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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승 사후 첫 번째 회고전 개막식 성황리 개최
재외한국문화원 활동
2019.09.25
▲전시장을 가득 메운 개막 리셉션 참석한 관람객들 모습

▲전시장을 가득 메운 개막 리셉션 참석한 관람객들 모습


1960-70년대 한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주도했던 주역이자 80년대 이후부터 1994년 작고할 때 까지 뉴욕 이스트 빌리지와 브루클린 그린포인트를 기반으로 일명 ‘정크아트’ 와 ‘퍼포먼스’ 작가로 한국과 뉴욕미술계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정찬승(1942-1994) 작가의 사후 첫 번째 회고전 개막 리셉션이 지난 9월 18일 저녁 뉴욕한국문화원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개막 리셉션 참석한 관람객들 모습

▲전시장을 가득 메운 개막 리셉션 참석한 관람객들 모습



▲전시 개막 리셉션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뉴욕한국문화원 조윤증 원장

▲전시 개막 리셉션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뉴욕한국문화원 조윤증 원장



▲전시 개막 리셉션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뮤지션 한대수

▲전시 개막 리셉션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뮤지션 한대수


이 날 행사에는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원로 미술가 김구림, 김차섭을 비롯한 생전 정찬승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한대수, 최형기, 서재순, 위재군, 김수옥 등 여러 지인들, 그리고 당시 함께 활동했던 동료 작가들이자 이제는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로 우뚝 선 변종곤, 한영섭, 남영희, 최성호, 김영길 작가 등 약 300 여명이 전시장을 찾아 열기를 더했으며, 뿐만 아니라 뉴욕현대미술관 및 링컨센터, 카네기홀 등 뉴욕의 문화 예술계 주요 기관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이번 전시는 정찬승 작가 사후 25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기억하는 동료 작가들, 친구, 지인들 등 사실상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에 의해 탄생된 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시의 기획 단계부터 작품 수집까지 여러 사람들의 참여와 도움이 뒷받침된 전시이다. 


▲전시를 위해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정찬승의 친구들. 왼쪽 위아래 순으로 아트 딜러 Ethan Pettit,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감미옥 최형기 사장, 홍대 후배이자 뉴욕 정착을 도운 최성호 작가, 홍대 미대 동기동창 한영섭 남영희 부부 작가, 오랜 친구 뮤지션 한대수 - 이들의 인터뷰 내용은 전시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전시를 위해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정찬승의 친구들. 왼쪽 위아래 순으로 아트 딜러 Ethan Pettit,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감미옥 최형기 사장, 홍대 후배이자 뉴욕 정착을 도운 최성호 작가, 홍대 미대 동기동창 한영섭 남영희 부부 작가, 오랜 친구 뮤지션 한대수 - 이들의 인터뷰 내용은 전시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한국 단색조 회화의 경향을 일컫는 일명 한국 모더니즘의 대명사‘단색화’에 대한 다년간의 국제적인 관심과 더불어 최근에는 한국을 중심으로 동시대 한국의‘아방가르드 미술’에 관한 새로운 관심과 연구가 활발한 상황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 한국에서 여러 차례 정찬승 관련 전시가 추진된 바 있지만 퍼포먼스와 정크아트에 집중되어 있는 그의 작품 특성상 유작이 거의 없고 정크아트도 대부분 유실된 상태이기 때문에 중단되거나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사를 조명하는 기획전에 부분적으로 등장할 뿐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뉴욕한국문화원이 지난 1년여 기간 동안 수집한 정찬승 작가가 뉴욕 활동할 당시 지인들에게 선물했거나 판매했던 작품들과 정크아트로 가득 차 있는 그의 작업실 촬영 영상 및 전시장 모습, 그리고 여러 지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그의 사진과 아카이브 자료들이 작가 사후 약 25년만에 최초로 공개된다. 아울러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구자로서의 그의 발자취를 1942년부터 2018년까지 정리된 타임라인 자료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1985년 브루클린 그린포인트 스튜디오에서 정크아트와 페인팅 작업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찬승 작가 /사진촬영 및 제공: 임영균

▲1985년 브루클린 그린포인트 스튜디오에서 정크아트와 페인팅 작업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찬승 작가 /사진촬영 및 제공: 임영균



▲1980년 뮤지션 한대수 자택에 모인 지인들(왼쪽에서 두 번째 변종곤 작가, 세 번째 정찬승 작가) /사진촬영 및 제공: 임영균

▲1980년 뮤지션 한대수 자택에 모인 지인들(왼쪽에서 두 번째 변종곤 작가, 세 번째 정찬승 작가) /사진촬영 및 제공: 임영균



▲1987년 뉴욕 소호 사진작가 임영균 개인전에 참석한 정찬승과 김환기 작가의 부인이자 수필가 김향안 여사(좌측 첫 번째) /사진촬영 및 제공: 임영균

▲1987년 뉴욕 소호 사진작가 임영균 개인전에 참석한 정찬승과 김환기 작가의 부인이자 수필가 김향안 여사(좌측 첫 번째) /사진촬영 및 제공: 임영균


전시를 기획한 뉴욕한국문화원 조희성 큐레이터는“이번 전시는 한 아티스트의 통상적인 회고전으로 생각하면 작품과 자료의 규모면에서 다소 빈약할 수 있다. 하지만 생전 그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한대수, 최형기, 서재순, 위재군, 김수옥 등 여러 지인들의 도움과 당시 함께 활동했던 동료 작가들이자 이제는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로 우뚝 선 변종곤, 한영섭, 남영희, 최성호, 김영길 작가가 기꺼이 전시에 참여함으로서 여러가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었다”며“필연적으로 뉴욕이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이번 전시를 계기로 정찬승이라는 아티스트가 20세기 후반 한국미술 전개에 있어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새롭게 조명 받을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시 개최 소감을 밝혔다. 


▲1985년 조각가 존배 교수(프랫인스티튜트 조각과)의 브루클린 집에 모인 정찬승 작가(검정 옷을 입고 서 있는)와 김구림 작가, 백남준(왼쪽 창문 밑 바닥에 나란히 앉아 있는) 작가 등 /사진촬영 및 제공: 임영균

▲1985년 조각가 존배 교수(프랫인스티튜트 조각과)의 브루클린 집에 모인 정찬승 작가(검정 옷을 입고 서 있는)와 김구림 작가, 백남준(왼쪽 창문 밑 바닥에 나란히 앉아 있는) 작가 등 /사진촬영 및 제공: 임영균



▲정찬승 작가 사후 뉴욕의 동료 아티스트들이 그의 그린포인트 작업실 앞에 마련한 작은 추모공간 /사진촬영 및 제공: 임영균

▲정찬승 작가 사후 뉴욕의 동료 아티스트들이 그의 그린포인트 작업실 앞에 마련한 작은 추모공간 /사진촬영 및 제공: 임영균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찬승 작가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던 1965년 한영섭, 남영희 등 홍익대 동문들과 함께 아방가르드 미술 그룹‘논꼴’을 결성하였다.  1967년 한국청년작가 연립전에서부터 한국적 퍼포먼스인‘해프닝’을 벌이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에 방태수(연출가), 정강자, 김구림과 함께 행위 예술단체 <제 4집단>을 결성하여 여러 차례‘해프닝’을 벌이며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을 주도하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약 40여차례 수감되는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군사 정권의 억압과 당시 집단적이고 권위적인 양상을 띠는 한국 화단에 싫증을 느낀 정찬승 작가는 1980년 제 11회 파리비엔날레를 참가, 1년간 파리에 체류하다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다음해 바로 뉴욕으로 이주하였다. 뉴욕 화단에서 닥터 정 혹은 챈에스 정(Chan S. Chung) 으로 불렸던 정찬승은 80년대를 뉴욕의 이스트빌리지가 열리기 시작할 무렵 브루클린 그린 포인트 지역에 거처를 확보하였다. 예술의 규범보다 생활의 체험을 중시하였던 그는 길에 버려진 혹은 일상에서 사용되는 사물들을 작품의 소재로 삼고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탈바꿈 시키며 1970-80년대 브루클린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를‘정크아트’로 발전시켰고, 뉴욕에서 10여년간 활동을 하다 1994년 7월 3일 만 52세의 나이에 직장암으로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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