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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넷뉴스

게시일
2015.03.12

기타 하나 들고 세상 어디에든

기타연주와 함께 ‘봄이 온단다’를 부르고 있는 가수 박강수 씨.

▲ 기타연주와 함께 ‘봄이 온단다’를 부르고 있는 가수 박강수 씨.

구름떼처럼 관객들이 몰려오는 것도 아니다. 화려한 군무와 퍼포먼스에 둘러싸인 아이돌은 더욱 아니다. 20대초에 시작된 가수인생은 어느덧 40대의 원숙기에 들어섰다.

가수 박강수. 그에겐 여러 별칭이 뒤따른다. 한국의 조안 바에즈, 제2의 양희은, 심지어는 남자 김광석까지. 양희은은 1970대 청년문화를 대변하는 여성 가수이며, 김광석은 1980, 90년대 2천회가 넘는 소규모의 라이브콘서트로 관객과 호흡한 가수다.

가수 박강수씨가 지난 5일 정규앨범 7집 나비를 선보였다. 여전히 활달했고 거침없다. 타이틀 곡은 아래와 같이 시작되는 ‘나비’다.

“꽃이 날아가는 봄 향기도 따라 나서는 봄 나비 날아다니다 파란색 대문 담을 넘는다……”

겨우내 움츠러 있다가 훨훨 날아다니는 자유로움을 나비에 빗대 표현했으리라.

수원의 한 호프집에 일하며 듣는 LP 음악들에 문화적 충격을 느낀 가수 박강수 씨는 그 후로 꾸준히 가수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 수원의 한 호프집에 일하며 듣는 LP 음악들에 문화적 충격을 느낀 가수 박강수 씨는 그 후로 꾸준히 가수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데뷔한지는 15년, 실제 가수생활은 20년을 훌쩍 넘은지 오래다. 그동안 그 흔한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것도 아니었다. 기타 하나만 달랑 들고 살아온 음악인생이었다.

아이티, 에티오피아, 그리고 마다가스카르에 이르기까지. 그를 찾는 곳엔 어김없이 나타났다. 이따금씩 텔레비전에 출연하거나 라디오에서 라이브연주로 팬들과 만난다.

여전히 그의 무대는 소극장이란 공간에서 이뤄진다. 전국 어디에서나 그를 찾는 팬들이 있다. 연주여행의 연속이다.

그는 한국포크음악의 명맥을 이어가는 몇 안 되는 연주자다. 지난 1960,70년대 서구의 청년문화 가운데 하나인 포크뮤직이 한국에 전해졌다. 자유와 저항정신은 당신의 한국상황과도 일치했다. 자연의 풋풋함, 순수하고 도전적인 청년정신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런 포크문화에서 성장한 젊은 이들은 70,80세대로 불리며 한국에서 가장 많은 베이비붐 세대를 형성하고 있다. 40대 중반에서 50대 후반에 이르는 장년세대다. 케이팝으로 상징되는 10대, 20대의 아이돌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열광은 없지만 잔잔한 박수와 환호는 따른다. 포크는 여전히 한국 문화의 한축을 자리잡고 있다.

그를 만나 예사롭지 않은 역정과 음악얘기를 나눠봤다.

지난 3월 5일 발매한 가수 박강수 씨의 7집 앨범 ‘나비’

▲ 지난 3월 5일 발매한 가수 박강수 씨의 7집 앨범 ‘나비’

- 사랑과 자연은 당신의 예술세계인 것 같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이끌었나?

노래하는 무대에서는 물론이고 가장 나다운 모습을 발견하는 곳이 도시적이지 않은 ‘흙길’이다. 이질감은 있지만 낯선 곳에 가니 내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더라. 그런 점에서 여행은 단순히 풍경, 또는 맛집을 찾아가기 이전에 스스로의 내면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책으로만 봤던 곳들을 실제로 경험해보니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이런 여행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었다.

- 팝도 들을 수 없는 환경에서 가수가 됐다고 들었다. 남원, 담양 전남,북 시골만 골라서 살았다.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 상경하기 전에는 팝을 접할 수가 없었다. 그런 걸 생각했을 때 지금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가수가 된 건 삶의 운명인 것 같다. 가수로 사는 운명의 몇 가닥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듯하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지금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을 보면 운명의 선은 이미 정해졌던 것 같다.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다. 어머니가 노래를 잘 하셨다. 어머니가 매일 라디오 기독교방송을 들으며 늘 찬송가를 부르셨다.

- 가수가 되기까지 역정이 지난해 보인다. 알바, 미사리를 거쳐 당신만의 노래를 찾기까지 스토리를 말해달라.

20살 때 노래를 처음 시작했다. 수원으로 올라와 ‘나그랑’이라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는 전부 LP판으로 노래를 틀어주고 라이브 공연, DJ가 있었다. 일하면서 다양한 노래를 듣게 됐고, 그러면서 나에게 신세계가 열렸다. 처음 아바의‘치키티타’를 처음 듣고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지금까지 몰랐던 신세계를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다양한 음악을 접하게 됐다.

노래에 대한 재능을 20년 만에 알았다고 하면, 노랫말을 만들고 작곡 할 수 있는 재능을 안 것은 27살 때였다. 기타는 교회를 다니면서 배우게 됐다. 기타 치는 게 재미있고 좋으니깐 금방 배우게 되더라. 내 노래에 더 멋진 옷을 입히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통기타를 열심히 독학했다.

박강수 미소

힘든 적도 많았다.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하면서 수십 번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내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고, 현실과 이상의 높이가 다르다 보니 스스로 괴로운 적도 많았다. 22살 때 서울로 올라갔을 때 비로소 잘해보기로 마음 먹게 됐다. 100만원 들고 서울 영등포에서 열린 오디션에 응했다.

이곳에서 음악평론가인 구자형 선생님을 만났고 내 음악의 물꼬를 터줬다. 그의 도움으로 CBS의 ‘가요속으로’에 출연하게 됐다. 그 뒤 고정 출연을 제안 받았고 5년간 출연했다. 라이브 카페서 일을 했던 터라 그 경험으로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통기타 하나 들고 서울 생활을 시작한 거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의 삶을 혼자 결정하고 서울행을 택했던 것은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내가 참 대견하다. 그때의 열정과 결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박강수 상념

- 음유시인, 조안 바에즈(Joan Baez), 제2의 양희은, 심지어는 여자 김광석으로 불린다. 좋은 별명은 다 붙었다. 만족하나?

그래도 ‘박강수’가 제일 좋다. 듣기에 너무 좋은 수식어들이 붙은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한국의 조안 바에즈’라면 정말 극찬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 지금의 이 자리에 온 것을 보면 지금의 내 삶은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가수로서 지금이 가장 잘나가는 시기다. 음반 내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 꿈도 이뤘고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꿈도 이뤄냈다.

마다가스카르 사진1
박강수 마다가스카르 사진2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하며 사진기에 담은 가수 박강수 씨의 작품들.

▲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하며 사진기에 담은 가수 박강수 씨의 작품들.

- 당신과 여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 같다. 여행으로 자유를 얻었다고 하던데.

서울 생활을 하면서 도시적인 멀미에 지쳤고, 기회를 놓칠까 항상 조마조마하고 주눅이 들었었다. 모든 것에 연연하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삶의 테두리 안에서 너무 소극적이고 약자라고 느끼게 됐다. 처음 멀리 여행을 떠날 기회가 왔을 때, 계속 하고 있던 라디오를 중단하는 것이 부담됐다. 어떻게 얻은 기회를 여행으로 놓치게 될까봐 여러 번 여행가기를 주저했다.

하지만 과감히 한쪽을 포기하더라도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 오는 행복을 즐기게 됐다. 오히려 여행을 다녀와서 더 많은 걸 배우게 됐다. 내 스스로 자신감이나 삶에 대한 에너지를 내 위주로 돌리게 됐던 계기가 됐다. 더 나은 방향,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가고 싶은 방향을 선택하는 법을 알게 됐다. 마다가스카를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극장 하나를 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와서 전세 값을 빼고 정말 소극장 하나를 열었다. 여행을 해보니 잃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게 됐다. 할 이야기들이 많아지고 내 음악도 변하게 되더라.

- 아이티, 마다가스카르 한국인에겐 생소한 나라와 친숙하다. 허구 많은 나라 가운데 오지와 빈곤의 지역을 찾았는가?

지인 중에 오지에서 아무런 무대 장치 없이 기타 하나만 들고 공연할 수 있는 가수로 나를 추천했다. 특히 아이티의 병원에서 펼친 무대는 지친 환자들에게 웃음과 재미를 주고 놀이의 시간을 제공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른 목소리, 다른 피부색을 가진 내가 주는 퍼포먼스로 인해 그들은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다.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배움을 얻었다.

마다가스카르는 두 번 갔다.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경험들을 라디오에서이야기하면서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연락이 왔다. 2번 째 찾은 마다가스카르의 모습을 담아 4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직접 운영해온 소극장 ‘소통홀’ 앞에서. 그는 6년간 이곳에서 공연을 열며 팬들과 교감해 오고 있다.

▲ 서울 마포구에서 직접 운영해온 소극장 ‘소통홀’ 앞에서. 그는 6년간 이곳에서 공연을 열며 팬들과 교감해 오고 있다.

- 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당신에게 팬이란 어떤 존재인가?

모터(motor) 같은 존재다. 결국은 무대에 서게 만들고 계속 연습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관객이 없으면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을까 싶다.

- 우문이지만 좋아하는 가수는, 그리고 노래는?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 조안 바에즈. 한국 가수로는 여진을 좋아한다. 희끗희끗한 머리로 통기타 하나만 들고 노래하는 에밀루 해리스와 조안 바에즈는 나의 이상이다.

- 노래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당신에게 노래란?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음반 낸다는 것은 세상과의 소통이다. 음악은 세상과 이야기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나만 혼자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노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히트곡, 많은 이들이 알아 주고, 피드백이 오는 그런 노래를 만드는 것이 내 목표다. 그래야 정말 관객이 내 이야기를 듣고 소통했구나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랑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나에게 노래란 차근차근 기록하는 일기와 같다, 20대부터 지금까지 음악 외의 삶을 살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고, 만들고, 공연하면서 2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내 삶의 기록을 20년 간 음악으로 남겨오고 있다.

가수 박강수 씨가 코리아넷 독자들에게 보내는 친필 사인. ‘행복한 동행, 코리아넷! 뮤지션에게도 길이 되는..’

▲ 가수 박강수 씨가 코리아넷 독자들에게 보내는 친필 사인. ‘행복한 동행, 코리아넷! 뮤지션에게도 길이 되는..’

글 위택환, 손지애 코리아넷 기자
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
Whan23@korea.kr

박강수 콘서트는 오는 3월18일 7시30분, 신촌소통홀에서 열린다.
문의 (02)718-3487,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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