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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넷뉴스

게시일
2013.06.03

고대 그리스 비극 ‘메디아’, 창극으로 재 탄생되다

“죄를 짓는 것은 남자, 버림 받는 것은 여자”

2천5백 년 전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인 에우리피데스 (Euripides)의 대표작 ‘메디아 (Medea)’가 한국에서 창극(唱劇)으로 다시 태어났다.

국립창극단은 고대 그리스 비극 ‘메디아’에 한국적 창극을 입힘으로써 그리스 비극의 희대 악녀 메디아의 한(恨)을 애절하게 표현했다. 창극 ‘메디아’는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국립극장에서 열렸다.

메디아 역을 맡은 박애리 (가운데)가 권력욕으로 자신을 버린 남편 이아손의 배신에 절망한 메디아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제공: 국립극장)

▲메디아 역을 맡은 박애리 (가운데)가 권력욕으로 자신을 버린 남편 이아손의 배신에 절망한 메디아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제공: 국립극장)

메디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끔찍한 극악무도의 대명사로 묘사되어 온 캐릭터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 이아손이 권력에 눈이 멀어 크레온 왕의 딸 크레우사와 혼인을 하자 배신감에 크레온과 크레우사를 죽이고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친자식들마저 죽임으로써 남편에게 복수한다.

이번 창극은 지난 2,500년 동안 악녀로만 묘사되어온 메디아를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녀의 입장에서 바라봄으로써 판소리의 깊고 애잔한 호소력을 통해 ‘배신으로 인해 파멸에 이른 한 비극적인 여인’으로 표현했다.

메디아가 단순한 악녀가 아닌,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는 한 비극적인 여인’으로서 그녀의 감정을 표현하는 애절하고 구슬픈 판소리와 장면 분위기에 맞게 변하는 무대 조명은 관객들의 공감과 몰입감을 이끌어냈다. 약 1시간 반 가량의 공연이 마친 후 기립박수는 멈추지 않았다.

극작가 한아름과 연출가 서재형 부부가 참여한 창극 ‘메디아’는 친자식까지 죽인 희대 악녀가 아닌 그녀의 ‘이유 있는 복수’를 관객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첨을 맞췄다. (사진제공: 국립극장)

▲극작가 한아름과 연출가 서재형 부부가 참여한 창극 ‘메디아’는 친자식까지 죽인 희대 악녀가 아닌 그녀의 ‘이유 있는 복수’를 관객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첨을 맞췄다. (사진제공: 국립극장)

이번 작품에 참여한 극작가 한아름 씨와 연출가 서재형 부부와의 인터뷰를 통해 창극 ‘메디아’ 작품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았다.

<’메디아’ 극작가, 연출가와의 인터뷰>

- 고대 그리스 비극작품 중 특별히 메디아를 선택한 동기는?
<메디아>는 친자식을 죽인 희대의 악녀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이 여인네들의 참고 살며 버텨야 했던 한(恨)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여인들이 속으로 삭이는 그런 질감의 한은 아니지만 드러나는 강렬함이 현대 창극의 정서와 더 맞을 것 같았다. 처음엔 시대를 조선으로 가져와 <매화>로 번안할 생각도 있었지만 현대 창극 관객이라면 굳이 우리 식으로 풀어내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메디아>의 시대와 상황을 그대로 가져왔다.

- (그리스) 비극을 창극으로 재해석하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하게 됐나?
그리스 비극 속에 코러스는 우리 창극의 도창(導唱)과 비슷한 점이 많다. 도창은 경험이 많은 원로가 무대 옆에서 판소리의 소리나 아니리로 관객의 흥을 돋우고, 박과 박 또는 장과 장 사이에 줄거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데 극중의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므로 도창을 그리스극의 코러스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한 것이다. 일종의 서술자로서 극과 현실의 경계에서 배우와 관객을 이어주는 끈으로 창극의 형식과 유사하다고 판단했기에 처음 시도하는 창극으로서 나름 그리스 비극이 형식적인 면에서 안정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 그리스 비극에서 표현된 메디아와 창극 속 메디아를 비교한다면?
메디아를 자식을 죽인 악녀가 아닌 남자들의 이기와 욕망, 권력욕 앞에 희생된 비극적 여인으로 초점을 맞춰 그렸다. 그것을 이번 공연에서는 남녀 간의, 부부간의 ‘사랑’이 아닌 인간의 ‘신의’라고 부르고 있다. ‘사랑’은 의무가 아니지만 ‘신의’는 인간의 도리에 가깝기에 의무를 넘어서는 것이다. ‘사랑’을 저버린 이아손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아내에 대한, 자식들에 대한 ‘신의’를 저버린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메디아는 분노하는 것이다. 2,500년 동안 메디아를 에워싼 ‘악녀’라는 오명이 조금이라도 벗겨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보려고 노력했다. 그리스 비극의 메디아가 조금 이성적이라면 창극의 메디아는 우리 어머니들의 감성이 더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작가나 연출, 배우들의 연기술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우리 소리가 지닌 정서의 깊이감이 진하게 전해지다 보니 메디아가 숨겨온 한의 정서를 잘 표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메디아를 단순한 악녀가 아닌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는 비극적인 여인으로 관객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 것은 매우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 전통도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요소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존으로 이해해도 될까?
전통이 전통으로서 존중 받으려면 전통적인 것 외에 많은 것들이 생성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클래식이라는 말이 나오려면 훨씬 모던한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페라보다 모던한 음악극 장르가 나왔기에 오페라를 클래식이라 부르고 세월이 지나도 오페라의 레퍼토리를 사랑하고 오페라 가수들의 노래 실력에 경탄하는 것이다. 우리는 창극을 전통(클래식) 혹은 정통이라고 하면서 이보다 모던한 게 나오지 않았으니 그 부분에서 이번 국립창극단이 여러 연출가에게 미션을 준 게 아닐까 한다. 새로운 요소를 혼합하는 과정이 때로는 정신 없고 혼란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대중과 만나 소통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면 분명 그런 과정들에 대한 것들은 정리되리라 믿는다. 다만, 이번에 우리 두 사람이 <메디아>를 선택한 것은 판소리가 바탕이 아니어도, 우리 소재가 아니어도 우리의 것을 가지고 멋지게 표현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요소가 어디 텍스트뿐 이겠나. 빠르게 변하는 시대와 관객의 요구에 맞게 변화를 꾀하면서도 지켜야 하는 전통과 정통성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창극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의 의무이자 숙제라고 생각한다.

- 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뜻밖에 예술계 종사자들도 창극을 접해본 사람들이 별로 없다. 일반인은 더 할 것이다. 누구나 오페라에 대해 알면서도 오페라 구경이 조금 낯설고 감상에 절차가 있는 것 같아 꺼려지는 것처럼 창극 역시 그렇다. 하지만 창극은 지식이 없어도 귀명창이 아니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우리 공연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재주 넘치는 소리꾼들이 들려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메디아>를 출발로 대중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레퍼토리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누군가 <메디아>를 보고 창극을 향한 꿈을 키울 만한 씨앗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연출가들과 작가들이 창극에 관심을 두고 후학들도 창극 연출과 극작에 흥미를 갖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손지애 기자, 코리아넷
jiae5853@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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