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홍보원 50주년

유럽의 중심에서

한국문화를 발신하다

FRANCE

주 프랑스문화원장

전해웅

주 프랑스문화원장 전해웅

해외문화홍보원은 1971년 발족하였지만 한국문화원이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1979년부터였다. 바로 다음 해인 1980년 12월, 프랑스 파리에도 한국문화원이 설립되었다. 동경, 뉴욕, LA에 이어 전체 한국문화원으로는 네 번째였고 유럽의 첫 한국문화원이었다. 이 시기 주한 프랑스문화원은 영화 상영을 비롯한 활발한 활동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프랑스 문화에 대한 동경을 심어 주면서 해외문화원 활동의 중요성을 실감케 해주었는데, 그것이 유럽 최초의 한국문화원 설립의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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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개원 초기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의 역사, 문화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국어 교육, 공연, 전시, 영화 상영, 작가와의 만남 등과 같은 묵직한 예술 활동을 중심으로 한국 문화가 프랑스 사회에 서서히 스며들게 함으로써 오늘날 한류 도약의 저변을 마련해 놓았다. 특히 1980년 당시부터 시작해 계속 확대해온 한국어 교육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 K-pop 등 한국어가 포함된 콘텐츠들에 대한 애호 현상이 2000년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인프라를 제공해 주었다.

개원 39년 만인 2019년 11월 20일,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은 한국관광공사와 한국콘텐츠 진흥원과 함께 파리의 한복판에 위치한 7층짜리 건물에서 코리아센터의 이름으로 새 출발을 하였다. 1870년대 지어져 파리의 전형적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코리아센터 건물은 공연장, 두 층의 전시실, 한식체험관, 2만여 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도서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공동 입주한 두 기관과 함께 한국의 예술, 문화산업, 관광 등 우리 문화의 다양한 면모를 입체적으로 알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 협업 ‘때깔’ 특별전, 국립무용단의 ‘묵향’ 공연, 웹툰 전시회, ‘K-pop 나이트’ 등 4개월간 펼쳐진 개원 행사를 통해 한국 문화의 다양한 층위를 많은 프랑스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코리아 센터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시설을 자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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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행사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거듭된 통행 제한과 운영 제한을 받게 되면서 문화원은 거의 모든 사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하여 진행해왔다. 한국어 교육, 한국문화 아틀리에, 한국문화 컨퍼런스 등의 교육 사업은 온라인화에 대한 타격이 비교적 적을 뿐 아니라 오프라인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도 있고 시간과 거리의 장애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비상 상황이 끝난 후에도 일부 온라인 활동은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점진적으로 활동을 정상화해 나갈 계획이다. 올 상반기의 활동이 ‘한국의 음식문화/ 김치’를 중심으로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면 하반기의 활동은 ‘한국어/한글’, ‘판소리’를 중심 주제로 두고 온/오프라인을 병행하여 펼쳐질 계획이다. 그동안 꾸준히 해오던 다양한 사업 외에도 국립한글박물관 전시를 비롯하여 한국어/한글 관련 컨퍼런스, 북 컨퍼런스, 그리고 한국어의 맛을 보여주는 공연예술의 정수인 판소리 등을 집중 소개할 예정이다. 국립국악원의 정통 판소리는 물론이고 프랑스 소설 ‘레 미제라블’을 소재로 한 창작 판소리, 프랑스인이 부르는 판소리 등의 프로그램들이 준비 중에 있다. 그 밖에 여름에는 더위를 공포로 몰아내는 한국의 납량문화를 소개하는 ‘한국 공포영화제’, 가을과 겨울에는 한국의 재즈 음악가들과 클래식 음악가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도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하반기부터 ‘(어린이) 고사리 손 태권도 교실’, ‘시네클럽 꼬레’ (가칭) 등의 상설 프로그램들을 신설한다.
또한 올해부터 문화원에서 미디어아트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한다. 문화원 사업과 연계하여, 문화원 오디토리움과 중정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프로젝션 매핑 전시를 연중 개최할 예정으로 IT 강국 한국의 진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50주년 로고

새 한국문화원 건물은 방문자들이 “파리에서 가장 큰 문화원은 아니지만 가장 아름다운 문화원”이라는 평을 할 정도로 과거 문화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문화외교 도구’이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방문자들이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퍼 나르고 싶은 ‘Instagramable 한 문화원’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문화원 중심의 내향적인 운영의 유혹을 경계하고 문화원 밖에서의 활동을 확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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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지역 한국문화축제를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몽펠리에, 낭트, 라로셸 등에서 이미 매년 열고 있는 한국문화축제, 프랑스 내 4개 지역에서 열리는 ‘드라마 파티’도 개최지를 늘릴 계획이다. 15년째 계속되면서 유럽의 한국영화제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파리 한국영화제는 계속 확대해 나가고 다른 도시들에는 소규모 한국영화 축제를 신설하기 위해 관련 파트너들과 논의 중이다.

두 번째는 프랑스 주요문화예술기관에서 한국 관련 예술 프로그램들을 자체 사업으로 기획하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국립 기메 아시아박물관, 파리 시립 동양 세르누치 박물관, 파리 시립극장, 국립 샤이오극장, 세계문화의 집 등 기존의 협력 파트너 외에 께 브랑리 박물관, 라로셸 자연사박물관, 렌느의 브르타뉴 국립극장 등에서 한국 관련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세 번째는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가며 한류 문화를 즐기고 서로 정보를 나누며 한국문화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는 자발적인 한류 팬들의 생태계를 조성, 지원하는 일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한류 팬 모임인 봉주르 코레 협회를 비롯한 한류 팬 모임들을 지원하고 한국문화 관련 온라인 콘텐츠들의 생산과 유통을 돕는 활동도 문화원의 중요한 일이다.

이제 파리에서 간단한 한국어 몇 마디 정도 하는 프랑스 젊은이를 만나는 일은 흔한 일이며 BTS나 한국 드라마를 전혀 모르는 젊은이를 찾는 것이 오히려 힘들 정도다. 파리에 140개에 이르는 한식당의 주 고객은 프랑스 현지인들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젊은이들이 “한국어는 듣기에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라고 한다. 과거에 이런 현상을 생각이나 해 봤는가? 프랑스에서, 적어도 젊은이들에게는 한국식의 삶이 뭔가 ‘핫’하고 멋진 것, 따라 해보고 싶은 것으로 보이는 시대가 되었다.

세계 속에서의 우리문화의 지위에는 양적인 변화가 아닌 질적인 변화가 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문화의 수신국에서 문화의 발신국으로 완전 전환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는데 해외문화홍보원의 역할은 대단히 컸을 것이다. 50주년과 그 성과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 동시에 이제 50주년을 맞아 해외문화홍보원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문화원들, 나아가 해외문화홍보원의 미래 활동은 어때야 할 것인지에 대한 폭넓은 논의와 고민을 해 볼 것을 제안한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우리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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