김영하가 잘 읽히는 만큼 더욱 치명적인 실수도 있었다. 영문 번역본 첫 페이지 무려 첫째 줄에 편집 과정에서 수정하면서 삭제가 안 된 불필요한 단어가 남아 있었다. (실수를 그대로 옮겨보자면 "그는 눈을 떴다. 몸은 무거웠고 입에서는 나는 구취가 풍겼다" 하는 식이다. 역자 주.) 신간 소설의 두 번째 문장에서 이렇게 눈에 띄는 오타가 나오면 너그럽게 봐도 아마추어 같고 가차없이 보자면 무능하다. 실수만 없었다면 술술 읽혔을 소설에 첫 번째 줄의 초등학생 같은 실수는 옥의 티다. 북한이었다면 번역자든 출판사든 (아니면 둘 다) 색출해서 눈을 가리고 담배 한 모금 피우게 한 후에 총살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곳은 한국이고, 따라서 독자들은 그저 혀를 끌끌 차고 책을 마저 읽어나갈 뿐이다.

2013년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The Los Angeles Review of Books)는 한국문학에 관심을 보이며 그 중에서도 김영하를 주목하는 기사("Lost Causes: The Novels of Kim Young-ha")를 게재했다. 이 기사에서는 1990년대 이전 한국 문학 전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중략)...멜로드라마는 노골적이고 전반적인 국가적 난제, 특히 남북 분단에 대해 당황스러우리만치 직접적으로 고민하는 모습…(후략)” 창문을 열자 새로운 돌풍이 들이닥친 것처럼, 김영하와 1990년대 한국 작가들은 그 이전까지 황량하고 우울했던 영어판 한국 책의 치료제나 다름없다.

정리하자면 '빛의 제국'은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갈 정도로 재미있어서 한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고 캐릭터는 독자가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말이 매우 놀랍다. 즐거운 독서 경험이다.

그레고리 C. 이브츠 코리아넷 기자
사진 주독일한국문화원
gceav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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