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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 그림책 ‘먼지아이’ 볼로냐 아동도서전 대상 수상
2014.04.02

어느 추운 겨울 밤 유진은 잠을 뒤척이다 일어나 컴컴한 창 밖을 바라본다. 그는 다시 누우려다가 묵혀둔 청소를 시작한다. 그리고 침대 밑 성냥갑에 등돌리고 앉은 작은 먼지 아이를 발견한다.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정유미 작가의 ‘먼지아이’의 삽화. (컬쳐 플랫폼 제공)

▲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정유미 작가의 ‘먼지아이’의 삽화. (컬쳐 플랫폼 제공)

이것은 최근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 뉴호라이즌 부문 대상을 수상한 정유미 작가의 아동문학 ‘먼지아이’의 도입부이다. ‘새 지평’을 의미하는 뉴호라이즌 부문 대상은 문학성이 뛰어난 제3세계 어린이 문학작품에 주는 상이다.

'먼지아이’는 정 작가의 2009년 작 동명 단편 애니메이션을 그림책으로 펴낸 것이다. 애니메이션 작품은 2009년 프랑스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고 당시 박찬욱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중요한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정유미 작가는 주인공이 청소를 하는 동안 화장대, 식탁 밑, 욕실 구석 등 집안 곳곳에서 먼지아이를 발견하는 과정을 흑백의 연필 드로잉으로 섬세하게 표현했다. (컬쳐 플랫폼 제공)

▲ 정유미 작가는 주인공이 청소를 하는 동안 화장대, 식탁 밑, 욕실 구석 등 집안 곳곳에서 먼지아이를 발견하는 과정을 흑백의 연필 드로잉으로 섬세하게 표현했다. (컬쳐 플랫폼 제공)

 ‘먼지아이’ 책 표지 (컬쳐 플랫폼 제공)

▲ ‘먼지아이’ 책 표지 (컬쳐 플랫폼 제공)

이 책에는 글이 없다. 정 작가는 주인공 ‘유진’이 청소를 하다 화장대, 부엌 식탁 밑, 욕실, 찻잔 등 집안 곳곳에서 먼지아이를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렸다. 먼지 아이는 가까이 다가가려는 주인공에게 등을 돌리고 거리를 두지만 주인공이 청소를 하는 동안 끊임없이 발견된다. 청소를 마친 주인공은 식사를 하려고 밥 한 그릇을 퍼 식탁에 올린다. 그는 그릇 위에서 밥알을 먹고 있는 먼지아이를 발견하고 한 그릇을 더 퍼서 같이 밥을 먹는다.

라가치상 심사위원들은 “영화로 만들어진 그림을 텍스트 없이 조용하지만 강렬하게(powerful) 엮어냈다”며 “흑백 대비를 통해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잘 그렸다”며 수상작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먼지아이’는) 작가의 특출한 창조성이 만들어낸 작품(a work of exceptional creative ambition)”이라는 호평도 함께 했다.

1966년 제정된 라가치상은 '그림책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릴 만큼 국제적으로 아동도서 분야의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다. 픽션ㆍ논픽션ㆍ뉴 호라이즌ㆍ오페라 프리마 등 4개 부문에서 책 내용과 디자인, 창의성, 교육적, 예술적 가치 등을 평가하여 각 부문에서 대상과 우수상을 선정한다. 한국 그림책이 라가치 대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11년 ‘마음의 집’ (김희경 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창비사 출판)이 논픽션 부문에서, 2013년에는 ‘눈’ (이보나 흐미헬레프스카 글, 그림, 창비사 출판)이 픽션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코리아넷은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수상하고 돌아온 정유미 작가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정유미 작가 (컬쳐 플랫폼 제공)

▲ 정유미 작가 (컬쳐 플랫폼 제공)

- 상을 의식하고 글을 쓰진 않았겠지만 대상수상을 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 작품이 공감을 얻을 수 있어 작가로서 행복하다. 어디선가 나의 작품을 보고 공감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큰 힘이 된다. 앞으로도 계속 작품을 만들고, 독자들과 계속 만날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 작품에서 먼지아이는 주인공 여자의 손에 잡힐 듯 말듯 거리를 두고 있다. 왜 먼지 아이는 주인공을 피하는가?

주인공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꼈을 것 같다. 만약 주인공이 자신을 치워버리지 않는다면 숨어버리지 않고 주인공 옆에 그대로 머물렀을 것이다. 마지막 엔딩에서 주인공과 먼지아이가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은 주인공이 먼지아이 존재를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이 스토리 이후에는 더 이상 먼지아이가 주인공을 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 책을 보는 아이들의 시각에서 볼 때 왜 먼지아이는 옷을 다 벗고 있는지 궁금해 할 거 같다.

옷은 그 사람의 많은 요소들을 포함하고 그것들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먼지아이는 주인공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존재 그 자체를 표현하고자 했다.

-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이 자기 밥그릇에서 먼지아이가 밥알을 먹고있는 것을 발견하고 한그릇을 더 퍼서 밥을 먹는다. 여기에서 선생의 의도는 무엇인가?

자신 안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있다. 만족스러운 모습들 혹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이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러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을 인정하고, 그런 면들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주인공과 먼지아이가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은 주인공이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공존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 먼지아이와 주인공의 외모가 상당히 비슷하다. 혹시 먼지아이는 주인공 또는 선생의 또 다른 자아인가?

먼지아이는 주인공 여자의 또 다른 자아라고 설정했다. 특히,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을 먼지아이 캐릭터로 의인화 했다.

- '먼지아이' 라는 작품을 만들게 된 영감은 어디서 얻으셨는지?

일상 생활 중 하나인 청소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찾았다. 청소를 하는 과정자체가 흥미로웠다. 청소는 몸으로 하는 물리적인 행위인데도 심리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준다. 청소는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하고 물리적인 행동이지만, 청소를 하고 난 뒤에는 물리적인 행동이 심리적인 변화까지 일으키는 경험을 많이 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을 통해 청소라는 행위가 삶에 있어서 필연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다.

- 책의 모든 장면이 흑백으로 그려졌다. 특별히 흑백 그림을 고집한 이유가 있는가?

흑백으로 그려진 세밀한 연필그림이 가지는 효과가 재미있었다. 사실적인 이미지이지만 연필로 묘사하는 과정을 통해 독특한 감수성이 만들어 진다고 느꼈다.

- 아동 대상 애니메이션과 아동문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어릴 때부터 그림책을 좋아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로 좋아한다. 그래서, 먼지아이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그림책으로 만들게 되었다. 이 책이 국내외에서 그림 에세이, 그래픽 노블 등으로 분류 되었는데 아동문학으로도 받아들여져 아이들과도 만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 선생에게 감동을 준 동화나 애니메이션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 동화책을 아주 좋아했다 이 동화책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흥미로웠다. (‘Where the wild things are’라는 제목의 1963년 출판된 동화책, 2009년 동명 영화로 제작됨) 동화책에서는 심플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데,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야기와 캐릭터가 풍부하게 펼쳐지면서 성장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이렇게 작은 아이디어가 풍부한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 다음 작품은 어떤 주제로 만들고 싶은가?

지금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작품에서도 자신의 내면 아이를 만나고, 사랑하게 되는 주제를 다룬다. 를 마무리하고 나면, 지난해 완성한 <연애놀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그림책으로 옮기는 작업을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그림책을 구상하고 있다.

- 선생께서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삶에서 만나게 되는 질문과 고민들의 답을 찾아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또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길 소망한다.

- 선생님에게 글쓰기의 의미는?

아이들의 모습과 행동을 보고 있으면 항상 재미있다. 아이들이 풍부한 상상력을 이용해서 하는 놀이의 과정은 나의 창작에 영감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과 소통 가능성은 앞으로의 작품의 방향에 있어서 중요한 지표가 될 것 같다.

윤소정 코리아넷 기자
arete@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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