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
- 2013.08.21
이른 아침 고궁에서 국악에 빠지다
초목에 매달린 이슬이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이른 아침 창경궁에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이 잰 걸음으로 명정전(明政殿)으로 향한다.
창경궁 명정전 뒤뜰에 모여든 500여명의 관람객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맨 바닥, 돗자리 위에 자리 잡고 아침부터 기세를 올리는 무더위를 부채질로 달랜다. 고궁의 정취를 한 층 더 살리는 국악 가락이 고요하기만 했던 고궁의 아침을 깨우고 관람객들은 이내 풍류 가락에 빠져든다.

▲‘창경궁의 아침’ 첫 무대가 오른 17일 창경궁 명정전 뒤뜰에서 노란 앵삼을 입은 양선희 씨가 춘앵무를 펼쳐보이고 있다. 전한 기자
‘창경궁의 아침’은 국립국악원이 지난 2008년부터 시작한 고궁 아침 국악 공연이다. 지난 5년 동안 내리 매진 됐던 아침 국악 공연은 올해 첫 공연이 열린 17일에도 매진 됐다. 이날 미쳐 사전 관람 신청을 못한 사람들은 아쉽지만 홍화문(弘化門)에서 발길을 돌렸다.
공연의 문은 가곡이 열였다. 피리, 대금, 단소, 해금, 거문고, 가야금, 장구 연주자들과 함께 자리를 잡은 이정규 남창(男昌)과 이준아 여창(女昌)은 반주에 맞춰 한국 가곡 특유의 가락을 전달한다. 관람객들은 두 소리꾼의 가곡을 들으며 공연에 앞서 하주화 서울예대 부총장이 “시조를 노랫말 삼아 우아하고 격이 높다”고 한 설명을 되새긴다.

▲17일 이른 아침 창경궁 명정전 뒤뜰에 모인 500여명의 관람객들이 가곡을 듣고 있다. 전한 기자
무대는 조선시대 궁중무용인 향악정재(鄕樂呈才- 한국 전통궁중무용으로 삼국시대 이래로 전승되어 온 춤과 조선시대 창작된 전통 춤들이 모두 포함) 가운데 하나인 춘앵전(春鶯囀)으로 이어졌다.
조선의 23대 왕, 순조(1790~1834) 때 창작된 궁중무용인 춘앵전은 화창한 봄날 아침 버드나무 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꾀꼬리의 아름다운 자태를 독무로 표현한 무용이다. 500여명의 관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숨을 죽이고 노랑 앵삼을 입고 극도로 절제된 춘앵무를 펼쳐보이는 양선희 씨의 춤사위를 지켜본다.

▲‘창경궁의 아침’ 무대에 오른 원완철 대금 연주가가 ‘대금산조’의 가락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다. 전한 기자
궁중 춤사위에 이어진 공연은 대금산조가 맡았다.
춘앵무에 숨을 죽였던 관객들은 느리게 시작했지만 빨라지며 대금을 통해 소리를 움직이는 원완철 씨의 연주에 맞춰 몸을 맡긴다. 이내 흥이 오른 관객들은 어깨를 들썩인다.
이날 공연은 풍류음악의 대표적인 기악곡이자 백미로 손꼽히는 ‘현악 영산회상(絃樂靈山會相- 거문고가 중심이 되며 작은 곡이 모여 하나의 큰 곡을 이루는 일종의 모음곡)’으로 마무리 됐다. 국립국악원 18명의 단원들은 거문고를 중심으로 큰 곡을 이루며 창경궁의 아침을 국악의 선율로 가득 메웠다.

▲국립국악원 단원들이 17일 거문고 연주를 하고 있다. 전한 기자
아침 일찍 국악 가락에 빠져든 관객들은 공연 이후 발길을 집으로 돌리지 않고 창경궁 이곳 저곳을 산책하며 고궁의 아침을 만끽했다.
국립국악원 이동복 원장은 “동트는 춘당지의 아름다운 풍경과 궁궐 중 유일하게 물이 흐르는 창경궁 어구에 조성된 금천길을 거닐어보며 한국 음악과 춤의 색다른 매력을 음미해 보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17일 아침 고궁에서의 국악공연을 보고 듣기 위해 모인 500여명의 관객들이 풍류음악의 백미로 꼽히는 ‘영산회상’ 합주를 감상하고 있다. 전한 기자
오는 9월 14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7시30분에 열리는 ‘창경궁의 아침’은 3번의 무료공연과 2번의 유료공연으로 열린다.
전한, 손지애 코리아넷 기자
hanjeon@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